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세종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이 최근 3차 남북 정상회담의 연내 개최 가능성을 거론한 이명박 대통령에게 '현실적인 조언'을 했다.
이종석 전 장관은 23일 서울 명동 세종호텔에서 열린 흥사단 통일포럼에서 정상회담이 열리면 북핵 문제가 중요한 의제로 다뤄지긴 하겠지만, 이명박 대통령이 북핵 포기 약속을 받아낼 수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전 장관은 이 대통령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만날 경우, 북핵 문제와 관련한 이 대통령의 솔직한 생각과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의 진의가 전달될 것이며 이는 북핵 문제를 진전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나 이 전 장관은 북한은 늘 북핵 문제를 미국과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보기 때문에 이 대통령과 결정적 담판을 지으려 할 가능성은 없다고 못 박았다. "남북 정상간 합의에서 핵 문제는 10.4 정상선언 4항에 규정된 내용보다 약간 진전된 표현이 들어가는 정도를 넘어서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라는 것이다.
2007년 2차 정상회담에서 나온 10.4 선언 4항은 "남과 북은 한반도 핵문제 해결을 위해 6자회담 9.19 공동성명과 2.13 합의가 순조롭게 이행되도록 공동으로 노력하기로 하였다"라고 되어 있다.
"납북자 귀환 이벤트보다 군사적 긴장 완화 중요"
이종석 전 장관은 또 이명박 정부가 남북 정상회담의 주요 의제로 강하게 거론하고 있는 국군포로, 납북자 문제에 대해서도 "깜짝쇼 하듯 접근하지 말라"고 주문했다.
군국포로, 납북자는 북한이 존재 자체를 부정하고 있는 만큼, 북한의 체면을 깎지 않는 선에서 접근하고 사전에 상당한 준비를 해야 해결 가능한 문제라는 얘기다.
그는 이 문제가 자신이 통일부 장관을 맡고 있던 2006년 4월 18차 남북장관급회담에서 "실질적인 차원에서 문제를 풀어가기로" 북측과 합의한 바 있다면서, 그 연장선에서 보다 구체적인 협의를 진행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이 전 장관은 이어 북핵 문제, 국군포로·납북자 문제가 핵심적 사안임에는 틀림없지만 정상회담 테이블엔 더 많은 것을 올려놓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당장 한반도를 가로막고 있는 문제부터 '포괄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면서 남북간 군사적 긴장을 완화시키기 위한 노력, 남북 경제협력, 이산가족 상봉, 한반도 평화체제 추진 등이 논의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 ⓒ프레시안 |
"정상회담 당위·실현 가능성 무르익어"
이 전 장관은 남북 정상회담이 절실한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명박 정부 취임 2년 동안 남북관계가 매우 불안정해져 최근 북방한계선(NLL) 부근에서 북측의 사격이 이어지는 등 한반도 안보 상황이 악화됐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남북관계 악화를 국민들이 불편해하기 시작했다며, 국민의 화살이 북한 뿐 아니라 상황을 방치하는 정부로도 향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상황이 심각한 만큼 낮은 단위의 실무대화가 아닌 고위급 정치회담이 필요하며, 그 가운데 정상회담이 가장 효과적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상회담은 교착상태에 빠진 북핵 문제를 진전시키기 위해서도, 한반도 안보상황의 안정적 관리를 위해서도 필수적으로 요구된다는 것이 이 전 장관의 설명이다. 이 전 장관은 그 밖에도 남북경협을 통한 경제발전을 위해서도 정상회담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상회담의 당위와 함께, 그것의 실현 가능성도 무르익었다는 게 이 전 장관의 평가다. 이 전 장관은 이명박 정부가 최근 들어 '북핵 문제에 진전이 없으면 정상회담은 어렵다'던 초기의 강경한 입장을 조금 누그러뜨렸다고 평가했다. 작년 11월까지만 해도 정상회담에 '핵 포기에 도움이 된다면'이란 단서를 달았던 이 대통령이 지난달 <BBC> 인터뷰에서는 '북핵 문제에 대해 충분히 이야기할 수 있어야'로 전제조건을 낮췄다는 것이다.
이 전 장관은 이 같은 발언이 현 정부 초기 내세웠던 '핵 포기가 돼야 가능한 정상회담'(선 핵폐기 후 대화)에서 '핵 포기에 도움 되는 정상회담'으로의 선회를 의미한다고 분석했다.
"요란한 '정상회담 전주곡' 자제해야"
다만 이 전 장관은 정상회담에 대한 대통령의 의지에 의구심을 나타냈다.
이 전 장관은 대통령의 <BBC> 인터뷰 이후 정부가 정상회담과 관련해 너무 많은 이야기를 흘리고 다녔다면서, 역대 어떤 정권 내에서도 회담 추진 전에 이렇게 많은 이야기가 나온 적은 없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 가운데 핵 문제 진전을 정상회담 전제조건으로 내거는 강경한 목소리가 들린다며, 이는 대통령의 발언 기조와 일관성이 없어 혼란스럽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것이 현 정부가 정상회담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태도로도 비쳐진다며,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말했다.
이 전 장관은 회담과 관련해 남북이 실제 추진하는 것이 없다면 이는 정부가 국민을 기만하는 행위이며, 반대로 남북협의 움직임이 있다면 좀 더 주의를 기울이고 책임 있게 처신할 것을 당부했다.
한편 이 전 장관은 정상회담이 열린다면 빠를수록 좋으며, 지방선거 때문에 6월 이후로 미뤄진다면 G20 정상회의가 열리는 11월 전후를 제외하면 언제든 괜찮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정상회담이 6자회담 다음에 열려야 한다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서는 설득력이 없다며 일축했다. 북한이 6자회담을 기피하기 위해 정상회담을 하려는 게 아니라, 전방위적으로 대외관계를 추구하고 있는 상황 가운데 추진하는 것이므로 오히려 '6자-남북' 회담 간에 선순환 고리가 형성될 거란 설명이다.
이 전 장관은 "이명박 정부가 남북 정상회담을 실현시켜 북한과 합의문을 만들게 되면 자신들이 폄하하고 비아냥거렸던 과거 정부의 대북 합의 하나하나가 쉽지 않은 과정을 거친 결과물이었다는 것을 깨달을지도 모른다"며 전 정부가 했던 모든 것을 거부하려 하지 말고, 정책의 연속성도 고려해달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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