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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일러 캔 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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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일러 캔 낫

[‘바이크 보헤미안’ 최광철의 수상한 여행 3] ㉕성숙한 동행

출발 15분 전. 8시 정각에 픽턴 가는 인터 시티 버스가 도로변 승강장에 도착했다.

‘앗!, 큰일이다.’ 어디서 나타났을까. 엄청 큰 배낭을 짊어진 백패커들이 대합실에 꽉 들어찼다. 버스 기사님이 대합실에 들어서자마자 의자에 올라서서 대기하고 있던 승객들을 향해 뭔가 안내 사항을 얘기하는데 나는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과연 자전거를 실을 수 있을까?’ 나는 기사님 턱밑에서 안내 멘트가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곧바로 다가가 정중한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최광철 여행작가·방송인

“Good Morning. We are going to picton. we have 4 bikes and….”
하지만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기사님은 나를 슬쩍 밀치며 대합실 밖 버스 쪽으로 향했다.
“내가 한 말이 터무니없다는 뜻일까?” 나는 영문도 모른 채 기사님 뒤를 졸졸 따라갔다.

“가방 주세요.” 기사님은 버스 짐칸 문을 들어올리더니 백패커들의 짐을 하나둘씩 집어넣기 시작했다.
‘아니, 우리 자전거도 넣어야 하는데, 저러다가 짐칸이 꽉 차버리면 어떡하지.’ 나는 승객들 뒤에서 왔다 갔다 안절부절못하며 구시렁댔다.

“저기요. 기사님 저희 자전거 네 대는요. 어떡해요.”
머리를 구부려 좁은 짐칸 공간을 들락거리며 가방을 넣고 있는 기사님에게 계속 말을 걸었다.
“저기요. 기사님.”
하지만 기사님은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트레일러, …캔 낫.”
갑자기 기사님이 짐칸 바깥으로 나오더니 줄 서있는 승객들을 향해 크게 소리를 질렀다. 나는 일부 단어만 알아들었을 뿐, 우리 자전거를 실을 수 있는지 없는지 여부는 이해하지 못했다.

“하하하하.”
기사님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줄 서있던 승객들은 일제히 큰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 난 왜 웃는지 영문을 몰라 그냥 멍하니 서있었다. 뭔가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최광철 여행작가·방송인

“저기요. 한국에서 오셨어요?”
맨 뒤에 서있던 젊은 여성이 내게 다가와 말을 건넸다. 한국에서 온 여행객 같았다.
“네. 우리 자전거 네 대를 이 버스에 실어야 하거든요.”
“네, 그렇군요.”
“그런데 저 기사님 반응이 시큰둥해요.”
“예, 아까 운전기사가 농담한 거예요.”
“농담요?”
“자전거 네 대를 실으려면 버스에 트레일러를 달아야 하는데 뉴질랜드는 규정상 버스에 트레일러를 달 수 없다고 한 농담이었어요. 조금 더 기다려보세요. 아마 실어줄 거예요.”
“네, 휴우. 고맙습니다.” 긴 한숨을 내쉬었다.

잠시 후, 기사님은 버스 좌측에 짐을 가득 채우고는 뒤쪽의 작은 짐칸 문을 열어젖혔다.
“자전거 가져오세요.” 기사님이 나에게 손짓했다.
우리 일행은 15미터 거리의 대합실 문 앞에 쌓아놓았던 자전거와 짐을 초고속으로 옮겼다.
네 명이 함께 갈 수 있게 돼서 너무 고마웠다. 추니와 나는 3번 A, B좌석이고 만능 키와 인천 총각은 4번 A, B좌석에 나란히 앉았다.

7번 국도 차창 밖에 펼쳐진 자연 보전 지역인 레이크 섬너(Lake Sumner)의 풍광은 험하고 신비감을 자아냈다. 오후 5시 반. 우리 일행을 태운 버스는 예정 시간보다 1시간 늦게 픽턴 항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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