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공장에서 일하다 퇴사한 이후 뇌종양 진단을 받은 노동자가 산업재해 인정을 받았다. 산재 신청 10년 만의 일이다.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반올림)는 5일 보도자료를 내고 "2009년 3월 첫 산재를 신청한 한혜경 씨가 지난 5월30일, 10년 만에 산재인정을 판정받았다"고 밝혔다.
반올림에 따르면 한 씨는 삼성전자 LCD사업부(현 삼성디스플레이주식회사) 모듈과에서 생산직 오퍼레이터로 근무한 5년 9개월(1995년 11월~2001년 7월)동안, PCB기판에 전자 부품을 납땜하는 SMT 공정에서 납과 플럭스, 유기용제 등에 노출됐다.
재직 중에도 생리가 중단되는 등 몸이 나빠지는 것을 느낀 한 씨는 퇴사를 했지만, 4년 뒤 뇌종양 판정을 받았다. 이후 뇌종양을 수술로 제거하긴 했지만 그 후유증으로 시각, 보행, 언어장애 1급 판정을 받았다.
이후 한 씨는 2008년 반올림 측에 자신의 피해 사실을 제보했고, 2009년 3월 산재신청을 제기했다.
하지만 이후 공단 심사, 노동부 재심사, 법원에서의 1~3심, 이후 다시 공단에 재신청에 따른 심의과정까지 총 7번의 판정에서 한 씨의 산재는 인정받지 못했다.
그러다 결국, 올해 5월29일 서울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 재심의를 통해 8번째 만에 산재 인정을 받게 됐다.
서울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 심의회의는 판정서를 통해 △ 신청인(한혜경)은 약 6년간 삼성 디스플레이(주)에서 LCD 모듈과 생산직 오퍼레이터로 근무하면서 작업공정 중에 납, 주석, 플럭스, 이소프로필알콜 등 유해요인에 노출되었고, △ 2002년도 이전의 사업장에 대한 조사가 충분치 않았던 점, △ 신청인이 업무를 시작한 시기가 만 17세로 비교적 어린 나이에 유해요인에 노출되었다는 점, △ 신청인이 업무를 수행한 1990년대의 사업장 안전관리 기준 및 안전에 대한 인식이 현재보다 낙후되어 보호 장구 미착용 및 안전조치가 미흡했을 것으로 판단되는 점, △ 최근의 뇌종양 판례 및 판정위원회에서 승인된 유사 질병 사례를 고려할 때 업무관련성 을 배제할 수 없어, 신청 상병과 업무와의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된다는 것 등을 들어 산재로 인정했다.
한혜경 씨는 "산재인정 소식을 듣고 너무 기뻤다"면서도 "당연히 처음부터 산재를 인정받아야 된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긴 세월이 걸렸다는 것이 너무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한 씨는 "지금이라도 산재인정을 받아 조금은 속이 시원한 느낌이 든다"며 "앞으로는 직장에서, 현장에서 일하다 다치거나 병에 들어가 하면 신속하게 처리해서 나 같은 사람이 안 나왔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반올림 측은 이번 산재 인정을 두고 "근로복지공단이 앞서 내린 불인정 결정의 부당함을 스스로 인정하고, 입장을 바꿨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며 "이제는 우리 사회가 한 씨의 이야기를, 전자산업 직업병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들을 준비가 돼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이들은 "지난 10년 동안 많은 변화를 만들어냈지만, 아직 노동자의 알 권리와 건강하게 일할 권리를 위해 가야 할 길들이 남아있다"며 "한혜경 씨가 제기한 문제들이 해결되는 그날까지 계속 나아갈 것"이라고 밝혔다.
반올림에 따르면 2008년 첫 집단 산재신청을 시작으로 이날까지 총 142명이 근로복지공단에 전자산업 직업병 관련 산재를 신청했다. 이들 중 54명은 산재가 인정됐고, 37명이 불인정 판정을 받았다. 현재 47명이 산재 심사와 관련 소송이 진행 중이고 나머지 4명은 산재신청을 취하하거나 신청이 각하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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