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연일 강제 징용 문제를 빌미로 한국에 대한 경제 보복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반면, 문재인 대통령은 일본이 본격적인 수출 규제조치를 단행했음에도 여전히 직접적인 발언을 삼가며 신중론을 견지하고 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강경화 외교부장관 등 내각을 비롯해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 청와대 국가안전보장회의(NSC)가 잇달아 세계무역기구(WTO) 제소 등 적극 대응 방침을 밝혔음에도 문 대통령의 이어지는 침묵은 이례적이다. 특히 NSC는 4일 "일본 정부가 우리나라에 대해 취한 수출 규제 조치는 WTO 규범과 국제법을 명백히 위반한 보복적 성격으로 규정한다"고 적극적 대응 방침을 공식화했다.
이런 가운데 청와대 관계자는 5일 일본의 수출 규제 문제와 관련, "대통령의 말씀, 지시는 없다"고 했다. 직접 공격적 메시지를 반복적으로 내고 있는 아베 총리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아베 총리는 일본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한국이) 국제사회의 국제법 상식에 따라 행동해주기를 바란다"며 "지금 공은 한국 쪽에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청와대와 정부의 '적극 대응' 입장 표명과 달리 문 대통령의 '신중 모드'는 자칫 이 문제가 한일 정상 간 충돌로 비화될 경우 한일 경제 전쟁이 전면전으로 비화될 수도 있다는 우려로 해석된다. 확전보다 일본 수출 규제 조치의 수습과 철회에 목표를 두고 궁극적으로는 한일 정상의 '톱 다운' 외교를 통해 해법을 마련해야 한다는 조언이 적지 않다.
아울러 아베 총리가 주도한 일본의 수출 규제 조치의 배경에는 오는 21일 치러지는 참의원 선거를 겨냥한 국내정치적 포석도 깔려있다고 보고, 이에 맞대응하지 않겠다는 전략적 고려도 포함된 것으로 보인다.
김상조 정책실장은 전날 JTBC에 출연해 "우리가 대응하면 일본이 바로 다음 카드를 꺼낸다. '상승작용'을 원하는 아베 총리의 의도에 말려드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대응을 최소화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바 있다.
청와대는 대신 유관 정부부처를 통한 전략적 대응을 독려하는 분위기다. 이 관계자는 "산업통상자원부, 외교부 등 각 단위에서 심도 깊은 논의들을 매일 같이 하고 있다"면서, "어제 경제부총리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차원의 대응이 있었다. 업계의 어려운 점들과 그에 상응하는 대응책을 어떻게 만들지 구체적으로 논의하고 있다"고 했다.
다만 청와대는 일본의 수출 규제 문제를 풀기 위한 대일(對日) 특사 파견에는 논의할 단계가 아니라는 입장을 밝혔다. 이 관계자는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해 주일 대사는 대사로서 역할을 하고, 산업통상자원부와 정책실은 업계의 어려움이 없도록 챙기고 있다"며 "벌써 특사를 논할 단계는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남관표 주일 한국 대사가 전날 한일 정상회담을 희망한다고 밝힌 것과 관련, 강경 대응과 대화의 '투트랙'으로 가는 것이냐는 질문에는 "각자 역할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들을 모색하고 있는 것"이라고만 답했다.
'세계무역기구(WTO)' 제소에 1년 6개월 가량 걸리기 때문에 단기적 대응이 필요하다는 지적에는 "그렇기 때문에 경제계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이라며 "공식적인 회담이 아니기 때문에 무슨 일정이 있다고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 전방위적으로 기업들의 목소리를 듣고 해결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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