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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낚시꾼은 고기를 잡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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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낚시꾼은 고기를 잡지 않아요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의 수상한 여행 3] ㉚성숙한 동행

2월 3일. 보웬 타운(Bowen town) 홀리데이 파크에 도착하자 먹구름이 몰려오더니 비를 뿌리기 시작했다.

“텐트는 안 되겠어요. 혹시 캐빈에서 잘 수 있는지 물어보는 게 어때요.” 만능 키가 말을 꺼내자 모두들 기다렸다는 듯이 아무런 이견이 없었다.

“16호실이고요, 더블베드 1개. 2층 침대입니다.” 그나마 빈 방이 있는 게 다행이었다.
“오늘은 내가 위층으로 올라갈게요.” 나이가 가장 많은 만능 키가 2층 침대를 자원했다. 캐빈을 얻자고 먼저 제안한 게 마음에 걸리는가보다.

ⓒ최광철 여행작가·방송인

더블 침대는 추니와 내가 붙박이다. 추니를 2층으로 올라가라고 할 사람이 없을 뿐만 아니라, 더블 침대 추니 옆에 나 말고 다른 사람이 자겠다고 농담이라도 꺼낸 사람이 없다. ‘후∼훗.’
“비 밤새 쏟아져라.” 추니가 돈 더 내고 캐빈을 빌린 데 대한 보상이라도 받으려는 듯 말했다.

‘크르릉, 크르릉.’ 막 잠들려고 하는데 조립식 캐빈이 흔들릴 정도의 코 고는 소리에 다시 정신이 맑아졌다. 국도 2호선에서 차들과 하루 종일 달리느라 피곤했던 모양이다.
‘에구, 내가 먼저 잠들어야 하는데.’ 이리저리 뒤척이다가 날 샜다.

비 그치고 새파란 하늘이 드러났다. 이곳 보웬 타운 지형은 셸리 만(Shelly Bay)에 불쑥 튀어나온 모양이 마치 성난 투우 같기도 하고, 사마귀 같기도 하다.

나는 일행들과 함께 산책로를 따라 뒷산에 올랐다. 사방이 한눈에 들어왔다. 저 멀리 해변 끄트머리 장막 친 해무 위에 무지개가 벽화를 그려냈다.

ⓒ최광철 여행작가·방송인

‘철추 취∼익.’ 절벽 아래 빈 공간에 파도들이 모여 시끌벅적하다. 달청 팀은 둘이 걷다가 네 명이 되었고 다시 나 홀로 걸었다. 동산 길섶에 두꺼운 조개껍질층이 드러났다가 묻혔다가 다시 나타났다. 오래 전 이곳은 바닷속이었을 게다. 땅속에서 상상할 수 없는 에너지가 치솟았을 테지.
그때 인간이 존재했을까. 인간의 모습으로 살 수 없었다면 그 씨앗은 어떤 환경에 놓여있었을까. 땅속에, 물속에, 불 속에, 바람 속에, 아니면 공중에 있었을까?

하늘이 가깝다. 이토록 새파란 창공은 처음 본다. 달콤한 바람이 콧등을 스쳤다. 하얀 작은 키의 강아지풀이 귀엽게도 좌우로 몸을 신나게 흔들어댔다.

바다 한가운데 길게 뻗은 수목 군락이 해무 뒤에 숨었다가 다시 나타났다. 수평선 너머 옅은 구름이 붉어지기 시작했다. 보웬 타운 뒷산은 잔디 덮은 구릉지다.
듬성듬성 서있는 키 큰 나무들은 처음부터 그 자리에서 자란 듯 자연스럽다. 1미터 간격의 가드레일 S자 말목은 누군가를 안내하거나 저지하려 하지 않고 자연과 소박하게 어울렸다.
‘꽤액∼ 꽥 꽥.’ 순간 어디서 날아왔을까. 갈매기들이 내 머리 위를 크게 맴돌았다.

‘와∼. 멋지다.’
저 아래 양팔 한 아름 공간 크기의 하얀 백사장에서 누군가 혼자 낚시하는 모습이 예쁜 한 장의 사진처럼 내게 다가왔다. 나도 모르게 구릉을 미끄러져 가까이 다가갔다.

‘아니, 이렇게 고상한 여인이….’ 해 가림 둥근 모자 쓴 키 작은 여인이 바다를 향해 꼿꼿이 서있었다.

“안녕하세요. 고기 많이 잡으셨어요?” 나는 낚싯대 끝을 보며 물었다.
“아뇨.” 껌정 선글라스가 나를 향했다.
“어떤 물고기가 잡혀요?” 그냥 별 의미 없이 얘기를 던지고는 그물망을 찾느라 두리번거렸다.
“….” 여인은 낚싯대 손잡이를 아랫배에 꽂은 채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여기 고기 잘 잡혀요?” 그냥 또 말을 걸고 싶었다.
“진정한 낚시꾼은 고기를 잡지 않아요.” 여인은 나에게 눈길도 주지 않고 나긋하게 말했다.
“아, 그게요. 진정한 낚시꾼이라고요?” 나도 바다만 바라보며 말을 던졌다.
“네.”
“참 아름다운 해변이네요. 이곳엔 자주 오나 봐요?”
“매년요.”
“혼자 오셨나요?”
“···.”
그녀는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최광철 여행작가·방송인

“이리 와 봐요. 다시마가 파도에 떠밀려 나왔어요.” 추니가 어느새 해변에 들어섰다.

“그럼 좋은 날 되세요.”
나는 돌덩이처럼 딱딱한 모래사장을 밟으며 여인 곁을 스쳐 지났다. 둥근 모자에 살짝 가려진 마름모 그물처럼 새겨진 그녀의 귀밑 진한 주름이 내 눈에 들어왔다. 깨진 조개껍질을 밟는 기분이었다.

오늘 금요일 저녁의 캠핑장은 만원이다. 이곳 뉴질랜드 사람들은 정말 캠핑을 위해서 사는 사람들 같다. 편안한 집 놔두고 왜 이런 곳에 모여들까? 접이식 낮은 의자에 기대고 앉아 와인 잔을 든 노부부의 얼굴에 노을이 짙게 물들었다.

“우리도 차 한 잔씩 해요.” 추니가 캠핑장 프리 푸드 코너에 누군가가 놓고 간 커피 봉지를 들고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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