휴대폰 도청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휴대폰 도청이 가능하다는 정보통신부의 실험 결과가 국정감사에서 밝혀진 데 이어, 이번에는 일부 부처 및 지방자치단체가 도청방지용 비화 휴대폰을 직원들에게 지급하거나 구입 예산을 편성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박진 의원, "국무위원, 청와대 비서관에 비화 휴대폰 지급돼"**
한나라당 박진 의원은 6일 국회 과기정보통신위 정통부 국감에서 일부 국무위원과 청와대 비서관급 이상에게 청와대 경호실에서 비화 휴대폰을 지급해 사용해 왔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박진 의원은 "올해 4월초 국정 수뇌부들에게 비화 휴대폰을 사용하도록 지급했다"면서 "청와대는 이미 3~4년 전부터 비화 기능이 있는 휴대폰을 사용해왔고, 기능이 향상된 비화 휴대폰도 원래 지난해말 지급할 예정이었으나 도감청 논란이 일자 이를 보류하다가 지난 4월초 지급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박진 의원은 "정통부는 국가지도무선망 사업과 관련해 2001년 12월 각 부처와 광역단체 등 81개 기관에 '2002년 8월31일 비화서비스 제공 예정인 바 각 기관은 비화 휴대폰 구입 및 이용 요금 예산 확보할 것'이라는 공문을 발송했다"면서 "이에 따라 지난해 4월 1차 추경 예산 편성시 부산광역시와 전남도청 등 일부 광역자치단체에서는 비화 휴대폰 구입을 위한 예산을 편성한 사실이 드러났다"고 주장했다. 그는 "총리실이 관련 예산을 승인했고, 부산시는 2003년도 예산에 비화 휴대폰의 12개월치 이용 요금을 책정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덧붙였다.
***권영세 의원, "국정원이 비화 휴대폰 신제품 판매 중단"**
한나라당 권영세 의원도 휴대폰 제조업체인 팬텍&큐리텔이 지난 2월 비화 휴대폰을 개발하고, 신제품 설명회를 가졌으나 국가정보원의 저지로 시판을 못했다고 주장했다.
권 의원은 "그동안 CDMA(코드분할다중접속) 휴대폰의 도ㆍ감청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해온 국정원이 팬택&큐리텔의 신제품에 대해서는 '국가의 암호화 관리가 불가능하고, 도ㆍ감청이 어려워 불순세력이 사용할 경우 대책이 없다'는 이유로 시판을 못하게 한 것은 명백한 논리적 모순"이라고 지적했다.
또 권 의원은 "지난 달 23일 국감에서 휴대폰 복제에 의한 도청 가능성이 확인된 직후 LG텔레콤측이 자사의 서비스는 기지국 보안 설비를 통해 복제에 의한 도청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광고하려 했었다"면서 "이 때도 정통부가 관계자가 압력을 가해 이를 취소했다"고 주장했다.
***관계자, "전혀 사실 무근"**
이런 박진 의원과 권영세 의원의 주장에 대해서 청와대, 총리실과 각 기업을 비롯한 관계자들은 한 입으로 "전혀 사실 무근"이라고 답했다.
청와대 윤태영 대변인은 이날 "일각에서 그런 얘기가 있었으나 비화칩이 들어간 휴대폰은 전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면서 "다만 낡아서 사용하기 힘든 구형 휴대폰을 원하는 사람에 한해 신형으로 교체해준 적이 있을 뿐"이라고 반박했다.
총리실도 "비화 휴대폰 구입 등에 관한 승인 업무가 총리에게 없고, 국회의 꼼꼼한 심사를 받아야 하는 추경예산에 그처럼 예민한 문제를 편입할 수 있겠느냐"고 부인했다. 권영세 의원이 언급한 팬택&큐리텔과 LG텔레콤도 관련 사실을 부인했다.
정통부 진대제 장관도 국감 답변을 통해, "내 전화기는 비화 휴대폰이 아니다"라면서 "휴대폰은 현실적으로 도청이 불가능하며, 국무위원은 비화 휴대폰을 갖고 있지 않다"고 답했다.
***휴대폰 도청 논란의 진실은?**
그렇다면 3천3백만명에 이르는 휴대폰 서비스 가입자에 대한 도ㆍ감청은 어느 정도나 가능할까? 대다수 전문가들은 "도ㆍ감청이 기술적으로 가능하지만 현실적으로 우려할 만한 수준은 아니다"라고 지적한다.
일단 많은 가입자들이 불안해하는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한 도ㆍ감청은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하다. 도청을 위한 기술을 갖고 있더라도 일반 기지국과 동일한 크기의 시스템과 안테나를 장착한 첨단 장비가 필요한데다, 암호해독도 쉽지 않고 근거리에 접근하는 것이 필요하다. 일반인에 대한 도ㆍ감청이 거의 불가능하다고 보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러나 복제된 휴대폰을 이용해 특정인을 도ㆍ감청할 위험은 여전히 상존한다. 복제된 휴대폰의 경우에는 단말기 제작 일련번호(ESN, Electronic Serial Number)가 같기 때문이다. 일련번호를 알 경우 휴대폰과 기지국 간의 암호화된 무선 통신 내용을 가로챌 수 있다는 지적이다. 지난 9월 국감에서 제기된 휴대폰 도청이 가능하다는 정통부의 실험도 복제된 휴대폰을 이용한 것이었다.
전문가들은 단말기가 사용하는 망과 단말기 제작 일련번호 등이 동일하고, 착신 통화시 동일 기지국ㆍ동일 지역 내에서 실제 단말기와 복제 단말기가 가까이 있을 때 상대방 발신자의 통화소리만 들을 수 있다고 지적한다. 정통부 진대제 장관이 "현실적으로 도청은 어렵다"고 강하게 부인하는 것도 실제로 이런 조건을 충족시키고 도청을 하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더구나 LG텔레콤에 이어 SK텔레콤과 KTF도 동시 통화 가능성을 원천 배제하는 도청 차단시스템을 완비하도록 조치를 취한 상태여서 현재의 휴대폰 도ㆍ감청 위험에 대한 일각의 문제제기는 과도한 면이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업체의 관리 허술-숨기기에만 급급한 정통부는 문제**
하지만 단말기 제작 일련번호 관리를 허술하게 한 서비스 3사나 휴대폰의 도ㆍ감청 의혹에 대해 숨기기에만 급급한 정통부의 행태는 비판 받아 마땅하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한 전문가는 "단말기 제작 일련번호의 관리가 소홀한 데 문제의 원인이 있으므로 서비스 3사에 대해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라면서, "기술적으로 도청이 가능하다는 것이 입증된 만큼, 정통부도 더 적극적으로 나서서 휴대폰 도ㆍ감청에 대한 정보를 국민들에게 공개하고 이에 대한 정통부의 상황 인식과 대책에 대한 동의를 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그는 "더 근본적으로는 도ㆍ감청 등 프라이버시권 침해에 대한 사회의 경각심을 높여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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