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내의 친재계 일간지들이 청와대 이정우 정책실장이 검토중인 ‘네덜란드식 노사관계’에 맹공을 퍼붓고 있다. 그러나 사실을 왜곡하면서까지 ‘이념적 공세’를 퍼붓기에 급급한 기사들이 목격돼 눈쌀을 찌푸리게 만들고 있다.
10일자 한국경제신문이 그런 대표적 예이다.
***한국경제신문의 삼성연 보고서 왜곡보도**
10일 한국경제신문은 “네덜란드식 모델을 비판하는 견해를 담았다”면서 삼성경제연구소의 보고서와 월스트리트 저널 기사를 위아래로 나란히 배치했다.
문제는 원문을 자기 멋대로 왜곡해 '비판을 위한 비판기사'를 만들어 냈다는 데 있다. 다음은 한국경제신문이 삼성경제연구소 보고서를 소개한 기사 전문이다.
정부가 도입을 검토하고 있는 네덜란드식 노사 모델에 대해 국내 대표적인 민간 연구기관인 삼성경제연구소가 비판적인 견해를 밝혔다.
삼성경제연구소는 9일 ‘유럽식 경제 모델의 성과와 한계’라는 보고서를 통해 ‘유럽식 경제 모델은 미국의 경제 모델에 비해 경제적 성과 측면에서 상대적으로 떨어진다’며 ‘유럽국가중에서도 미국식에 가까운 영국과 아일랜드의 경제적 성과가 사회적 합의를 중시하는 독일이나 네덜란드보다 더 낫다’고 지적했다.
삼성은 영미식 경제모델은 자원의 효율적 분배, 금융 조달의 용이성, 기업 지배구조의 투명성, 노동시장의 유연성 등의 면에서 우위에 있다고 설명했다.
반면 네덜란드를 포함한 유럽대륙식 경제모델은 분배와 형평성 측면에서는 영미식보다 우월하지만 노동시장 경직성 등으로 인해 경제적 효율은 낮다고 주장했다.
특히 한국은 경제관련 제도가 정비돼 있지 않고 경제의식도 네덜란드나 독일 등 유럽 선진국에 비해 낙후돼 있어 유럽식 경제모델이 통하지 않는 부분이 많다고 지적했다.
삼성은 이어 대부분의 국가들이 선진국 진입 문턱에서 노사 관계 악화, 과도한 복지 요구 등으로 혼란을 경험했다며 현재의 난국을 조기에 탈출하지 못하면 중진국 수준에서 주저앉을 가능성이 높다고 경고했다.
특히 정부가 중심을 잡고 노사 관계를 안정시키는 게 급선무라고 강조했다.
오승구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정부는 노사문제를 풀어나가는 과정에서 공정한 심판자로서의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며 "노동자 권익보호를 우선하되 불법 파업이나 공동체의 이익을 훼손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대처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일보의 '정반대 보도'**
하지만 같은 날 한국일보에는 똑같은 보고서를 소개하는 기사를 만들었으나 기사 논지는 정반대였다. 다음은 한국일보 기사이다.
노동시장의 유연성 제고, 주주중심 시장경제, 외자유치.’ 삼성경제연구소는 9일 ‘경제모델의 성과와 한계’라는 보고서에서 1970~80년대에 극심한 경제위기를 겪었던 영국 네덜란드 아일랜드 등 유럽의 국가들이 이 같은 개혁 드라이브로 경제성장에 성공했다고 강조했다.
삼성경제연구소는 독일 프랑스 등 유럽대륙식 경제모델은 영미식(영국, 아일랜드), 유럽강소국(네덜란드, 스웨덴, 핀란드 등)에 비해 경제적 성과측면에서 상대적으로 좋지 않았다고 분석했다. 특히 영미식은 자원의 효율적 분배, 편리한 자금조달, 기업지배구조의 투명성, 노동시장의 유연성 등에서 우위에 있다고 지적했다. 반면 유럽대륙식의 경우 분배의 형평성은 영미식보다 우월하지만, 노동시장 경직성 등으로 인해 경제적 효율이 낮아 위기를 맞고 있다고 강조했다.
유럽강소국들은 이들 2가지 모델을 절충시킨 독특한 발전모델을 보유, 위기 극복에 성공했다고 진단했다. 그러나 전후 유럽경제의 모범생으로 각광받았던 독일은 경직된 노동시장, 과도한 사회복지 등으로 ‘유럽의 병자’로 전락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고 이 보고서는 지적했다.
보고서는 영국은 70년대까지 노동당의 친노조정책으로 빈번한 파업 등 전형적인 ‘영국병’으로 신음했지만 80년대 집권한 보수당 대처수상의 노동개혁 등으로 유럽 제1의 투자유치국으로 거듭났다고 밝혔다.
보고서는 또 네덜란드도 한 때 기업도산으로 인한 노사갈등 심화 등 ‘네덜란드병’을 앓았지만 82년 ‘바세나협약’에서 임금인상 억제(최대 2.5%이내 인상), 파업자제 등 대타협을 이뤄내 성장과 실업문제 해결 등 두마리 토끼 잡기에 성공했다고 지적했다. 오승구 수석연구원은 ‘효율성과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중시하는 영미식 경제모델과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와 노사 등 이해관계자의 합의를 중시하는 유럽 강소국 모델의 장점을 흡수, 국민소득 2만 달러를 조기에 실현하기위한 새로운 경제시스템을 정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삼성연구소, "어이없다"**
이같은 기사의 차이는 한국경제신문이 네덜란드를 '유럽식 경제모델'이 아니라 '유럽강소국 모델'로 분류한 보고서의 내용을 무시하고, 독일과 함께 유럽식 모델의 전형으로 네덜란드를 비판한 것처럼 보고서 내용을 왜곡한 데 따른 것이다.
네덜란드 노사 모델은 네덜란드 노사정이 독일로 대표되는 유럽모델의 문제점을 극복하고 영미식 모델의 장단점을 보완해 만들어내 '제3의 강소국(强小國)' 모델로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모델이다.
이에 대해 보고서 작성자인 오승구 연구원은 10일 프레시안과의 통화에서 “보고서의 취지는 유럽식과 영미식 모두 문제가 있고 두 가지 모델을 절충한 네덜란드 같은 강소국 모델이 효율성과 형평성의 균형을 취했다는 점에서 바람직하지만 장기적으로 볼 때 강소국 모델에도 한계가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네덜란드를 유럽식 모델로 소개하며 기사를 작성했다는 사실은 어이없다”면서 “우리나라 신문이 의도적으로 기사를 왜곡한다는 것은 어제 오늘 일도 아니어서 별로 놀랍지도 않다”고 덧붙였다.
***월스트리트저널 보도도 왜곡**
한국경제신문은 월스트리트저널 기사를 요약 보도하면서 또 다시 사실을 왜곡하는 기사를 만들었다.
특히 문제가 되는 내용은 “네덜란드 기업들은 노조와의 합의에 시간을 빼앗겨 구조조정의 타이밍을 놓치는 경우가 많았다. 그 결과 네덜란드는 지난해 외국인 직접투자(FDI)가 43%나 격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많이 줄었다”는 대목이다.
네덜란드의 FDI가 격감했다는 것을 실증하기 위해 원자료에 실려있는 OECD 도표조차 왜곡했다. 원자료에는 네덜란드보다 더 FDI가 격감한 영국과 미국을 도표에서 빼버린 것이다.
이에 비해서는 같은 기사를 다루면서도 “네덜란드의 FDI가 OECD국가중 가장 많이 격감했다”는 거짓말을 첨부하지 않고 도표도 왜곡하지 않은 중앙일보 기사가 외형적인 객관성은 유지한 셈이다. 월가의 이익을 대변하는 월스트리트 저널의 기사 자체를 보도한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원 도표에는 네덜란드가 43% 감소한 반면, 영국은 전년도에 비해 무려 60%나 격감했고 미국은 그보다 더 많아 77%나 격감한 것으로 돼있다.
"FDI가 격감한 것이 네덜란드식 모델의 문제점을 드러낸 증거라면 영미식은 더욱 문제가 크다"는 논리가 성립하기 때문에 한국경제신문은 이 사실을 은폐하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네덜란드에 대한 FDI가 가장 많이 줄었다”는 왜곡보도를 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미국과 영국도 OECD 회원국이다.
***한국경제신문의 '정파성'**
네덜란드 노사모델을 한국에 곧바로 적용하기에는 많은 문제점이 있다는 지적은 설득력이 있다. 이 모델을 맨처음 제시한 이정우 정책실장조차 "곧바로 도입하자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할 정도다.
네덜란드와 달리 협상문화가 부재한 한국적 현실 등을 고려할 때 네덜란드 모델을 정부가 곧바로 이식시키려 하려다가는 실패할 확률이 높다는 게 일반적 지적이다.
하지만 비판은 어디까지나 '정확한 팩트(사실)'에 입각해 행해져야 한다. 팩트까지 왜곡하면서 행하는 비판이란 특정집단의 이해를 대변하기 위한 '정파적 행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한국경제신문 보도는 그런 면에서 분명 '정파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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