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우리 정부는 여전히 '기본'이 안됐다"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우리 정부는 여전히 '기본'이 안됐다"

[기고] 외국은 핵폐기장 부지선정 이렇게 했다

현재 부안군 주민들이 가장 분노하는 것은 핵폐기물처리장과 관련된 모든 의사결정에서 소외된 사실이다. 김종규 부안군수가 14일 핵폐기물처리장 유치 신청을 할 때부터 산업자원부가 24일 최종 선정을 할 때까지 주민들의 의견수렴 과정은 전혀 부재했다.

프레시안은 첨예한 갈등으로 치닫고 있는 이번 사태와 관련해 외국에서는 핵폐기물처리장과 관련해 어떤 과정을 거쳐 의사결정을 내리는지 소개하고자 한다. 프레시안의 'Citisci의 과학기술@사회'의 필자이기도 한 김명진씨가 미국의 경우를 중심으로 우리나라와 비교분석을 해왔다.

이 글의 전문은 창작과비평사의 창비웹진(www.changbi.com/webzine)에 25일 실린다. 전문은 창비웹진에 들어가면 볼 수 있다. 창작과비평사와 필자의 동의를 얻어 글의 일부를 프레시안 독자에게 소개한다. <편집자주>

***과거로부터 배우지 못한 산자부와 한수원**

현재 진행중인 핵폐기물처리장(핵폐기장)을 둘러싼 상황들을 보면서 받는 느낌은, 이번 핵폐기장 부지선정 과정 역시 2조원으로 늘어난 지원ㆍ투자액수와 양성자가속기 사업 연계라는 '당근'이 보태어지고 이를 미끼로 한 '자율' 신청이라는 외피가 더해졌을 뿐, 그 본질은 1990년의 안면도나 1995년의 굴업도 때와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번 부지선정 과정은 산자부와 한수원이 이전의 경험들로부터 아무것도 배우지 못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을 뿐 아니라, 외국의 정책기구들이 핵폐기물 처리에서 실패를 겪은 후 최근 발간한 보고서들에서 내놓은 부지선정 과정의 원칙들에도 전혀 부합하지 않는다. 한마디로 말해 여전히 '기본'이 안되어 있다는 얘기다.

***미국의 경우는 어떨까?**

일례로 2001년 4월에 미국 국가연구위원회(NRC) 산하의 방사성폐기물관리위원회(BRWM)가 발간한 정책보고서는 우리나라의 정책결정자들이 귀담아 들어야 할 여러 제언들을 담고 있다.

이 보고서는 핵폐기장 부지선정 문제에 있어 크게 두 가지 축에 기반해 접근할 것을 제안하고 있는데, 하나는 일반대중과 모든 것을 완전히 터놓고 논의하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외부의 과학자들에 의한 동료심사를 활용하라는 것이다.

전자에는 일반대중, 특히 부지선정 예상지역의 주민들에게 핵폐기장에 관해 충분하고 균형잡힌 정보를 제공하고, 해당 기관의 의사결정 구조를 독립적이고 투명하게 하며, 정책결정 과정에 일반시민의 자문과 직접참여를 보장하는 것이 포함된다. 특히 핵폐기장에 대한 일반대중의 거부감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가능한 선택지들을 반드시 복수로 제공한 상태에서 논의를 진행해야 하며, 이미 결정된 내용이라도 나중에 다시 되돌릴 수 있도록 정책과정을 단계적으로 설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점도 빼놓지 않고 있다.

그리고 후자에는 핵관련 기구의 자체인력이 만들어낸 미발표 연구보고서에만 의존하지 말고 동료심사를 거쳐 학술지에 이를 발표하려 노력하며, 연구에 참여하지 않았던 외부의 독립 과학자들에 의해 검증받는 과정을 거치라는 내용이 들어 있다.

이와 관련해 2002년 5월에 영국 왕립학회가 내놓은 짧은 보고서의 제언도 주목할 만한데, 이 보고서 역시 독립적이고 보다 투명한 기구가 핵폐기물 관리를 담당해야 함을 지적하면서, 특히 핵폐기물 문제에 대한 대책이 마련될 때까지 신규 핵발전소 건설 결정을 유보해야 한다고 덧붙이고 있다.

***유치 홍보활동 거의 낙제점**

이렇게 늘어놓고 보니, 우리나라의 부지선정 과정이 과연 한 가지라도 여기에 부합하는 내용이 있는지 의문스럽다.

'충분하고 균형잡힌 정보'의 측면만 예로 들더라도 한수원과 한국원자력문화재단의 유치 홍보활동은 거의 낙제점에 가깝다. 이들이 만든 홍보자료는 현재 부지선정 과정에 있는 핵폐기장이 마치 중·저준위 폐기물만을 저장하기 위한 것인 양 오도할 우려가 매우 높으며, 외국에서 '성공적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선전되는 핵폐기장들이 중·저준위와 고준위 폐기물 중 어느 것을 보관하고 있는지조차 제대로 밝히고 있지 않다.

우리나라는 핵연료 재처리를 고려하고 있지 않으므로 사용후 핵연료(spent nuclear fuel, SNF)는 응당 고준위 폐기물에 포함되어야 하는데도, 우리나라에는 고준위 폐기물이 없다는 식의 말장난도 서슴지 않는다. 2016년부터 해당 핵폐기장에 SNF의 '중간'저장을 예정하고 있고 이를 위해서는 잦은 육로·해로 수송이 불가피함을 감안한다면, SNF를 (발전소 부지가 아닌) 별도의 장소에 모아 관리하는 국가에는 어디어디가 있고 그곳에서는 SNF의 수송을 어떤 방식으로 하며 그 과정에서 어떤 문제가 생길 수 있는지를 소상하게 알려주어 지역주민들의 판단에 참고하도록 해야 마땅할 텐데, 이런 얘기는 일언반구도 찾아볼 수 없다.

(예컨대 독일에서는 1985년 이후 SNF를 프랑스에서 재처리하지 않고 직접 처분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으면서 네 개의 건식 중간저장 시설을 별도로 운영해 왔는데 운송차량의 표면 오염 문제가 대두되면서 1998년부터 3년 이상 SNF의 수송이 중단되었던 적이 있다).

또한 핵폐기물을 장기적으로 보관할 때 어떤 변화가 생길지에 관한 연구에서 외국의 정책보고서들이 하나같이 과학기술의 불확실성과 현존 지식의 한계, 추가 연구의 필요성을 언급하고 있는 데 반해, 우리나라의 홍보자료들에는 '전혀 위험하지 않고 100% 안전'하다는 식의 호언장담만을 찾을 수 있을 뿐이다. 단순한 '정보 제공'의 측면이 이럴진대, 의사결정 구조의 독립성․투명성 확보나 일반시민의 정책참여가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지는 길게 말할 것도 없을 터이다.

***연구보고서도 허점투성이**

NRC 보고서에서 지적한 두 번째 사항, 즉 동료심사의 강화와 외부 독립 전문가의 활용 역시 우리나라에서는 요원한 얘기다. 이번 부지선정 과정을 보면, 산자부와 한수원은 애초에 선정된 4개 지역이 "전국 임해지역 244개 읍면단위의 입지 가능 지역들"을 대상으로 "철저한 자료조사와 분석, 현장답사와 각계 전문가로 구성된 자문위원회의 자문 등 5단계 심사과정을 거쳐 이루어"진 용역연구의 결과라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이후 공개된 연구보고서는 환경단체로부터 '과거의 자료들을 재탕한 허점투성이 보고서'라는 비판을 받았으며, 자문에 응했다는 '각계 전문가'의 명단조차 싣지 않아 신뢰성을 크게 상실했다. 그나마도 그 4개 지역에 포함되지 않았던 전북 부안이 갑작스럽게 최종 후보지로 떠올라 선정될 형편이니, 결국 그 모든 과정이 졸속이었음을 대놓고 고백하는 것이나 다름없게 되었다.

***'기본'이 지켜지는 부지선정은 불가능?**

우리나라에서는 정책결정에서의 '기본'이 지켜지는 핵폐기장 부지선정을 기대하는 것이 아예 불가능한 것일까? 설사 산자부와 한수원이 지금 예정된 핵폐기장 부지를 계속 밀어붙여 위도에 중·저준위 폐기물 저장과 SNF의 '중간'저장을 맡을 '원전수거물센터'를 만들 수 있다 하더라도(필자는 이것이 가능하지 않을 거라고 보지만), 이것은 결코 끝이 아니다.

서구 여러 나라들의 경우처럼, 우리나라 역시 종국에는 SNF의 영구처분을 위한 부지를 다시한번 선정하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이다. 이는 우리나라가 SNF 자체를 다른 나라로 수출하지 않는 한 영영 변함이 없을 엄연한 현실이다. 그렇다면 지금과 같은 비민주적이고 폐쇄적이며 투명하지 않은 의사결정과정에 의해 핵폐기장이 이미 한번 선정되었다는 점은 산자부와 한수원에 앞으로 더욱 큰 부담으로 작용하게 될 것임이 분명하며, 현재와 같은 핵발전 확대 기조를 계속 유지한다면 더더욱 그러할 것이다.

그런 파국을 피하는 방법은, 앞으로 얼마간의 시간이 들어도 좋다는 마음가짐을 갖고 앞서의 제언들을 따라 핵폐기장 부지선정 방법을 획기적으로 변화시키면서, 핵발전 그 자체의 지속 여부에 대해서도 논의가능성을 열어놓은 채 대중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장기적인 노력을 기울이는 것일 수밖에 없다.

앞서의 NRC 보고서는 "현재 핵폐기물 처리 문제에서 가장 큰 도전은 (기술적인 것이 아니라) 사회적인 것"이라며, "과거에는 대중의 지지를 얻어내는 문제를 너무나 과소평가했기 때문에 대중의 참여를 이끌어내고 신뢰를 얻을 수 있는 수많은 기회가 상실되었다"고 뼈아픈 자기반성을 내놓고 있다.

이와 관련해, 1997년 핵폐기장 부지선정 과정에서 대중의 불신으로 인해 지하 연구소의 부지신청조차 거부되는 엄청난 실패를 경험한 후 작년에 새로 공공기구에 이 업무를 맡기고 원점에서부터 다시 논의를 시작하고 있는 영국의 사례는 커다란 시사점을 준다.

왜 지금에라도 이러한 인식으로부터 배우지 못하는가. 핵발전은 미래를 위해 불가피한 선택이고 2008-2016년이면 현재의 저장시설이 포화되니 핵폐기장 건설이 시급하다는 식의 해묵은 '협박'은 원전 찬성론자들에게도 하등의 득이 되지 못한다. 이러한 위협과 '당근'을 결합하면 당장 눈앞의 문제는 해결한 듯 보일지 모르겠지만, 불과 얼마 안가 이는 더 큰 반발과 두려움을 불러오게 될 뿐일 것이기 때문이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