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가 태어나고 살아온 동네의 이력을 아는 이가 얼마나 될까. 보통 사람들은 지명을 가지고 간단히 '어떤 동네이었겠지'라고 추론해 보며 지나치지 않을까 싶다.
수많은 사람들이 매일 동대문과 남대문을 지나쳐간다. 그 가운데 한양의 여덟 문 가운데 왜 동대문만 세 글자(흥인문)가 아닌 네 글자(흥인지문)로 되어 있는지 , 왜 동대문에만 반달 모양의 옹성을 쳤는지, 그리고 왜 남대문의 현판은 세로로 세워져 있는지 궁금증을 가져본 독자는 얼마나 될까.
이런 소소하면서도 해답 찾기가 쉽지 않은 서울시의 모습들에 대해 호기심 많은 한 교수가 학자적 관찰을 통해 "남 찍어 누르는 훈장기질"을 발동했다. "당신은 일절만 하면 되는데 또 오버하네"라는 핀잔을 들으면서도 "아니 제 고장도 제대로 모르고 산다는 게 말이 돼냐?"면서 한국인 4명 가운데 1명이 모여 산다는 서울시의 구석구석 배어있는 사연을 들려주는 책을 쓴 것이다.
***"서울이 완전히 새롭게 보이는 체험을 하게 되었다"**
<사진1 책표지>
이번에 출간된 <최준식 교수의 新서울기행>(열매 출판사 간) 1권과 2권이 바로 그 책이다.
최준식 이대(한국학과)교수는 이 책에서 "훈장기질"을 발동해 서울 곳곳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그는 이전에도 한국인의 천민성과 집단이기주의를 신랄하게 비판한 <한국인에게 문화는 있는가>로 지식인 사회에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바 있으며 우리 문화를 여러 방법으로 분석, 재조명함으로써 관심을 모으고 있다.
저자는 이 책에서 가벼운 이야기를 묵직하게, 묵직한 이야기를 부담 없이 들려주고 있다. "서울이 완전히 새롭게 보이는 체험"을 옆집아저씨가 들려주는 이야기처럼, 때로는 서울 곳곳에 얽혀있는 역사적 문맥을 하나하나 세세히 짚어가며 "서울의 역사와 문화 유적 등을 총체적으로 샅샅이" 살피고 있는 쏠쏠한 답사기인 것이다.
"서울인들의 영원한 휴식처, 남산 답사기"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1권은 우선 남산의 개괄적인 모습을 알아본 이후 ▲남산의 동쪽 기슭에서 ▲본격적인 남산 오르기 ▲남산위에 올라 ▲건너편 남산 기슭에서 등의 4개 코스로 남산 이곳저곳에 숨어있는 역사적 사연들을 답사 글로 풀어내고 있다.
쉽게 지나쳐갔던 것들의 의미를 재미나게 풀어내고 있는 저자는 학문의 경계를 넘나들며 다양한 근거를 보여주면서 '야외 수업을 듣는 학생'인 독자에게 흥미로운 사연들을 펼쳐 보이고 있다. 이 사연들은 책 속에 포함되어 있는 많은 사진 자료들을 통해 보다 쉽게 다가온다. 사진자료들은 저자의 부지런한 발품을 보여주는 동시에 독자의 이해를 돕고 있는 것이다.
"을미사변 때 명성황후를 지키다가 역부족으로 순국한 홍계훈 대장을 비롯한 군인들과 궁내부 대신 이경직 등을 주신(主神)으로 모셔 그들의 장렬한 충정을 기리고 있는" '장충단공원' 이름의 유래를 설명하면서는 TV 드라마 명성황후의 주제가인 조수미의 '나 가거든'의 뮤직비디오에서 명성황후를 보호하다 장렬히 전사하는 한국 무사(정준호 분)가 바로 그 홍계훈 대장이라는 친절한(?) 설명을 곁들이고 있기도 하다.
***'성북동의 기적' 성락원(城樂園)과 조선후기 정원 모습 간직하고 있는 칠궁(七宮)**
2권에서는 "잊혀진 민속신앙 찾기와 조선 후기 정원 답사기"라는 부제에서 알 수 있듯이 전반적으로 서울 시내에 남아 있는 고건축과 옛 정원 가운데 일반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것들을 다루고 있다.
2권은 크게 세 코스로 나누어지는데 1코스는 '잊혀진 민속 신앙을 찾아서' 코스로 고건축에 대한 설명을 중심으로 관우 신앙과 장충동의 몇몇 명물들을 돌아보고 있다.
<사진2 동묘>
'조선 후기의 정원과 고가를 찾아서'의 2코스와 '시내에 숨어있는 또 하나의 조선식 정원을 찾아서'의 3코스는 성북동의 성락원(城樂園)과 궁정동의 칠궁(七宮)을 소개하고 있는데 저자는 성락원을 '성북동의 기적'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보존되었다는 것 자체를 무척이나 놀라워하고 있다.
"비록 그동안 많이 훼손되었지만 이 두 명소가 이렇게 만천하에 찬란하게 공개되는 것은 이 책이 처음이 아닌가 싶다. 더욱이 그 아름다운 자태가 천연색 사진으로 발표되는 것도 이번이 처음 아닐까 싶다"며 답사의 의미를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사진3 성락원>
<사진4 칠궁>
답사 글들이 유행한다는 건 그만큼 생활문화가 풍성해진 반증이라고 본다면 과장일까. 이제 우리에게도 서울의 아기자기하면서도 잔잔한 의미를 반추하면서 주변의 역사적 모습의 되새김질 하며 의미부여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갖추게 된 것이다.
이번 주말에 서울의 모습을 호기심어린 눈으로 바라본다면 그 또한 의미 있는 게 아닐까. 책에 소개되어 있는 곳들을 지나쳐가면서 '아하 서울에 이런 곳이 있었구나'라고 느낀다면 더욱 좋을 것이구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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