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흥은행 노조원들에게 보내는 글**
***1. 조흥은행 파업과 나**
2003년 6월 18일 오전 11시.
개인적인 일로 예금잔고 증명을 어디에 제출할 일이 있어 내
개인 구좌가 있는 조흥은행엘 갔었다. 그런데 파업으로 샷터
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현금인출기가 있는 곳으로 가보았더니 10여대 되는 현금인출
기 앞에는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다. 현금이 다 떨어져
돈이 나오지 않는 기계도 있었다.
고객들은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당황해 하는 사람들도 있
었다. 조흥은행과 거래를 끊겠다느니, 옆에 있지도 않은 은행
원을 대상으로 독백의 욕설을 하는 고객들도 더러 있었다.
나와 같은 용도로 잔고증명이 필요한 어떤 40대 부인은 버스
3-4정거장 거리에 있는 조흥은행 XX지점에 가면 된다는 이야
기를 들었다면서 나가는 것이었다.
날씨는 30도가 넘어 무척 더웠다. 짜증이 났다.
여직원을 보낼까 했으나 개인적인 일이라 그럴 수도 없었다.
어떻게 할까 망설이다 아내를 나오라고 해서 일을 맡겼다.
그날 11시 50분 조흥은행 XX지점.
아내는 언제 잔고증명을 뗄지 모른 채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었다. 과장된 표현을 쓰면 고객들은 인산인해를
이루어 기다리고 있었다고 한다.
결국 점심시간을 넘기고 잔고증명을 떼기는 했지만, 아내는
어디 점심약속을 펑크 냈다고 한다.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사무실에서 가장 가까이 있는 은행이라 자주 찾아쓰는 돈은
조흥은행에 구좌를 두었더니 안 되겠다.
신용카드를 낸 W은행으로 구좌를 몰아야 겠다.
내 돈 넣어놓고 왜 이 고생을 하지.....?"
***2. 조흥은행 노조원들에게**
어제 6월 22일 일요일을 기해서 파업이 타결되었다고 하니
천만다행입니다. 당신들 노조원들에게 천만다행이 아니라
나한테 천만다행이라는 겁니다.
자, 우리 고객도 말 좀 해봅시다.
우리는 바지저고리입니까?
우리 고객들은 이리 차면 이리 굴러가고, 저리 차면 저리
굴러가는 축구공입니까?
우리 고객들이 모두 예금을 찾아 다른 은행으로 가더라도
괜찮습니까? 아니면 조흥은행 고객들은 축구 바보라서 노
조가 무슨 짓을 하더라도 다른 은행으로 못 갈 것으로 생
각하고 있습니까?
파업을 시작하면서, 그리고 파업 중에 노조원 여러분들이
우리 조흥은행 고객들에게 진심으로 이해를 구하는 말이나
태도를 보인 일이 있습니까?
내가 생각하기로 은행은 고객이 있어야 생존하는 서비스
산업일 텐데 고객을 이렇게 무시해도 되는 것입니까?
고객과는 일언반구 상의도 없이, 양해도 구하지 않고
우리들 예금을 담보로 잡아 과격한 파업시위를 해도 되는
겁니까?
파업을 할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여러분들을 먹여 살리는(?) 고객 입장을 조금이라도
생각했다면 파업을 하면 혹시 우리 고객분들이 불편하지는
않을까, 우리 고객분들에게 문제는 생기지 않을까 해서라도
며칠 전에 파업을 예고했으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아무리 파업을 하더라도 그렇지 은행 문을 아예 닫는다는
것은 은행이기를 포기한 것 아닙니까?
한 두 명은 남아서 고객을 맞아야 하는 것 아닙니까?
전산실을 폐쇄한다니 말이나 되는 이야깁니까?
많은 돈을 맡긴 고객들은 얼마나 불안했겠습니까?
전산시스템을 잘 모르는 고객분들은 어찌 잘 못 되면
자기 예금 금액이 없어진다든지 하는 뭐 문제라도 생기는
것은 아닐까 하고 한 두번은 걱정하지는 않았겠습니까?
박박 민 머리에 붉은 띠를 동여매고 과격한 파업 시위를
꼭 그렇게 해야만 했습니까?
조흥은행 노조가 다음과 같은 "고객 여러분에게 바치는
글"을 성명서 형식으로 발표하고 일주일 후에 파업을
하던지 실력행사라도 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고 나는
그야말로 순진한 생각을 해봅니다.
"이번에 저희들이 파업을 하더라도 고객 여러분들의 예금
이나 자산에는 어떤 문제도 발생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며 약속드립니다.
그리고 이번에 파업 중 우리는 지난 번과 같이 머리를 박박
밀어 고객 여러분들에게 혐오감을 유발시키는 일은 절대로
하지 않을 것이며,
또한 머리에 붉은 띠를 동여매고 투쟁이니 쟁취니 하는 과격
한 말을 쓴 조끼를 입고 출정식이니 하면서 구호를 외치며
주먹으로 하늘을 찌르는 시위도 과연 은행원에 맞는 것인지
심사숙고 해보겠습니다.
그리고 106년의 창업 역사에 가장 큰 변혁을 가져올 이번
파업을 계기로 우리 조흥은행 노조원들은 모두가 솔선수범
하여 우리 나라 최고의 서비스, 아니 전세계 최고의 서비스
정신으로 똘똘 뭉쳐 가장 열심히 일하고, 가장 열심히 고객에
봉사하고, 가장 좋은 은행이 되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 하겠
습니다.
조흥은행 고객님 여러분들의 깊은 이해를 바라 마지 않습니다.
파업을 하더라도 저희들은 항상 고객 여러분들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정말 이건 너무 순진한 생각일까?
조흥은행 노조원 여러분!
노조는 106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민족은행으로서 결사사수를 주장
했는데, 이번의 파업시위가 우리 민족 전체로부터 대단한 박수를
받은 민족적인 쾌거나 우리 민족에 걸맞는 행동이라도 되는 것
같습니까?
100년이 넘는 오랜 역사를 가진 은행이라 파업을 하더라도 역시
고객을 생각하는 정신과 전통이 대단하구나 하는 감탄은 고사하고,
저러니 조흥은행이 망했지 하는 지탄을 이번에 더 많이 받았다는
것을 아십니까?
머리를 박박 깎고 붉은 머리 띠를 두르고 만장을 흔들며 주먹으로
하늘을 찌르는 조흥은행원의 과격한 파업시위 영상이 머리에 남아
있는 한 고객들은 다시는 조흥은행에 가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아십니까?
이제는 시대가 바뀌어 고객이 은행을 선택하고 평가하는 시대가
되었다는 것을 아십니까?
노조 파업의 불씨가 2년 후 다시 지펴질 수도 있다는 협상내용을
알고 있는 영악한(?) 고객들은 차제에 아예 거래은행을 옮길지도
모른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까?
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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