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4일. 보웬 타운(Bowen town)을 떠나 1번 국도에 들어서자 고갯길이 연이어 나타나고 차량들이 쉴 새 없이 이어졌다.
경사가 심한 고개는 안장에서 내려 끌고 올라갔다. 도로는 1미터 남짓 갓길이 있었지만 노면이 울퉁불퉁한 데다 대형 차량들이 굉음을 내며 고속 질주 하고 있어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었다.
“어쿠.” 만능 키가 넘어지는 모습이 내 백미러에 잡혔다.
앞서가던 추니가 순간 기어 변속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갑자기 속도가 늦춰지는 바람에 바싹 뒤쫓던 만능 키가 추돌한 것이다. 다행히 오르막길에 저속으로 달리고 있어 다치지는 않았다.
잠시 쉬는 시간을 이용해 오랜만에 엄니한테 전화를 드렸다. 카톡으로 애들한테 사진 몇 장 보내고, 메일도 확인하고, 페북 친구들과 인사도 나눴다. 자외선 차단제를 두 번째 발랐다.
“잠깐요. 자전거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요.” 추니가 출발하려다 멈췄다. 살펴보니 짐받이 나사가 풀려 바퀴에 부딪히고 있었다. 하마터면 큰 사고로 이어질 뻔했다. 가방을 모두 내리고 짐받이를 재조립했다.
1번 국도와 2번 국도가 만나는 포케노(Pokeno) 인근 2킬로미터 전방에서 자전거가 진입할 수 없는 모터 웨이(moter way) 표지판을 보고 갓길에 멈췄는데 만능 키가 보이질 않았다.
무슨 일이라도 생겼을까 아니면 천천히 따라오는 걸까. 어디서부터 대열에서 이탈한 걸까. 시간이 꽤 지나자 인천 총각이 온 길을 되돌아 달려갔다.
‘와, 저기 오고 있어요.’ 한참 뒤 만능 키와 인천 총각이 나란히 이곳으로 달려오는 모습이 희미하게 보였다. 난 가슴을 쓸어내렸다.
뒷바퀴 펑크로 순간 심하게 뒤뚱거리면서 곁을 지나는 대형 차량과 접촉 사고가 날 뻔했다고 한다.
오늘 추니와 만능 키한테서 작지만 불길한 징조가 보였다. 여정 후반에 정신 바싹 차리라는 예고였다.
오후 고갯마루 과일 가게 앞에서 멈췄다. 가게 한구석에서는 채소 씨앗도 팔고, 퇴비도 팔고, 액세서리도 팔고, 헌 옷도 함께 팔고 있었다. 과일을 골고루 샀다. 과일을 좋아하는 인천 총각이 앞장서 골랐다.
가게 뒤편 수돗가에서 과일을 몇 개 씻었다. 나는 왕 자두와 비슷하게 생긴 오백 원짜리 플럼(Plum)이 가장 맛있었다. 신맛과 단맛이 딱 알맞게 섞였다. 한입 베어 물자 즙이 흘러내려 손바닥을 적셨다.
해 질 녘 캠핑장 들어가기 전에 슈퍼마켓 뉴월드에 들렸다. ‘와! 저거다, 저거’ 해물 코너 앞에서 인천 총각이 소리쳤다. 입 푸른 홍합을 발견한 것이다. 추니가 뉴질랜드에 가면 꼭 먹고 싶은 것 1순위라고 했던 얘기가 기억났던 모양이다. 홍합을 한 자루 샀다.
캠핑장에 들어와 홍합 껍데기에 붙은 이물질을 칼로 박박 긁어낸 뒤 푹 삶았다. 아무 조미료도 넣지 않고 그냥 물만 한 대접 넣었다. 주먹 크기의 홍합 속살 둘레에 쫄깃쫄깃한 근육이 붙어있었다. 주절주절 잘 떠드는 추니가 말문이 닫혔다. 혼자서 반 자루는 먹어치웠다.
저녁 먹고 나서 추니가 이발을 해줬다. 한 달 넘어 눈 찌르는 앞머리와 귀 덮은 머리를 잘랐다. 코털 깎는 작은 가위도 쓸 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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