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날. 웰링턴 시내 구경을 나섰다. 뉴질랜드의 수도이고, 최대의 무역항치고는 인구 40만의 작은 도시였다. 웰링턴만으로 둘러싸인 좁은 매립지에 시가지가 형성되다보니 지역이 좁아 넓은 시가지를 형성하는데 한계가 있었다고 한다. 대부분의 주거지는 언덕 위 숲속에 그림처럼 자리 잡고 있었다.
관광 안내 센터에 들러 웰링턴의 대표적인 자전거 길인 리무타카 사이클 트레일(Rimutaka Cycle Trail)의 정보를 얻었다. 이 트레일은 게스트 하우스에서 항만 제방 길을 따라 한 시간 정도 거리에 있었다.
트레일 입구에 들어서자 허트(Hutt) 강을 따라 오르는 안내 표지판이 보였다. 허트 강은 폭 100미터도 채 되지 않는 작은 강이었다. 둔치엔 잡풀들이 우거졌고, 중간 중간에 버드나무와 오랜 고목들이 쓰러져 있었고, 노면은 5미터 폭의 아스팔트 포장길과 흙길이 반반이었다.
리무타카 사이클 트레일은 자전거 길이고 산책 길이었다. 꼬부랑길 야트막한 언덕을 쉴 새 없이 오르내렸다. 드물게 놓인 목재 벤치에 자전거를 기대고 앉았다. 마치 동네 정원에 놀러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 길도 며칠 전 달렸던 오타고 트레일과 마찬가지로 ‘위험하다. 꺾지 마라. 들어가지 마라. 버리지 마라’라는 안내판은 볼 수 없었다. 라워 허트(Lower Hutt)까지 갔다가 되돌아섰다.
오후에 웰링턴 중앙역 광장에서 한국의 우수 축제인 ‘원주 다이내믹 댄싱 카니발’을 홍보했다.
“한국에서 왔어요. 오는 9월 20일 원주에 세계적인 춤꾼들이 모인답니다. 함께해주세요.”
“여기 브로슈어 드릴게요.” 지나는 사람들에게 한 장씩 나눠주며 말을 건넸다.
어떤 이는 낯선 동양인에게 경계의 눈빛을 보내기도 했고, 어떤 이는 “원더풀. 판타스틱!”이라고 외치며 같이 사진을 찍자고 했다.
“당신 이젠 공무원이 아니잖아요.” 돌아오는 길에 추니가 말했다.
“그렇지. 하지만 이런 걸 꼭 공무원만 해야 하는 것도 아니잖아. 히히.” 내 스스로 생각해봐도 아직 난 공무원같이 네모지게 생각하고 격식 차려 행동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웰링턴을 떠나 버스 타고 로토루아로 가는 날, 게스트 하우스를 체크아웃 하고 자전거를 꺼내려고 보관 창고에 들어가니 ‘최광철 친구님. 남은 여정 즐겁게 보내세요. 마틴으로부터.’라고 적힌 엽서 한 장이 핸들에 꽂혀있었다. 오클랜드행 기차를 타려고 먼저 숙소를 떠난 독일인 자전거 여행가가 남긴 인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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