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루이스 스탠퍼드대 명예교수와 로버트 칼린 전 국무부 정보조사국장은 10일 미국 핵과학자회보(BAS)에 게재한 기고문에서 오바마 행정부의 '전부 아니면 전무'(all-or-nothing) 식 대북정책이 미국의 안보적 이익마저 해치고 있다고 주장했다.
루이스 교수와 칼린 전 국장은 '대북정책을 작동시켜라'(Activating a North Korea Policy)라는 제목의 이 글에서 북한에 대한 제재 강화, 6자회담 복귀, 비핵화 진전만을 외치는 오바마 행정부의 태도는 '외골수적'(single-minded)이라고 지적했다.
이들은 "제재는 외교적 진전을 방해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제재의 강화가 필요한 만큼 제재를 완화하는 것도 필요하다"며 미국의 고지식한 자세가 북한에 더 많은 전술적 이니셔티브를 제공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이들은 북한이 입장을 바꿀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거나 북한과의 협상은 지켜지지 않았다는 미국인들의 생각은 '도그마'에 불과할 뿐이라며 "다양한 아이디어를 가지고 북한과 머리를 맞대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들은 특히 오바마 행정부가 지금처럼 경직된 태도를 보이는 것은 '약한 정권'이라는 비난을 우려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하며, 비핵화 목표만 주장한다고 해서 이 목표가 달성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핵 과학자인 존 루이스 명예교수는 북한을 수차례 방문해 영변 핵시설을 직접 시찰하는 등 북한 핵 문제를 가장 잘 아는 전문가로 평가된다.
칼린 전 국장은 국무부 정보조사국에서 북한 분석관으로 오랫동안 일해 오며 북한 내부의 흐름을 정확히 짚어내는 것으로 정평이 난 인물이다. 지난 2006년 강석주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의 실제 연설문으로 잘못 알려져 언론의 오보 사태를 일으킨 '가상 연설문'은 그의 작품이었다.
다음은 루이스 교수와 칼린 전 국장의 공동 기고문 전문이다. (☞원문 바로가기)
▲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과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 ⓒ로이터=뉴시스 |
끓어 넘치지 않는 냄비는 뒷전으로 밀어두기. 미국 외교 정책에서 흔히 있는 일이다. 현재 북한의 문제가 정확히 그러하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북한과의 관계에 있어 어떤 진전을 이룰 기회는 너무나 드물게 주어진다.
지난 몇 개월 동안 북한은 지금이 협상 국면이라는 신호를 공식적·비공식적으로 보내 왔다. 그러나 미국 정부에서는 이것이 시간 끌기 전략인지 단순한 속임수인지에 대한 논쟁만 넘쳐났을 뿐, 북한의 입장을 진지하고 지속적으로 검토하지는 않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전혀 모를 것이다.
미국 정부가 북한에 대해 '전부 아니면 전무(all-or-nothing)' 식의 접근을 고수하는 한 동북아시아에서 미국의 사활적 안보 이익을 향상시킬 기회는 사라질 수 있다.
미국 정부의 현재 입장에는 두 가지 도그마가 깔려 있다. 첫 번째 도그마는 북한 관련 상황이 미국에 유리하게 되거나 북한이 제재 때문에 핵에 대한 집착을 재고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다.
오바마 행정부는 출범 후 1년 동안 북한이 미국의 비확산 목표는 물론 지역 안정을 저해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같은 '기다림의 전략'으로 일관함으로서 스스로를 마비시켰다. 현실을 적극적으로 규정하고 만들어나가기 보다 고정된 입장만을 고수해 왔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제재 강화와 6자회담 안에서의 비핵화 진전만 요구해 왔다.
정책 전반적으로 볼 때는 매우 유용한 부분이지만, 그 자체로 효과를 볼 수 없으며, 조심스럽게 다뤄져야 한다.
제재는 외교적 진전을 방해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제재의 강화가 필요한 만큼 제재를 완화하는 것도 필요하다. 게다가 '북한은 6자회담으로 무조건 복귀해야 한다'는 미국의 외골수적 주장은 실제로 북한에 더 많은 전술적 이니셔티브를 제공해 왔다.
우리가 북한을 궁지에 몰아넣었다고 생각할 때, 북한은 예상을 뛰어 넘는 새로운 입장을 택할 수밖에 없다. 북한이 1월 중순 (외무성 성명에서) 2005년 9.19 공동성명의 테두리 안에서 대화하는 것을 거부하던 그간의 입장을 180도 뒤집어 9.19 공동성명의 모든 것을 동시에 논의하자고 제안한 것이 바로 그러한 경우다.
미국이 빠진 두 번째 도그마는 북한과 맺은 약속은 늘 지켜지지 않았고, 미국은 언제나 사기를 당하는 것으로 끝났기 때문에 북한과의 협상은 말도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북한과의 협상이 언제나 무용했다는 생각은 1994년 '제네바 북미 기본합의'의 성취를 제대로 읽지 않았기 때문에 나오는 것이다.
1994년부터 2002년까지 유지된 이 합의는 분명 여전히 유용하다. 이 합의가 없었다면 북한은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핵물질과 핵무기를 가졌을 것이다. 북한에 두 기의 원자로가 완공되지 않은 채 있는 것은 그 합의가 지속적으로 유지되고 있음을 입증한다.
오바마 행정부가 북한에 대해 적극적인 정책을 추구할 필요가 없다거나 그래선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북한에 최대한 강경한 태도를 유지하지 않을 경우 '약하다'는 비난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그 때문에 미국은 9.19 공동성명은 평화협정을 논의하기 북한의 비핵화에 진전이 있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며, 두 가지를 동시에 진행하자는 북한의 최근 제안을 내쳐버렸다.
그러나 실제 9.19 성명의 취지가 그게 아닌데다 다른 회담 주체들, 특히 중국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미국이 그 입장을 고수하는 것은 어려우리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북한이 비핵화를 이루고 국제 비확산 체제에 복귀해야 한다는 미국의 근본적인 정책 목표는 전적으로 옳다. 그러나 그 목표를 주장만 한다고 해서 목표에 더 가깝게 다가서는 것은 아니다.
목표를 이루기 위해 우리는 상황을 안정되게 하고, 북한에 의한 전략적 위협이 더 악화되지 않도록 하며, 한반도와 동북아의 긴장을 완화시키기 위한 다양한 아이디어를 가지고 북한과 머리를 맞대기 시작해야 한다.
거기에는 몇 가지 중간 단계의 조치들이 포함될 수 있다. 핵실험과 장거리 탄도미사일 발사의 중지, 영변 핵시설의 완전한 동결, 추가적인 불능화, 국제 핵사찰관의 복귀 등이 그것이다.
이런 잠정적인 조치들은 핵 문제를 '해결'해주지는 못하지만 성취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이런 조치들은 미국과 동맹국들의 이익을 상당히 보호해 줄 수 있을 것이다. 현재 아무런 진전을 내지 못하고 있는 '전부 아니면 전무' 식의 정책보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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