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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군' 위안부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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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군' 위안부는 없다

[신간] 안연선 씨의 <성노예와 병사 만들기>

일본군 위안부와 징용자 등 일제강점기에 강제로 끌려가 혹독한 고통을 겪은 할아버지, 할머니들로 구성된 '나눔의 집'과 '태평양전쟁 한국인 희생자 유족회', '일제강제연행 한국 생존자협회', '시베리아 삭풍회'등 5개 단체 피해자 회원 2백여 명은 지난 8월 13일 청와대에 국적 포기서를 제출했다.

반세기가 넘게 정부의 무관심과 일본의 외면 속에 방치되어 있던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결국 국적 포기를 선언한 것이다. 특히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가 50여년 동안 중국에서 살다 귀국한 이옥선 할머니(74)는 국적회복 2년1개월만에 다시 국적 포기서에 서명해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이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한은 언제나 풀릴 것인가?

이런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안타까운 외침에 힘을 실어주는 책이 한권 출간되었다. 여성학자 안연선(40) 씨가 십여 년 동안의 연구 결과를 풀어 놓은 <성노예와 병사 만들기>(삼인 간)가 그 책이다.

***"위안부가 아니라 성노예라 불러라"**

안연선 씨는 지난 십여 년 동안 일본과 한국을 오가며 위안부 피해자 13명, 옛 일본 군인 17명과 직접 만나 나눈 이야기를 중심으로, 위안부 피해자 38명에 대한 구술자료와 기존의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국내외 연구를 검토해 이 책을 출간했다. 책 뒤에 실린 주석과 주제별 참고문헌은 그가 이 책을 위해 쏟은 노고를 짐작케 한다.

하지만 서문에서 밝히고 있듯이, 그가 이 책을 쓰는 데는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고통과 한이 직접적인 동기가 되었다. 한국성폭력상담소 발기인으로 참여하며 성폭력 피해자를 직접 상담해온 그는 1992년 한국정신대연구회에 참여해 위안부 피해자들을 만나 인터뷰하고 증언집을 내는 일을 함께하면서 이 문제에 관여하게 된다.

그 후 그는 영국, 일본, 독일, 남아프리카공화국 등에서 전시 강간과 오키나와 미군 강간 문제 등 위안부 문제와 관련된 몇몇 사건들을 연구하면서 위안부 문제를 더욱더 파고들었다. 이런 국내외의 피해자들과 직접 대면한 그의 경험은 이 책이 피해 할머니들의 '헤아릴 수 없는 사연'을 중심으로 구성된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이 책에서 안연선 씨는 의도적으로 '위안부'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기존에 사용되는 '종군 위안부'라는 용어에는 "따라다녔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피해 할머니들이 그럼 자발적으로 일본군을 따라다니면서 성적 서비스를 제공했다는 말인가?

위안부들에게 적용되었던 강제적인 규율, 감금 상태 그리고 자유의 박탈 등을 고려한다면 더 나아가 그들이 납치되거나 기만당해 끌려온 것을 염두에 둔다면, 이제 이 용어는 '일본군 성노예'로 바뀌어야 할 것이다. 저자는 이처럼 왜곡된 함의를 드러내는 용어에 대한 항의의 표시로서 이 책에서 '위안부'란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민족주의-여성주의 기존 연구들 한계 분명해**

기존의 연구들을 비판적으로 분석하고 있는 이 책에서 저자는 기존 연구들이 '민족주의'와 '여성주의'라는 두 가지 편향을 안고 있다고 지적한다. 기존 민족주의 연구들은 위안부 문제를 조선 민족 말살 정책의 일환으로 접근하면서, "일본 제국주의가 한국 여성의 정조를 짓밟았음"을 비난하는 가부장적 순결 이데올로기를 드러낸다는 것이다. 이런 시각은 이 문제가 인권의 침해 문제라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고 저자는 비판한다.

여성학자인 저자는 기존의 '여성주의' 시각의 연구가 갖는 편향성도 지적한다. 저자는 일부 여성주의 연구자들이 여성문제의 보편성을 강조하면서, "위안부 제도가 특별한 식민주의 정책의 일환이라는 점을 지적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예를 들어 "일본 위안부 여성들도 한국을 비롯한 일본의 다른 식민지국 출신의 위안부들과 같은 성노예의 희생자였다"는 주장을 살펴보자. 이런 주장은 일부 긍정성에도 불구하고, "위안부 제도와 밀접한 연관이 있는 일본 식민주의와 일본 천황제의 문제를 간과하는 등 성폭력과 식민지 권력 사이의 관계를 지나친다."

***"내가 겪은 걸 말로는 이루다 못해"**

저자는 기존 연구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 위안부들과 옛 일본 군인들의 기억을 더듬는다.

"내가 겪은 걸 말로는 이루 다 못해"라는 말로 증언을 시작한 할머니들은 평생 동안 그들의 몸에 새겨진 폭력의 기억들을 풀어놓는다. "뭔가가 내 몸 안으로 들어오는데 나는 그게 무릎인줄 알았다"라고 할 정도로 성적으로 무지했던 십대 소녀들은 "너무 피곤해 앉지도 못할 정도로, 거의 반은 잠든 것처럼" 보이는 상태가 되도록 일상적으로 성폭력에 노출된다. 그리고 전쟁이 끝난 후에는 "사용후 버려지는 소모품"처럼 버려지거나 살해당한다.

저자는 위안부 피해자들을 "연인이자 어머니같은 존재"와 "더러운 여자들"로 상반되게 기억하는 옛 일본 군인들의 육성을 통해, 이런 성폭력이 일본 군인들에게는 여가를 보내는 방법이자, 하나의 보상으로서 주어졌다는 것을 밝혀낸다. 위안소 제도는 전쟁을 수행하는 군인들을 효율적으로 다스리기 위한 일종의 보상체계였던 셈이다.

***"위안부 제도는 일본 식민주의를 유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 해"**

이런 증언들을 통해 저자는 "위안부 제도가 일본 식민주의를 유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주장한다. 즉 "여성에 대한 성폭행"과 "식민주의 지배"는 서로 유기적으로 결합된 위안부 문제의 양면이란 것이다.

단적으로 일본 군인들은 위안소 제도를 통해 "남성적인 공격성과 여성적인 복종 사이의 모순을 해결했다"는 것이다. 즉 일상적인 체벌이나 굴욕감 등을 위안부들에게 공격성, 증오 등의 감정으로 표출하게 해, 전쟁 수행에 차질이 없게끔 했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성행위 과정에는 일상적인 폭력과 학대가 따라다녔다.

또 일본 군인들은 조선 여성들의 '정체성'을 붕괴시키면서 "우월한 일본 민족", "천황의 군인"으로서 자신의 민족 정체성을 강화했다. 더 끔직한 것은 피해 여성들 스스로가 성적인 폭행을 "민족에 대한 굴욕과 수치, 민족적 자부심의 붕괴"로 해석하게 해 "자신의 미래와 운명이 일본의 미래와 일치한다는 환상을 심어주는" 것을 위안부 제도를 통해 일본이 의도했다는 사실이다.

***"용서하되 잊지 말자"**

위안부 문제의 다양한 지점들을 검토한 저자는 위안부 할머니들의 저항이 "반식민주의 민족주의 운동의 역사에 중요한 기여를 한 것"을 높이 사야 한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덧붙여 이들의 저항을 "민족주의 시대에 맞물려 지속되어 온 가부장제에 대한 의미 있는 도전으로 자리매김"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우리들의 실천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15일 노무현 대통령은 "동북아시아 평화와 번영"을 얘기했다. 13일 청와대에 국적 포기서를 제출하고자 했던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경찰들에게 막혀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동북아시아 평화를 위해서는 선결 조건이 있다. 용서는 하되 절대로 잊지 않아야 할 기억들이 있는 것이다.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한은 이제는 우리가 나서서 풀어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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