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클랜드가 가까워지면서 길이 점점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웰링턴으로 수도를 옮긴 1865년까지는 이곳 오클랜드가 수도였다. 지금도 뉴질랜드 인구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150만 명이 살고 있는 최대 도시다.
나는 갈림길이 나타날 때마다 주머니 속 휴대폰을 꺼내 구글 지도를 확인해야만 했다. 그 때마다 뒤따르는 일행도 같이 멈췄다.
크라이스트처치 출발 직전에 민박 집 창고 셔터 문이 내려와 내 자전거를 짓누르는 바람에 휴대폰 거치대가 박살났다. 이후 자전거 가게 몇 군데 들러 거치대를 사려 했는데 휴대폰 규격이 맞지 않아 구하질 못했다.
지금까지는 그다지 길이 복잡하지 않아 접이식 지도를 보거나, 만능 키의 ‘맵스미’ 앱을 활용했다. 가끔 와이파이가 잡히는 곳에서는 인천 총각도 인터넷으로 길을 찾았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상황이 달라졌다. 실시간 구글 지도를 보면서 달려야만 했다.
나는 ‘원패스’라는 1일 구천 원짜리 데이터 무제한 요금제를 사용하고 있어 매일 여행 일기를 쓰거나 구글 지도를 검색할 수 있었다.
“화장지 좀 잔뜩 줄래요?” 번뜩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뭐 하려고요?” 추니가 물었다.
“이걸 핸들에 둘둘 감아보려고.” 나는 임시방편으로 핸들에 휴대폰 거치대를 만들기 시작했다. 볼품은 없지만 핸들에 화장지를 두툼하게 감싸고 그 위에 휴대폰을 올려놓고 고무줄로 이리저리 동여매 충격을 줄이고, 내 시선에 맞게 조절했다. 궁여지책이었지만 달리면서 구글 지도를 보는데 어려움이 없게 됐다.
2월 9일 오후 5시, 70킬로미터를 달려 오클랜드 외곽 레무에라(Remuera) 캠핑장에 도착했다. 모두 지쳐 보였다. 샤워부터 하고 나서 마켓에 가자는 인천 총각의 의견과 먼저 마켓부터 가자는 만능 키의 의견이 엇갈렸다.
마침내 후다닥 텐트 치고 샤워 먼저 하고 돌아오며 ‘어휴, 시원하다.’는 소리를 연발하는 인천 총각을 향해 만능 키가 쓴웃음을 지었다.
“어느덧 오클랜드 가까이 왔어요.” 내가 말했다.
“그러게요. 꿈만 같아요.” 만능 키가 긴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시내 구경도 하고, 외곽 자전거 길도 찾아봐야겠어요.”
“각자 편하게 자유 라이딩 하는 게 어때요.”
“그것도 좋아요. 쇼핑도 하고요.”
다음 날 아침, 인천 총각은 자유 라이딩을 기다렸다는 듯이 자전거를 타고 홀로 어디론가 떠났다. 나는 추니와 함께 버스 타고 오클랜드 시내 구경을 나서는데 만능 키도 우리와 같이 가겠다며 따라나섰다.
캠핑장을 나와 625번 버스를 탔다. 1인당 오 달러 오십 센트(오천 원)를 요금 투입기에 넣었다. 잠시 뒤 출발하기 전 버스 기사님이 내게 영수증을 가져왔다.
몇몇 승객들이 정류장에 내리면서 나이 지긋한 기사님의 어깨에 가볍게 손을 대며 잘 가라는 인사를 건네는 모습이 정겨웠다.
"다운타운 스카이 타워 앞에서 내리려고요.” 기사님께 다가가 물었다. “기다리시면 알려 드릴게요.” 기사님이 안심하라는 표정을 지었다.
‘정말로 누군가 점프를 할까?’ 200미터 높이의 스카이 타워 점프대를 올려다보는 것만으로도 아찔하다.
“와∼. 점프다.” 추니가 땅바닥에 드러누워 점프 순간을 카메라에 담고 있었다. 마치 새파란 하늘에 거미 한 마리가 매달린 것 같다. 난 마음만 공중을 갈랐다.
스카이 타워를 내려와 오클랜드 기념품점을 들락날락했다. 열쇠고리도 만져보고, 마오리족 전통 조각품도 살펴보고, 양모 스웨터도 들춰봤다. 막상 사려니까 이 생각 저 생각에 망설여진다.
늦은 점심으로 인도 카레 매운맛을 주문했다. 쌀이 가벼워 흐트러졌지만 소스가 매콤하고, 짭조름해서 내 입맛에 맞았다.
혼자 나들이 간 인천 총각은 밤이 늦었는데도 돌아오지 않는다. 밤늦게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혹시 왔을까 몇 번이고 텐트 밖 자전거를 세어보니 아직 세 대뿐이다. 한 대가 더 있어야 하는데 걱정이다.
“내일 아침에 먹을 빵과 우유를 사다놓았으니 그냥 오세요.”라고 인천 총각한테 카톡을 보냈는데 답이 없다. 잠이 달아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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