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0월 7일로 예정된 캘리포니아 주지사 보궐선거가 클린턴 전 대통령과 미 월가의 거물 워렌 버핏의 대리전 양상을 보이고 있다.
공화당 후보로 출마한 할리우드 스타 아널드 슈워제네거가 급격한 인기몰이를 해나가자 클린턴 전 대통령이 민주당 소속의 그레이 데이비스 주지사에게 선거전략을 지도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리기 무섭게 슈워제네거 진영은 워렌 버핏을 경제고문을 영입했다며 응수하고 나선 것이다.
***"클린턴, 데이비스 현 주지사의 주요 전략 자문관"**
재임기간동안 소환 움직임의 일종인 탄핵운동에서 살아남았던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 지난 몇 주간 주민소환에 직면해 있는 그레이 데이비스 캘리포니아 주지사의 주요 전략 자문관 역할을 맡고 있다.
뉴욕타임스 12일자 보도에 따르면 클린턴 전 대통령은 지난주 시카고에서 열린 노동총연맹-산업별회의(AFL-CIO) 시카코 총회서 데이비스 주지사와 그 부인을 개인적으로 만나 데이비스 주지사가 소환투표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에 관해 자문을 해줬다.
클린턴이 데이비스 주지사에게 충고한 전략은 "주지사답게 행동할 것, 이번 선거는 데이비스 주지사에 대한 것이 아니라 주민소환투표 발의권에 대한 것임을 분명히 할 것, 아널드 슈워제네거와의 싸움으로 몰아가는 언론보도에 말려들지 말 것" 등 3가지로 알려졌다.
이 계획은 클린턴이 탄핵을 모면하기 위해 사용했던 방법과 매우 비슷하다.
클린턴은 대선 등을 비롯한 민주당의 주요 선거에서 정치적 자문 역할을 거의 맡지 않아 왔다는 점에서 데이비스 주지사에 대한 조언은 이례적인 것으로 데이비스 주지사는 정치적으로 상당히 고무된 것으로 알려졌다.
클린턴은 9월 초 열리는 데이비스의 연설회에도 직접 참석할 것으로 알려졌다.
***터미네이터, 워렌 버핏 경제고문으로 영입**
이에 맞서 슈워제네거 진영은 13일(현지시간) "워렌 버핏이 경제고문을 맡아주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정치적으로 전혀 검증된 바 없는 슈워제네거로서는 적어도 캘리포니아 경제를 구출하는 데 대안이 없을 정도의 막강한 원군을 얻은 셈이다.
출마 선언 이후 언론의 화려한 조명을 받으며 최근 CNN 여론조사에서 42%의 높은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는 아널드 슈워제네거로서는 경제 문외한이라는 비난에 곤혹스러워 하던 차였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워렌 버핏은 "아널드와은 오랫 동안 알고 지내온 사이로 그는 위대한 주지사가 될 것"이라면서 "캘리포니아의 경제위기는 미국 전체를 위해서도 반드시 해결되어야 할 중대한 문제이며 아널드는 그 과제를 잘 수행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격려했다.
워렌 버핏은 세계 2위의 부호이자 월가에서 가장 존경받는 투자자로 잘 알려진 인물이다.
그러나 슈워제네거에게 탄탄대로만 펼쳐진 것은 아니다.
이번 캘리포니아 주지사 선거뿐만이 아니라 내년 미국 대선에서도 최대 변수로 작용할 것으로 예측되는 라틴계 유권자들로부터는 곱지 않은 시선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슈워제네거의 '원죄'**
슈워제네거에게는 '불법이민자 권리 제한 법률안'을 지지했던 '원죄'가 있다. LA 타임스에 따르면 슈워제네거는 지난 94년 불법이민체류자에 대한 공공서비스를 제한하는 내용의 '주민발의안 187호'를 지지했다. 이같은 사실이 알려지자 민주당은 슈워제네거의 '원죄'를 공격하고 나섰다.
오스트리아 태생인 슈워제네거는 그동안 라틴계 유권자들을 의식해 자신도 무일푼으로 미국에 건너온 이민자 출신임을 강조하며 표심잡기에 노력해 왔는데 민주당에서는 슈워제네거 선거 진영에 전 주지사인 피트 윌슨과 그의 측근들이 함께 있다며 공세의 고삐를 죄고 있다.
슈워제네거 선거진영 공동의장을 맡고 있는 피트 윌슨 전 주지사는 지난 94년 주지사 재직시절 주민발의안 187호 도입을 주도한 인물인데 멕시코 유력일간지 엘 우니베르살은 12일 '터미네이터가 그의 얼굴을 드러냈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이런 성향의 피트 윌슨 전 주지사를 선거 책임자로 임명한 슈워제네거를 '반 이민 얼굴을 가진 후보'라고 혹평하기도 했다.
아트 토레스 캘리포니아 민주당 의장도 엘 우니베르살과의 인터뷰에서 "유유상종이라는 말이 있다"면서 "불행하게도 윌슨 전 주지사는 이민자들과 히스패닉계를 반대하는 제안을 지지했다"며 슈워제네거를 공격했다.
미국과 이민협정을 체결하는 것은 멕시코 외교의 최대 현안이다. 로스엔젤레스에만 6백만 명이 넘는 멕시코 이민자가 있으며 캘리포니아 전체적으로 1천만 명이 넘는 멕시코계 유권자가 거주하는 상황을 감안하면 멕시코 본토의 이런 반응은 이번 소환선거와 관련해 적지 않은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주민발의안 187호는 주민투표에서 59%의 찬성으로 가결됐었으나 법원에 의해 시행이 중지된데 이어 98년 연방법원에서 위헌으로 최종 판결났다.
이 발의안은 불법이민과 그 자녀들에게 의료 및 사회혜택, 공립학교 입학을 거부함과 동시에 경찰, 의료요원, 교사 등에게 불법이민의 고발을 의무화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이때문에 캘리포니아가 정치적으로 민주당의 아성이 된 배경에는 이 발의안에 분노한 라틴계가 공화당에 등을 돌리고 민주당을 지지한 덕분이라는 지적도 있다.
미국 라틴계 최대 조직인 '라 라자(La Raza)'의 세실리아 뮤노즈 부의장은 "이 발의안과 윌슨 전 주지사는 캘리포니아나 전국적으로 라틴계가 단일 세력으로 뭉치게 하는 요인으로 여전히 남아있다"고 말하면서 "공화당은 아직도 이 교훈을 알지 못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LA 타임스의 지난 1999년 여론조사에 따르면 비라틴계 백인들의 경우 65%대 38%로 불법이민자 권리제한안을 지지한 반면 라틴계 이민자들은 26%만 지지했을 뿐 70%는 반대의사를 표명해 두 인종간 큰 차이를 보였다.
지난 6월 미국 연방 인구통계국이 발표한 인구동향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7월 현재 라틴계 인구는 약 3천7백만명으로 흑인인구를 공식적으로 추월해 소수인종 가운데 최대 인종으로 떠올랐다. 이 때문에 선거전문가들은 슈워제네거나 내년 재선을 위해 라틴계를 끌어안으려는 부시 대통령에게 라틴계 문제는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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