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서 사형제 폐지 논란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유럽에서는 전시상황에서도 사형제를 폐지하는 의정서가 발효되는 단계에 와있어 크게 대조되고 있다.
AP,AFP등 해외 통신들에 따르면 유럽회의(Council of Europe)는 7월 1일부터 회원국 45개국에서 사형제도를 폐지하는 의정서가 발효되었다. 이날 발효된 ‘유럽인권회의 제 13호 의정서’는 지난 1982년 채택된 ‘제 6호 의정서’보다도 진일보한 것으로 전범에 대한 사형은 예외적으로 인정하는 데서 나아가 전쟁 중이나 전쟁위협이 임박한 상황에서 벌어진 범죄를 포함해 모든 범죄 행위에 대해 사형집행을 금지하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발터 슈비머 유럽회의 사무총장은 “유럽회의가 세계 최초로 평상시 사형집행을 전면 금지한데 이어 전시 사형집행까지 금지하게 됐다”고 이번 의정서의 의미를 평가했다.
그는 또 “사형제 폐지는 문명사회에서 생명의 존엄성이 절대 가치라는 신념의 징표”이며 “사형제의 전세계적 폐지를 향해 나아가는 거역할 수 없는 추세를 반영하는 또 하나의 신호”라고 강조했다.
유럽회의 의원총회 페터 쉬더 의장도 “이로써 45개 회원국들은 사실상 사형청정구역이 됐다”면서 인권에 대한 폭력 가운데 최악인 사형제도는 옵저버 자격으로 회의에 참여하는 미국과 일본에서도 폐지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유럽연합이나 유럽회의는 사형제도 철폐가 가입조건의 하나로 돼 있다.
국제 엠네스티에 의하면 사형제는 지난 4월 현재 전 세계 83개국이 시행하고 있으며 1백12개국은 폐지했다.
이번 사형제 전면폐지 의정서는 지난해 5월 회의에서 러시아, 터키,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젠 이외의 41개 회원국이 서명해 채택되었으며 이 가운데 발효에 필요한 조건인 10개국보다 많은 15개 회원국이 의정서를 비준함에 따라 효력이 발생하게 됐다.
한편 유럽회의는 유럽의 점진적 통합과 민주주의 및 인권신장을 위해서 설립된 범유럽 정부간 협력기구다. 유럽회의는 EU의 후원 하에 많은 협약들을 채택하였는데 대표적인 것으로는 1989년의 ‘고문과 비인간적 처벌 등의 금지에 관한 협정’ 등이 있다. 현재 가입국은 45개국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정부의 공식 입장은 사형제 유지다. 이때문에 지난 4월 천주교 인권위원회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는 노무현 대통령에게 제59차 유엔 인권위원회에 상정된 사형제도 점진적 폐지 결의안에 찬성할 것을 요청하는 공개서한을 보내기도 했다.
이들은 "사형제도의 점진적 폐지를 위한 국제 사회의 노력에도 우리 정부는 인권 후진국들과 함께 유엔 인권위의 결의안에 반대표를 던져 국제 인권사회의 따가운 시선을 받고 있다"며 "노무현 대통령은 유엔 인권위 결의안 찬성과 함께 인권위 권고사항인 '임기 내 사형집행 유보'를 선언해야 한다"고 요구했다.유엔 인권위는 지난 97년부터 매년 유엔 회원국들이 사형제도를 점진적으로 폐지할 것을 내용으로 하는 '사형제도의 문제' 결의안을 채택해 오고 있으며 우리 나라는 지난해 제58차 인권위 표결에서 중국, 일본 등 19개 국가와 함께 이에 대해 반대표를 던졌다.
올해 4월25일에도 유엔 인권위원회는 제59차 회의에서 사형제도의 폐지를 촉구하는 결의안을 찬성 24, 반대 20, 기권 8표로 결의 안을 통과시켰으나 우리나라를 비롯해 미국과 중국 일본 등은 사형폐지에 다시 반대했다.
그러나 이번에 유럽회의 의정서 발효로 우리나라도 사형제 폐지에 대한 압력이 더욱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국제적인 사형폐지운동에 동참을 촉구하기 위해 지난 2월 한국을 방문한 피터 호지킨슨 세계사형폐지연맹 영국 대표는 “국민의 완전한 지지를 받아 사형제도를 폐지한 나라는 없다"면서 사형제 폐지는 여론을 극복해서 시행할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사형제 폐지가 강력범죄 증가로 이어진다’는 논리에도 “지금까지 사형제의 강력범죄 억제효과를 증명한 연구 결과가 없다”고 반박했다.
유럽연합(EU) 이사회의 사형전문자문위원으로 활동하는 등 사형제 전문가인 그는 “인간은 실수하게 마련이기 때문에 판사도 오판 가능성이 있으며 지금까지 사형제가 정치적인 도구로 악용돼온 사례가 많다”면서 “범죄자에 대한 처벌과 범죄 피해자에 대한 보상은 별개로 생각해야 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사형제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풀기 위한 정부 차원의 대국민 홍보와 함께 피해자 보상에 필요한 서비스 인프라 구축을 위해 재원 확보가 필수적”이라면서 즉각적인 폐지보다 재원 마련과 인식전환을 위한 준비기간을 거쳐 폐지로 가야 부작용이 없다는 현실적 단계적 폐지론을 폈다.
한국은 정부 수립 이후 모두 1천6백34명의 사형수에 대해 사형집행이 이뤄졌다. 이중 1974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기소돼 대법원에서 사형 확정판결이 내려진지 20시간만에 8명에 대해 사형이 집행된 ‘인혁당’ 사건은 대표적인 ‘사법살인’이라는 오명을 쓰고 있다.
김영삼 정부 말기인 1997년 12월 23명의 사형집행이 이뤄진 뒤 지금까지 1건의 집행도 없었지만, 현재 미집행 사형수 52명가 있다. 지난 96년 헌법재판소는 사형제의 위헌을 제기한 헌법소원에 대해 합헌결정을 내린 바 있다.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도 ‘원칙적으로 사형 폐지에 찬성한다’는 입장이며 강금실 법무장관도 "사형집행을 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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