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자살이 급증하고 있다. 정몽헌 현대아산 의장의 자살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매일 여러 가지 종류의 자살이 언론에 노출되고 있다. 자살이 주목을 받으면서 새삼 자살 충동과 긴밀한 관련을 맺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우울증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미국 존스홉킨스 의대와 위스콘신 의대의 최근 열구결과에 따르면 우울증 환자의 자살 위험이 일반인에 비해 41배나 높으며 자살자의 약 70%가 우울증을 앓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최근 아이들과 동반죽음을 선택한 주부도 우울증을 앓았다고 하며, 홍콩 배우 장궈룽도 심한 우울증으로 정신과 치료를 받다 투신자살로 삶을 마감했다.
***'마음의 감기' 우울증**
'마음의 감기'라고도 불리는 우울증은 현대인들에게는 가장 흔한 정신과 질병으로 알려져 있다. 통계에 따르면 성인의 약 11% 정도가 한번쯤 앓았을 정도다. 미국 국립정신건강연구소(NIMH)는 미국 성인의 10%가 우울증 증상을 보이고 있다고 밝혔다. 또 WHO(세계보건기구)는 고혈압, 당뇨에 이어 우울증을 만성 질환 가운데 세 번째를 차지하고 있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우리나라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여성의 경우에는 5-9%가 우울증 환자로 알려져 있고, 남성은 이보다 적은 2-3%이다. '주부우울증'부터 중년 남성들의 우울증에, 청소년들의 우울증까지 세대를 가리지 않고 크게 늘어나는 추세하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지난 2000년 2백억원에 불과했던 국내 항우울제 시장은 지난해엔 3백60억원을 넘어섰다.
우울증은 보통 스트레스, 성격과 같은 사회, 심리적 요인과 아직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은 유전적 요인이 뇌의 신경전달 물질과 같은 생화학 물질과 상호 작용해 나타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과학자들은 특히 감정조절, 불안, 충동성, 폭력성 등과 연관된 세로토닌과 같은 뇌의 신경전달 물질이 중요한 연관성이 있을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우울증은 자연적으로 치유되기도 하지만 정신치료나 약물치료와 같은 치료가 없을 경우에는 피해의식, 망상, 환청, 환각 등이 동반되는 정신질환을 앓게 되거나 자살과 같은 극단적인 행동을 이끄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최근에는 많은 의사들이 항우울제 투약을 권장하고 있다. 심지어 항우울제는 일부 우울증 환자와 언론에 의해 '해피 메이커'라는 별명을 부여받기도 했다. 그런데 최근에 항우울제에 대한 전혀 상반된 연구 결과들이 나와 소비자들을 헷갈리게 하고 있다.
***항우울제가 자살을 촉발한다?**
8일(현지시각) 뉴욕타임스는 "유명한 항우울제인 팍실이 10대 청소년의 자살을 촉발시킨다는 논란“을 보도하면서 "항우울제의 안전성이 다시 논쟁거리가 되고 있다"고 전했다. 항우울제가 오히려 자살을 촉진한다는 것이다.
뉴욕타임스는 지난 6월 영국의 제약당국에 의해 "10대 청소년과 어린이가 팍실을 복용할 경우 자살 충돌을 느낀다"는 문제점이 제기되었다면서, 특히 어린환자들이 복용시 처음 몇 주간 자살 충동을 크게 느낀다고 전문가들이 지적했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과거 12년전 시판승인에 참가했던 전문가들의 말을 인용하면서, "약과 자살간의 관계를 입증하는 결정적인 증거"가 있다고 말했다.
항우울제의 부작용은 이밖에도 많은 것이 보고되고 있다. 지난 1월 팍실, 프로작, 졸로포트 등 유명한 항우울제들이 위장출혈 부작용이 있다는 연구결과가 나온 것은 그 대표적 예이다. 우울증 환자 2만6천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 결과 항우울제를 복용한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위장출혈 위험이 3배 이상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항우울제가 뇌세포 생성에 도움을 준다?**
한편 항우울제의 효과에 대한 연구 결과도 끊임없이 언론에 보도되고 있다. 지난 7일(현지시각) 로이터는 항우울제가 새로운 뇌세포가 생성하는 데 도움을 주는 것이 관찰되었다는 연구 결과를 보도했다. 스트레스나 정신적 상처에 의해 손상된 뇌세포가 다시 생성되는 데 항우울제가 유용한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지난 7월 29일(현지시각) BBC 인터넷판이 항우울제가 뇌종양의 진행을 지연시켜 환자의 생존기간을 연장시키는 효과가 있다는 보도와도 일맥상통한다. BBC는 현재 1백여명의 뇌종양 환자들이 런던의 3개 대학병원에서 실시하는 임상시험에 참가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항우울제는 우울증 치료의 일부분에 불과해"**
이런 전혀 상반되는 주장들을 어떻게 판단해야 할까?
자살이나 우울증의 원인을 사회·심리적 요인, 유전적 요인이 신경전달 물질과 복합적으로 작용한 데서 찾는 것처럼, "우울증의 치료도 항우울제 복용 같은 약물치료에만 의존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일부 전문가들의 지적은 귀기울여 볼 만하다.
실제로 많은 과학자들은 "항우울제들의 사용량이 급증하고 있는 것은 약물 자체의 실질적 필요성이나 확실한 임상적 증거에 기인한 것이라기보다는 제약회사들의 적극적인 광고전략에서 비롯된 결과일 뿐"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단기적으로 항우울제가 유용할지 몰라도, 장기복용시 효과는 아직 밝혀진 게 없다는 것이다. 이들은 항우울제 투약을 일시적으로 중단시키더라도 우울증이 재발하지 않은 사례를 들면서 우울증의 효과에 이의를 제기한다. "경미한 우울증에 너도나도 항우울제를 찾는 현상에는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이탈리아 볼로냐 대학에서 임상심리학 교수로 재직중인 지오반니 파바 박사는 "생활습관의 개선이나 인지행동요법과 같은 약물치료가 아닌 우울증 치료법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강조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또 신경전달 물질이나 뇌 호르몬의 기능이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은 상황에서, 항우울제의 효과가 "상당 부분 불확실성의 영역"을 안고 있다는 지적도 설득력이 있다. 항우울제가 특정 환자들에게는 높은 효능을 보이면서도, 일부 환자들에게는 효과가 제한적이거나 거의 없는 경우가 자주 보고되는 것은 이 때문이란 것이다. 제약회사나 해당 과학자들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항우울제가 자살을 촉발한다"는 주장이 제기되는 것도 이런 맥락이란 주장이다.
***자살과 우울증, 사회가 만드는 병일수도**
일단 많은 과학자들이 지적했듯이 자살과 우울증의 관계나, 우울증과 세로토닌과 같은 뇌 신경전달 물질의 관계를 부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여러 가지 부작용이 지적되는 속에서도 뇌 신경전달 물질에 대한 지식을 응용한 항우울제가 의학계나 대중들에게 널리 받아들여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다만 최근 우리나라에서 급증하고 있는 우울증과 자살의 원인을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경기침체의 장기화로 인한 기업 구조조정, 가족간 대화 부재 등이 중년 남성들의 우울증이 늘어나는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또 최근의 자살과 우울증 원인의 상당 부분이 카드빚, 실업과 같은 사회경제적 원인이란 것도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이렇게 자살과 우울증이 사회가 만드는 병이라면, 이들을 치유하는 데는 약물치료 외에도 일상적인 관계를 포함한 사회 자체를 치유하는 과정이 포함되어야 할 것이다. 제약회사들의 항우울증 판매량이 갈수록 늘어나는 것은 "자살과 우울증이 사회를 치료해야만 완치될 수 있는 병이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따끔하게 느껴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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