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칼란 1946(스카치 위스키) 5백만원
굴비세트 1백50만원
건강선물세트 1백27만원
송이 1백95만원
천삼 1백84만원
산삼배양근 1백20만원'
명품수입 전문점으로 유명한 서울 강남 압구정동 갤러리아 백화점 추석선물코너의 '명품선물세트'에 진열돼 있는 상품들 가격이다.
명품선물세트 진열장은 지하1층에 마련돼 있는 추석맞이 선물코너 입구 정면에 놓여있어 들어오는 이들의 시선을 가장 먼저 끌고 있다.
깊디깊은 불황으로 서민경제가 무너지고 '빈곤자살'이 속출하면서 "IMF때보다 살기 힘들어졌다"는 비명이 도처에서 터져나오고 있으나, 아파트값 폭등 등으로 도리어 구매력이 크게 늘어난 상류층을 상대하는 이른바 '귀족마케팅'은 도리어 뜨거운 열기를 뿜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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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열살루트50 1천2백만원, 술 한잔에 50만원꼴**
귀족마케팅의 열기는 갤러리아 백화점뿐 아니라 다른 대형 백화점들에서도 예외없이 목격됐다. 최근 1천만원짜리 보르도 82년산 와인세트를 선보여 화제를 모았던 반포 신세계백화점이나 롯데, 현대 백화점 등도 비슷한 모양새다.
주말이라 고객들로 가득찬 서울 반포 신세계백화점의 경우 따로 명품 선물만을 모아놓은 코너는 마련돼 있지 않았으나 주류매장에는 역시 1천만원짜리 와인세트와, 1천2백만원짜리 최고급 위스키인 로열살루트50을 추석을 맞이해 따로 전시해 놓고 있었다. 이 위스키의 경우 잔으로 따지면 1잔에 50만원 꼴이다.
서울 소공동 롯데백화점에서는 자개함에 담은 한과세트를 3백만원에 선보였고, 나전칠기에 담은 표고버섯 선물세트를 1백10만원에 내놓았다.
매일경제신문 등 일부 언론에서는 "음식을 담은 포장용기를 재활용할 수 있어서 긍정적"이라는 호의적 보도도 했으나, 일반인에게는 결코 공감이 가지 않는 평가다. 정작 담아놓은 한과보다도 몇 배 비싼 자개함을 '재활용품'으로 생각할 이들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귀족마케팅 추석 대목에도 여전**
귀족마케팅이 올 추석 유난히 기승을 부리는 것은 상류층들이 구매하는 명품의 경우 경기침체의 영향을 가장 덜 받는 데다 워낙 마진이 크기 때문으로 분석되고 있다. 추석 대목인데도 대목이라는 단어가 무색할만큼 경기침체가 심해지자 유통 서비스업계까지 불황 타개를 위해 부유층을 대상으로 하는 귀족마케팅 전면에 나선 것이다.
하지만 전통 명절 추석 준비를 위해 백화점에 들른 일반 시민들에게 추석선물코너 정면에 자리잡은 명품선물세트 진열장은 단순 눈요기라 하기엔 이미 도를 넘어섰다는 지적이다.
이같은 거액 선물에 대한 거부반응은 일반서민들뿐 아니라, 중산층이 밀집해사는 압구정동 주민들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갤러리아 백화점에서 만난, 압구정동에 산다는 가정주부 원명숙(49)씨는 대뜸 "명품진열장이 이렇게 입구 정면에 있는 것 자체가 문제"라며 "경기도 안좋은데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겠어요"라고 백화점측을 비판했다.
올 추석 예산으로 30여만원을 생각중인 가정주부 민영희(47)씨는 "전혀 우리 주머니와는 맞지도 않는 고가 상품을 이렇게 바로 앞에 진열해 놓으니 그저 구경만 하면서 지나갈 따름"이라고 소외감을 토로했다.
백화점 직원은 그러나 "아직 명품을 구입하는 분들도 많지는 않지만 경기가 안좋아도 그분들은 상관없이 꾸준히 구입한다"며 명품코너를 가장 좋은 자리에 진열해 놓은 불가피성(?)을 해명했다. 한병에 5백만원 하는 멕칼란 1946도 이미 한 병 판매했다는 게 그의 전언이다.
***"언론이 명품 열기 부추켜"**
와인 전문샵 직원은 이같은 명품 열기를 일부 언론이 부추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불황이라지만 최근 와인 매출은 최고 5,6배까지 신장됐다"는 이 직원은 그 이유를 "방송에서 연이어 방영하고 있는 와인애찬론"에서 찾고 있다. 이런 방송이 나간 이후 갑자기 매출이 늘어났다는 것. 특히 요즘에는 "추석을 맞이해 고가 와인을 선물용으로 대량 구입하는 사례가 많다"는 게 그의 전언이다.
이 직원은 "와인을 정말 선호하셔서 찾는 고객분들은 그리 비싼 와인을 구입 안한다"며 "원래 와인은 서양에서 우리가 물 마시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마시는 문화인데 우리 사회에서는 무조건 비싼 것만 찾는다"고 일침을 가했다.
***"이런 건 부자간에 주고받아도 뇌물"**
위스키와 와인을 바라보며 지나가던 직장인 김모(45)씨는 "뭐 전시용일 뿐이고 어느 사회나 돈 있는 사람들이 돈 쓴다는데 뭐라 할 수는 없다"면서도 "하지만 이 정도 거액의 물건을 선물로 주고받는다면 부자간일지라도 뇌물"이라고 질타했다.
또 "부인과 함께 추석선물 장만하러 나왔다"는 직장인 곽모(37)씨는 "저런 것은 정말 딴 나라 세상 얘기"라며 추석선물과 준비로 최대한 50만원 정도를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어느 사회에서나 자신의 소득에 맞게 소비하는 것을 뭐라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성숙한 사회라면 그에 걸맞게 주변을 돌아보는 모습도 같이 보여야 한다. 또 아무리 귀족 마케팅이라 할지라도 민족 최대명절인 추석에 천문학적 거액의 명품코너를 제일 앞에 내세우는 백화점의 판매 전략이 정서에 맞는 전략인지 돌이켜볼 필요가 있다.
불황속에서도 아파트값 폭등 등으로 불로소득을 챙기고 있는 부익부빈익빈이 낳고 있는 쓸쓸한 추석의 풍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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