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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불한당들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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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불한당들의 시대

그림소설 <불한당들의 시대> 제1부 이야기의 서막⑩

이우학교 미술교사이기도 한 노길상 작가의 픽션 <불한당들의 시대>를 연재합니다. <불한당들의 시대>는 7세기 경의 한반도 역사를 극화(劇畫:그림이야기) 형식의 판타지 소설로 창작한 것입니다. 부석사의 연기 설화를 바탕으로 의상과 선묘, 그리고 두 사람과 관계된 실존 또는 가상의 인물들 사이에 벌어지는 이야기입니다.(편집자)



11. 백고좌회(百高座會)

하늘 높이 솟은 황룡사 용두당간에 당(幢:법회를 알리는 깃발)이 걸렸다. 백고좌회(百高座會:각처의 교단을 대표하는 백명의 고승들이 주관하는 법회)를 알리는 깃발이었다. 이로서 소문만 무성하던 황룡사 백고좌회 개최는 공식적인 사실이 되었다. 각지에서 승려들이 서라벌로 모여들었다. 월성과 황룡사, 그리고 북궁으로 이어지는 주작대로에는 승려들로 차고 넘쳤다. 형형색색의 마차와 수레는 만발한 봄꽃처럼 서라벌을 수놓았다.


무엇보다 아막성 전투의 승리로 민심은 들떠 있었다. 국인(國人)들은 저마다 나라의 운이 창성(昌盛)할 것이란 기대를 숨기지 않았고, 하여 백고좌회는 신라의 번영을 자축하는 축하연이나 다름이 없었다. 좌탈입망(坐脫入亡:참선한 자세로 죽음을 맞이하는 것)한 상인(上人:지혜와 덕을 겸비한 승려들에 대한 존칭)들에 대한 흉흉한 소문은 더 이상 국인들의 관심사가 되지 못했다. 오히려, 상인들이 곧 미륵으로 환생할 것이라는 뜬금없는 풍문이 나돌았다. 개중에 어떤 자들은 새로 태어난 아이들을 찾아다니며 어딘가에서 미래의 부처, 즉 미륵(彌勒)으로 환생할 황룡사 상인들을 수소문하기도 하였으니 소문만 쫓는 허망한 자들의 경거망동은 고금(古今)이 다를 바 없었다.

어쨌거나, 그즈음의 서라벌은 백고좌회로 온통 흥청망청하였다.


한편, 사도태후가 있는 영흥사는 적막이 감돌았다. 그 어느 누구도 쇠락한 늙은이를 찾아올 리 만무했다. 간간이 들려오는 산새 소리만이 무겁게 내려앉은 대기를 일깨울 뿐이었으니, 영흥사는 울창하고 무성한 천경림의 초목에 둘러싸여 더더욱 고립되어만 갔다.

그러나, 이 모든 적막을 일순간에 깨트리는 기이한 괴성이 울려 퍼지곤 하였으니...

격살 문에 드리운 나무 그림자에도 날아가는 새들의 퍼덕이는 소리에도 사도태후는 소스라치게 놀라 칼을 휘둘렀다. 태후는 덤성하고 수북한 백발을 휘날리며 혼잣말을 지껄였고, 긴 칼을 질질 끌며 침실을 배회하였는데 그 모습은 마치 미친개가 좁은 우리를 이리저리 서성대는 것과 같았다. 아무렇게나 동여맨 끈을 길게 늘어뜨린 칼은 태후의 몸에 어울리지도 감당되지도 않았으나, 피골이 상접하여 더 이상 쇠약할 일이 없을 것 같은 몸이었지만 분노와 절망에 사무친 늙은이의 발악은 기광스러웠다. 태후는 흐느적거리며 칼을 휘두르다 이내 쓰러지고 말 뿐이었고, 그럴 때마다 마치 실성한 사람처럼 허공에 삿대질을 하며 고래고래 고함을 질렀다.

"백정 네 이놈~ 네놈의 잔악함을 대자대비 석존께서 모를 줄 아느냐? 부처께서 널 용서치 않을 것이다. 백정 네 이놈~ 네놈이 살려달라고 애걸복걸하는 날이 꼭 올 것이다. 사지를 찢어도 분이 안 풀릴 놈!"

그러다가, 또 언제 그랬냐는 듯 보료에 좌정을 하고 타이르듯이 말했다.

"니 아비가 보명궁(寶明宮)의 담을 넘다 개에 물려 죽었을 때 내 마음을 너는 이해할 수 있을 것이냐? 아비가 비명으로 죽고 혼자 남은 너를 보았을 때, 이 할미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냐? 할미의 바람이라면 네가 어엿한 임금이 되는 것이었다. 세상 모든 남정네들을 믿지 않았다만 그래도 너는 믿었다. 그런 할미의 마음도 모르고 너는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패악질이나 일삼으니 그것이 될 일이겠느냐? 이제사 너를 꾸짖어 본들 무슨 소용이겠냐만, 지금이라도 뉘우치고 용서를 구한다면 내 용서해 줄 것이야. 그러면, 세상은 다시 평온을 찾을 것이고, 너는 이 할미가 시키는 대로 믿고 따르면 돼. 암~ 그렇고 말고."

태후의 정신은 오락가락하였다.


태후의 침소엔 사람 갑절 크기의 소상(塑像:찰흙으로 만든 불상)이 있었다. 오래전 기달(吉達)과 두두리들이 일으킨 화재로 영흥사가 소실되었을 때, 그 잿더미 속에서 유일하게 건사한 불상이었다.

불에 거슬려 검붉은 형체로 남았지만 예전의 화려했던 황금 분칠(粉漆)의 흔적이 듬성듬성했다. 불상은 태후의 유일한 말동무였다. 어떤 때는 아미타불(阿彌陀佛:서방정토, 즉 극락에 있는 부처로 이를 염하면 죽은 뒤에 극락에 갈 수 있다)이었고, 또 어떤 때는 석가모니불(Sakyamuni:'사키야족의 성자'라는 뜻으로 사키야족의 중심지였던 카필라 왕국의 왕자로 태어나 득도하여 부처가 된 고타마 싯다르타를 가리킨다)이었다. 아미타불은 자신의 죽음과 사후를 위해 찾았고, 석가모니불은 다시 왕을 굴복시키기 위한 소망과 희망을 위해 찾았다.

그날은 석가모니불이었다.

"서억가모니불~ 서억가모니불~서억가모니불! 간절히 기도하고 기도하옵니다. 백정을 벌하여 주시옵소서. 천수를 누리지 못하고 비명횡사하도록 해 주십시오. 그놈의 후사(後嗣:대를 잇는 자식)를 없애 주시옵소서. 서억가모니불~ 서억가모니불~"

비형랑은 태후를 매일 감시하여 왕에게 보고했다. 비형랑은 태후의 일거수일투족을 하나도 빠트리지 않았으나, 왕은 더 이상 태후의 일에 관심이 없었다. 대충 듣고 대충 말했다.

"늙은이가 사술(邪術:사악한 술법)로 나를 저주하고 있다? 허공에 칼을 휘두르면서? 하하하! 이제는 요망한 늙은이가 아니라 허망한 늙은이구나! 수족같이 부리던 황룡사의 상인들도 없는데 늙은이 혼자 뭘 할 수 있겠느냐! 너는 이제 영흥사에 가지 않아도 되겠다. 늙은 여우는 그러다 죽을 것이니, 더 이상 태후 할미의 일은 보고하지 말라!"

비형랑은 왕의 명이 없는데도 사도태후를 계속 지켜봤다. 태후가 주절거리는 사술이 께름칙해서 만은 아니었다. 태후가 다시 세를 규합하여 복권될 것을 우려한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비형랑은 다만 태후의 죽음을 지켜보고자 했다. 외롭고 비참하게 죽을 할미의 마지막을 똑똑히 자신의 두 눈으로 확인하고자 했을 따름이었다.
그날은 아미타불이었다.

"아미타불~ 나는 복수해야 합니다. 끝끝내 살아남아 백정 놈에게 복수를 해야 합니다만, 이제 늙고 쇠락한 몸뚱이로는 어찌할 방도가 없습니다. 서방정토 아미타불~ 부디 저의 몸을 거두시더라도 혼백만은 이승에 남게 해 주소서. 저의 원혼이 백정 놈을 끝장낼 수 있도록 허락해 주소서. 아미타불~"

불상 앞에 주저앉은 태후는 더 이상 삶을 이어갈 의지나 힘이 없어 보였다.

그것은 낙망이었다.


그때였다. 불상 정수리에 앉은 먼지가 흩날리기 시작했다. 마치 금가루처럼 햇빛을 받고 반짝반짝 빛나며 허공을 떠다녔다. 태후는 그것이 자신의 간절한 기도에 아미타불이 반응하는 것이라 여겼다. 태후는 벌떡 일어나 소불의 몸체를 부여잡았다. 불상도 좌우로 흔들리더니 태후에게 성큼 다가갔다. 태후는 염불을 하며 한껏 상기된 표정으로 자리를 덜썩거리며 자신에게 다가오는 불상을 더욱 세차게 끌어안으려 했다. 급기야 불상은 태후를 향해 기울어지더니 불단 앞으로 고꾸라졌다. 육중한 불상이 태후의 몸을 덮쳤다. 단말마의 비명도 내지르지 못하고 태후는 불상에 깔려 죽었다. 태후의 표정은 마치 열락을 맛본 사람처럼 만면의 미소를 짓고 있었고 두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었다. 붉은 피가 바닥의 홈을 타고 흥건하게 퍼져나갔다.

잠시 후, 소불 뒤에서 비형랑이 걸어 나왔다.

"진즉에 아셨어야지요 할마마마. 늙은이가 나고 들 때를 모르면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음사(陰事:성교의 기술)의 시중(時中)을 체득하셨다는 분이 정작 자신의 때를 모르다니요. 왕을 아무렇게나 훼사하면 명줄이 짧아진다는 걸 아셨어야지요. 더 이상 연명해 본들 빛 볼일 없으니 부처 품에서 극락왕생하십시오."

비형랑은 손을 뻗어 태후 할미의 눈을 감겼다. 그때였다. 태후가 치렁치렁 이고 다니던 하얗게 변색된 대수(大首) 머리가 홀연 발이 달린 짐승처럼 쏜살같이 문지방을 넘어 달아나는 것이 아닌가! 흰 대수 머리는 마치 여우 같기도 백구(白狗) 같기도 하였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비형랑은 쫓아갈 엄두를 못 냈고, 그것은 천경림의 짙은 어둠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소불이 넘어지며 드러난 벽면에서 지금까지 그 어느 누구도 알지 못했던 감실(龕室:신주를 모셔두는 작은 방)이 드러났다. 감실 속엔 반가부좌를 튼 불상이 황금빛 광채를 내뿜고 있었다. 어떤 연유로 숨겨진 감실에 비장(秘藏)된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분명한 것은 비형랑의 마음이 왠지 들뜨거나 설레었다는 것이다. 그것은 신앙에서 오는 환희심이거나 경외감 같은 것은 아니었다. 비형랑은 마땅한 말을 찾지 못했다.

구태여 말하자면 '시중(時中)'일지도 모른다고 비형랑은 생각했다.

불상의 자태는 신비로웠다. 여인의 벗은 몸 같기도 했고, 아직 미성숙한 소년의 알몸 같기도 하였다. 살포시 감은 눈매 아래로 다문 입술에 설레였고, 섬섬옥수 가녀린 손 끝에는 도톰한 뺨이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상기된 듯하였다. 그 아래... 얇디얇은 박의(薄衣)를 입은 것인지 벗은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무릎 위에 올린 발을 보는 순간, 비형랑은 저절로 굵은 침을 꿀꺽 삼켰다. 비형랑의 샅에 달린 물건이 난데없이 꿈틀거렸다. 처음이었다. 일찍이 느끼지 못했던 몸의 반응이었다.

그것은 '시중(時中:남녀 간의 교합이 순간적으로 황홀경으로 빠져들어 상호 일체가 되는 순간)'이었다. 태후할미가 누누이 강조했던 시중의 순간이 이와 같은 것이리라. 그것은 음사(陰事)의 절대 경지였다.

그러나 비형랑은 스스로를 책망했다. 그 '시중'의 대상이 하필 불상이라니! 왠지 모를 두려움이 밀려왔으나, 비형랑의 시선은 불상의 발가락에 고정되어 조금도 움직일 수 없었다. 스스로 찾아와 일순간 맞닥트린 '시중'의 순간은 일 개인의 사소한 의지로는 어찌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것은 운명과도 같은 것이었다.

비형랑은 애써 일종의 종교적 경외심 때문이라고 스스로를 타일렀다. 샅에 달린 물건이 반응한 것은 분명 깊은 신앙심에 빠져들다 보면 그럴 수 있는 것이라 거듭 다짐하였으나 납득할 수는 없었다. 그렇다면, 불상의 발가락에 국한된 지극히 사소한 숭배일지도 모를 것이리라 여겼다. 비형랑은 그렇게 생각했고... 생각해야만 했다.

비형랑은 환하게 빛나는 반가좌상의 몸과 발가락에 빠져 오랫동안 '시중' 속에서 허우적대고 있었다.


사도태후의 장례는 영흥사의 고두(庫頭:사도태후의 거처)에서 치러졌다. 고두의 내부는 말끔하게 정돈되었지만 바닥의 틈으로 스며든 태후의 피로 인해 비린내가 진동했다. 사도태후를 깔고 넘어졌던 불상은 산산이 부서져 흙가루가 되었고, 그 빈자리에 벽면 감실에서 발견된 반가좌상이 위치했다. 사도태후의 장례는 백고좌회로 온통 들떠 있는 세상에서 관심을 끌지 못했다. 한 때 천하를 호령했던 태후였으나, 늙는 것은 잊히거나 버림받는 것이 분명했다. 태후는 죽는 순간까지 복권(復權:상실한 권세를 다시 찾음)의 일가닥 희망을 놓지 않았으나 쓸데없는 일이었다.

불상이 넘어지는 불의의 사고로 사도태후는 기도의 와중에 세상을 떠났다는 말이 세간에 나돌았다. 대수롭지 않은 소문이었다. 사서(史書)에서는 이렇게 기록되었다.

'眞平王 三十六年, 春 二月, 永興寺 塑佛 自壞, 眞興王妃 比丘尼 死'

'진평왕 삼십육년, 봄 이월, 영흥사의 진흙 불상이 저절로 무너지더니 진흥왕비였던 비구니가 죽었다.'

사도태후는 한낱 비구니의 죽음으로 삶을 끝냈다.

왕이 사도태후의 천도재(遷度祭:죽은 사람의 넋이 극락왕생하도록 기원하는 의식)를 위해 영흥사로 행행(行幸:임금이 대궐 밖으로 거동하는 것)했다. 불단 위엔 태후의 주검이 있었다. 육중한 불상에 깔린 탓인지 시신은 온전하지 않았다. 두개골이 함몰되어, 그렇잖아도 화상으로 일그러진 얼굴이 더욱 흉측했다. 그러나, 왕은 태후의 시신에서 눈길을 떼지 않았다. 승려와 대신들은 차마 눈을 들어 태후를 바라보지 못하였지만, 정면을 주시한 왕은 시선을 고정한 체 움직이지 않았다.

태후할미에 대한 회환(悔恨)이 있어서 일까?

그것은 진정 왕을 모르고 하는 소리이다. 그 순간, 왕의 시선은 단상 위에 반가부좌를 취한 불상에 고정되어 있었다. 왕은 비형랑이 그랬던 것처럼 미동조차 없었다. 그 자리에 마치 나무처럼 서 있을 뿐이었다. 승려들과 대신들은 왕이 할마마마를 잃은 비통함에 저러는 것이라 생각하였으나... 왕의 감정과 몸의 반응에 대해서는 오직 비형랑만이 감지할 수 있었다. 비형랑은 왕의 뒷모습 만으로도 왕의 본심을 꿰뚫어 볼 수 있었다. 항상 그런 것은 아니었으나, 지극히 미묘한 상황과 조건 하에서 왕의 심리와 몸의 변화가 마치 비형랑 자신의 것처럼 찌릿한 신호와 함께 전달되곤 하였다. 그 순간은 마치 꿈을 꾸는 것과 같았다.

비형랑은 자신의 샅을 내려다보았다.


백고좌회(百高座會)의 아침이 밝았다. 황룡사 주변으로 국인들이 발 디딜 틈도 없이 새벽부터 진을 치고 있었다. 고승(高僧)들이 탄 백여 대의 수레가 속속 황룡사 남대문(南大門)에 도착했다. 고승들이 모습을 드러낼 때마다 그들의 화려한 장삼(長衫)과 가사(袈娑)에 국인들은 감탄을 자아냈다. 그 소리는 마치 밀물과 썰물처럼 연이어졌다. 대열의 맨 끝에 원광법사와 수(隋)나라의 사신 왕세의의 수레가 있었다.

금당 내부에는 백여 명의 고승들이 자리할 백여 개의 사자좌(獅子座:부처나 고승들의 존귀한 좌석)가 설치되었다. 원광법사는 앞으로 나아가 장륙삼세불을 향해 절을 올렸고, 양 옆으로 자리한 백고좌(百高坐:교단을 대표하는 백명의 고승)들을 행해서도 합장을 했다. 왕세의는 금당 앞에서 왕이 나타나길 고대했다. 그의 표정은 마치 꿀단지를 꺼내 든 조바심 난 아이와 같았다.

한참이 지나서야 어가(御駕)가 나타났다. 왕의 몸집에 맞춰 제작된 거대한 수레였다. 황금빛 찬란한 어가를 시위삼도(侍衛三徒:왕실 직속 경호부대)의 군사들이 에워쌌다. 중무장한 기마병들과 붉은 갑옷을 입은 군사들이 창과 도끼를 들고 호위했다. 선두에는 아막성 전투를 지휘했던 사령관 건품(乾品)이 부월을 뽐내며 근엄한 표정으로 말을 타고 있었고, 무은(武殷)이 권마성을 내며 왕의 행차를 알렸다.


어가가 남대문 앞에 다다르자 범패(梵唄:불교 음악)가 시작되었다. 천축국(天竺國:인도)의 음악과 노랫소리가 널리 울려 퍼졌다. 서역(西域)의 무희들이 춤을 추며 왕의 등장을 예고했다. 문이 열리며, 황금빛 찬란한 금관을 쓴 왕이 모습을 드러냈다. 주단을 깐 땅에 왕이 발을 디디자 어가가 요동쳤다.

왕은 황룡사 승려들이 합장하며 도열한 사이를 여유롭게 가로질렀다. 찬란한 빛이 왕을 따라다녔다. 왕이 중문에 들어서자, 향로의 짙은 연기가 시야를 가렸다. 왕이 침향의 연기를 뚫고 모습을 드러내자 천축의 신묘한 음악과 함께 무희들이 몸을 흔들며 선자리에서 빙글빙글 돌았다. 붉은 비단 자락들이 무희들의 손끝에서 하늘로 뿌려졌다. 무희들이 비단을 휘감는 모습은 마치 하늘에서 천녀들이 강림하는 것과 같았다. 왕이 금당으로 나있는 어도(御道)에 이르렀다. 황금 왕관에 달려 있는 곡옥이 왕의 걸음에 맞춰 휘황한 빛을 발하며 흔들렸다. 금당 아래엔 대신들과 승려들이 무릎을 꿇고 왕을 기다리고 있었다. 대신들 무리에 왕세의도 있었다.

그때였다.

왕이 어도의 섬돌을 밟는 순간, 단을 높여 길게 놓여있던 박석(薄石)이 둘로 쪼개지며 무너졌다. 왕은 박석과 함께 구덩이로 굴러 떨어졌다. 눈 깜짝할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다. 기겁한 대신과 승려들이 무너진 어도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순식간에 난장판이 되었다. 금당 안에 있던 백고좌들과 원광법사는 밖이 소란스럽자 원안(圓安)을 불러 자초지종을 물었다.

그러나, 구덩이 주변으로 몰려온 이들은 또 한 번 놀랄 수밖에 없었으니... 구덩이에 빠진 왕은 그 속에서 하얗게 빛나는 불상과 한 몸으로 뒤엉켜 있었다. 그 광경은 마치 포석사 신전에 모셔진 법흥왕과 옥진궁주의 교합상과 다를 바 없었다. 왕이 거대한 몸으로 끌어안은 불상은 눈부시고 찬란한 빛을 발하고 있는 것이어서, 왕의 몸에 가려졌지만 그 광채는 황룡사 금당 앞 넓은 마당을 가득 채우고도 남았다. 특히, 그 형상은 반가좌를 틀고 있기는 하나 여인의 알몸과 다름없는 형상이어서 차마 오롯이 쳐다볼 수 없었다. 시위삼도의 군사들이 단번에 구렁으로 뛰어내려가 왕을 부축했다. 군사들이 뛰어내리는 바람에 주변의 흙이 무너지며 쏟아지자 왕이 버럭 화를 냈다.

"이놈들아! 짐(朕)이 아니라 부처를 보호해야 하느니라! 부처께서 온전치 못하면 네 놈들도 무사하지 못할 것이다. 알겠느냐?"

원광법사와 백고좌들이 황망한 표정으로 나타났을 땐, 왕은 이미 의관(衣冠)을 바로잡은 이후였고 구덩이에서 올려진 불상이 온통 광채(光彩)를 발하며 대중(大衆:모든 승려)에게 모습을 드러낸 이후였다. 원광법사는 포석사에서 그랬던 것처럼 불상 앞에 무릎을 꿇더니 몸을 땅에 붙여 머리를 조아렸다. 어찌할 바를 몰라하던 백고좌들도 법사를 따라 했다. 우두망찰 하던 대신들과 군사들도 모두 엎드렸다. 금당 앞 너른 마당엔 온통 하얗게 빛나는 반가부좌상과 왕의 모습만 우뚝하였다. 항상 그렇듯, 왕에게서 일어나는 일은 창졸간(倉卒間)에 일어나고 사라지기 마련이어서 머춤할 사이도 없이 급류처럼 휘몰아친다. 백고좌회도 마찬가지였다. 마치 미리 준비한 계획이 있던 것처럼.

엎드린 원광법사가 고개를 들어 반가좌상을 올려다봤다. 순간, 법사는 격앙되어 떨리는 목소리를 숨기지 못하고 이와 같이 말했다.

"이 불상은 미래의 부처, 미륵(彌勒)이십니다. 미륵께서 직접 왕을 찾아오셨습니다. 비어있던 장륙삼세불(丈六三世佛)의 마지막 주인이 이제야 모습을 드러내셨습니다. 이것은 계시입니다. 미륵께서 직접 왕을 찾아온 것은 왕께서 석가족(釋家族:부처의 가족)이라는 사실을 만방에 드러내고자 함입니다."


요란한 자바라(범패에 쓰이는 놋쇠로 만든 타악기) 소리가 금당 내부를 울렸다. 구덩이에서 발견된 반가좌상은 비어있던 미래불의 자리에 안치되었다. 그것은 죽은 사도태후의 고두에서 발견된 것과 매우 흡사하였지만, 유난히 흰 광채를 발하고 있었기 때문에 동일한 불상이라 여겨지지 않았다. 더군다나, 태후의 천도재에 참석했던 대신들은 이미 늙고 기력이 쇠한 자들이 대부분이어서 유심히 지켜본 자가 없었다.

자바라 소리가 더욱 날카롭게 울려 퍼졌다. 서역의 무희들이 붉고 기다란 비단을 몸에 감거나 뿌리며 마치 천녀(天女)가 강림하듯 춤을 추며 왕에게 다가갔다. 왕은 장륙삼세불 앞의 어좌에 앉아 있었다. 그것은 파격이었다. 불교를 승인했던 법흥왕 이래로 부처와 같은 높이의 단상(壇上)에 어좌가 자리하지는 못했다. 왕이라 한들 부처보다는 한 등급 아래의 위계(位階)를 갖는 것이 마땅하였고, 부처에게 등을 보이는 것 또한 불경(不敬)하게 여겼다. 부처는 전륜성왕(轉輪聖王:불법으로 온 세상을 통솔하는 왕중 왕)이기에, 신라의 왕이라 한들 일개 신하로서의 예를 따라야 했다. 그 위계가 무너진 것이었으니, 백고좌들 사이의 소란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으나 요란한 자바라 소리에 모두 묻혔다.

음악 소리가 사그라들자 왕이 어좌에서 일어났다. 대중(大衆)들과 대신들이 의아한 표정으로 왕을 주목했다. 맞은편에서 무희들을 따라 수나라의 사신 왕세의가 옥대(玉帶)를 받들고 나타났다. 구칠과 대세가 황룡사에서 훔쳐 달아났던 바로 그 옥대였다. 왕세의가 옥대를 왕의 허리에 채웠다. 선대(先代) 왕들이 물려준 보물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고, 황금과 벽옥 빛이 난무하며 눈부시게 빛났다. 온전하게 모습을 드러낸 천사옥대는 말 그대로 하늘에서 내려준 신물(神物:신령스럽고 기묘한 물건), 즉 천사옥대(天賜玉帶)로서 대신들과 승려들의 뇌리에 다시 한번 각인되었다. 옥대를 찬 왕이 대신들과 승려들을 굽어보자 온통 영롱한 빛으로 감싸인 왕의 모습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원광법사가 무릎걸음으로 왕에게 다가갔다. 마치 살아있는 부처를 모시듯, 법사의 행동은 극도의 공경을 표하고 있었다. 법사는 엎드려 왕의 발 앞에 머리를 숙였다. 왕은 기다렸다는 듯 시자(侍者)들로부터 건네받은 정병의 물로 법사의 머리를 적셨다. 부처가 중생들에게 베푸는 세례(洗禮)의식이었다. 세례를 받은 원광이 다시 무릎으로 기어 연단 앞에 섰다. 원광법사의 사자좌는 왕과 장륙삼세불의 앞이었다. 원광이 입을 열었다.

"오늘 미륵께서 드러내시고자 한 현현(玄玄:현묘하고 심오함)한 뜻을 대중(大衆:모든 승려)에게 전달하려 하오. 우리가 목도한 바와 같이 미륵께서 왕을 찾아온 것은 예전부터 정해진 이치였고, 그것은 왕께서 억겁(億劫)의 시간 동안 부처의 아버지로서 인연이 있었기 때문이오. 오늘 그 사실이 비로소 드러나고 밝혀진 것이니, 이 모든 조화가 미륵께서 우리에게 오신 뜻임을 명심하여야 할 것이오!"

원광은 다시 백고좌를 둘러보았다. 눈을 감고 입을 굳게 다문 자들이 대부분이었다. 원광이 다시 입을 뗐다.

"지금 이 시각부터 왕께서는 원래의 이름을 되찾을 것입니다. 왕께서는 억겁의 인연으로 정반왕(淨飯王:고타마싯다르타의 친아버지 이름)의 현신이라는 사실이 드러나셨으니, 모든 대중들은 이 소식을 세상에 널리 알리고 미래의 부처, 미륵께서 우리 신라 땅에 하생(下生)하셨음을 마땅히 경배하고 찬양하시오. 백고좌들은 일어나 미륵의 아버지이신 정반왕께 예를 표하시오!"

법사의 말에 이어진 범패 소리가 엄숙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왕을 호위했던 시위삼도들의 함성소리가 황룡사 경내를 쩌렁쩌렁 울렸다. 법사가 다시 왕 앞으로 나아가 절을 하자, 백고좌들도 모두 사자좌에서 일어나 경배를 올렸다.

왕에 대한, 아니 정반왕(淨飯王)에 대한 경배가 끝나자 원광법사는 사슴 꼬리털을 단 주미를 들고 바닥을 가볍게 두드렸다. 선녀 차림의 시녀들이 꽃을 뿌리며 금당 내부를 온통 꽃천지로 만들었다. 동시에 낭랑한 인왕경(仁王經:왕을 보호하고 편안케 하는 불교 경전) 독송 소리가 금당을 가득 채웠다. 백고좌들과 승려들의 독송은 밤늦도록 계속되었고, 백고좌회는 정반왕이 현신(現身:다른 사람에게 모습을 드러냄)한 것을 기리며 마무리되었다. 백고좌들 중 진언(眞言:인도어)을 이해하는 화상들은 왕을 '슈도다나(Suddhodana)'라고도 불렀다. 그것은 정반왕의 본 이름이었다. 왕비의 이름도 '마야(Maya)'가 되었다. 왕이 '슈도다나'이니 왕비 또한 부처의 친어머니 '마야'가 되는 것은 당연했다.

이로써 땅 속에서 찾아온 미래의 부처, 미륵으로 인해 억겁의 윤회로 미처 드러나지 못했던 부처의 아버지 어머니의 존재가 명백하게 드러난 것이었다.

그것은 왕과 원광법사, 그리고 왕세의가 사도태후와 황룡사 상인(上人)들을 모두 제거하고 벌인 백고좌회의 예정된 귀결이었다.


계속...

글 그림 : 노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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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길상

이우학교 미술교사,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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