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밤의 대통령'으로까지 불리던 조선일보사의 방일영(80) 전 고문이 8일 오전 2시5분 서울대 병원에서 숙환으로 별세했다.
1923년 11월26일 평안북도 박천생인 고인은 경성제일고보(경기중학교 전신)를 거쳐 일본 중앙대학 예과를 졸업한 뒤 1943년 조선일보사에 입사, 1999년 이사 고문직을 사임할 때까지 55여년 동안 조선일보에 몸담아 왔다.
고인은 일제강점기에 경영난에 봉착한 조선일보를 차지한 방응모 전 조선일보 사장의 양자로 입적한 방재윤씨의 장남으로, 1943년 조부인 방응모 전 사장의 비서로 조선일보에 입사했다. 당시 조선일보가 폐간된 시점이어서 '신문없는 조선일보사' 직원이 된 셈이다.
고인은 1945년 11월23일 조선일보가 복간된 뒤인 1950년 7월 방응모 전사장이 납북되자 같은 해 10월17일 취체역(이사)에 선임됐고 1954년 31살의 젊은 나이로 대표 취체역에 취임해 경영권을 잡았다. 1964년 11월15일 회장에 취임하는 동시에 동생인 방우영 현 조선일보 명예회장을 대표이사로 임명해 일선경영을 맡겼으며 1993년 3월에는 지병인 당뇨로 인해 이사 고문직까지 사퇴하며 경영일선에서 완전히 물러났다.
고인은 1963년 한국신문발행인 협회 이사장, 1965년 국제언론인협회(IPI) 위원, 1969년 아시아 신문재단(PFA) 부이사장, 1976년 IPI한국위원장 등을 역임하기도 했고, 전두환 정부시절에는 국민훈장무궁화장(1982년), 김대중 정부시절에는 금관문화훈장(1999년) 등을 받기도 했다.
방일영 전 고문은 조선일보 재직기간중이던 80년대 조선일보를 급팽창시켜 발행유가부수 1위의 신문으로 끌어올렸다. 그러나 이같은 성장과정은 80년 광주학살이후 전두환 군사정권과의 유착이 큰 밑바탕이 됐고, 코리아나 호텔 특혜의혹 등 적잖은 시비를 낳기도 했다. 또한 대통령선거 등 주요한 정치전환기마다 강한 정파성을 드러내 '안티조선' 운동을 자초하기도 했으며 지금도 '족벌언론' 논란에 휘말려있는 상태다.
고인의 빈소는 서울대학교 병원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오는 12일 오전 서울대 병원에서, 영결예배는 이어 서울 동작구 흑석동 자택에서 거행될 예정이다. 장지는 경기도 의정부시 가능동 선영. 유족으로는 장남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과 차남 방용훈 코리아나 호텔 사장 등 5남 1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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