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장수군에 따르면 군산대학교가야문화연구소와 함께 진행 중인 발굴조사에서 장수 삼봉리 산성(봉수) 유적에서 가야 토기와 성벽 및 봉수의 기초부로 추정되는 흔적이 확인됐다.
금번 발굴조사는 현 정부의 100대 국정과제에 포함된 ‘가야문화권 조사·연구 및 정비사업’의 일환으로 전북도와 장수군의 지원을 통해 이뤄진 학술조사이다.
삼봉리 산성(봉수)은 장수군 장계면 삼봉리와 계남면 화음리의 경계를 이루는 백화산(해발 849.5m)에서 북쪽으로 뻗어 내린 지류의 정상부(해발 555m) 에 위치한다.
이곳은 호남과 영남을 이어주는 백두대간 육십령의 서쪽 초입에 해당되며, 전북지역 최대의 가야 고총군으로 알려진 ‘장수 삼봉리·호덕리·장계리 고분군’이 인접해 있다.
이 유적은 학계에 ‘장수 삼봉리 산성’으로 보고됐으며, 주변 마을 주민들에 의해 ‘봉화터’로 전해지고 있다.
삼봉리 산성은 산 봉우리를 한바퀴 둘러 성벽을 축조한 형태로, 둘레는 300m 내외이다.
금번 조사는 산 정상부 발굴조사와 남쪽 성벽 시굴조사로 나눠 진행됐다.
정상부에서는 자연암반을 인위적으로 다듬은 흔적과 무너진 석재들이 확인됐고, 대부장경호(굽달린목긴항아리)와 유개장경호(뚜껑 있는 목긴항아리), 시루 등 가야계 토기가 출토됐다.
명확한 지상 구조물은 확인되지 않았지만 전체적인 조성기법이 삼국시대 봉수로 알려진 장수 영취산, 봉화산 봉수의 기초부 조성기법과 유사하며, 출토된 유물도 인근의 가야 고총군 출토품과 흡사해 상호 밀접한 관련성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남쪽 성벽 시굴조사를 통해 성벽의 축조기법이 확인됐다.
성벽은 외벽만 쌓았는데, 자연암반 위에 다듬지 않은 석재를 사용해 조잡하게 축조됐다.
성돌과 기저부, 성돌과 성돌 사이에는 작은돌을 끼워 넣었는데, 이러한 축조기법은 최근 전북 동부지역에서 확인된 삼국시대 봉수의 봉대(烽臺,봉수의 거화시설을 조성하기 위한 기초부)및 소규모 산성에서 확인되는 축조기법과 매우 유사하다.
이밖에도 8세기 전후한 시기에 조성된 것으로 보이는 화장묘(시신을 불에 태워 남은 뼈 또는 뼈가루를 그릇에 담아 묻은 무덤)를 비롯해 나말여초기(통일신라시대 말~고려 초)의 토기편과 기와편, 철기류 등과 함께 건물의 조성과 관련된 것으로 보이는 주혈(기둥을 박았던 구멍) 등 확인됐다.
특히 출토된 철기 중에 철제 약연(藥碾, 약재 도는 찻잎 등을 가는 도구)이 있는데, 발굴품으로는 매우 희소한 것으로 창녕 화왕산성, 문경 고모산성, 부소산성 등에서 출토된 바 있다.
이러한 양상으로 볼 때, 삼봉리 산성(봉수) 유적은 삼국시대 산성 혹은 봉수의 기능으로 축조된 뒤 통일신라시대에는 묘역으로 그 기능이 바뀌고 나말여초기에 누정(樓亭,누각과 정자)과 같은 시설이 조성되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금번 발굴조사를 통해 삼봉리 산성(봉수) 유적은 삼국시대 장수군에 존재했던 가야계 정치체와의 관련성이 깊은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에, 향후 체계적인 조사가 이뤄진다면 가야사를 연구하는데 있어 매우 중요한 자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장영수 군수는 “이번 발굴조사를 통해 얻어진 연구 성과를 통해 1500년전 장수가야의 역동적 역사성이 확인되는 계기가 마련됐다”며 “앞으로 잊혀진 장수가야의 옛 이름을 찾는데 더욱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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