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미래당 내에서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된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사실상 무력화하는 법안 제안이 나왔다. 바른정당계 의원들이 이 법안에 서명하기는 했지만, 오신환 원내대표는 공개 발언에서 "이미 지정된 것을 철회하는 것은 가능하지는 않다"며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바른미래당 정운천 의원은 3일 기자회견을 열고 "공직선거법은 이미 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됐으나, 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된 선거법은 헌법 정신에도 맞지 않고 여야 합의로 처리했던 관행에도 어긋난다"고 비판하며 "석패율제를 대안으로 국회를 정상화시켜 여야 합의에 의해 선거제도 개편이 꼭 이뤄지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정 의원은 구 바른정당 출신으로, 20대 총선 당시 옛 새누리당에서 배출한 호남 지역구 의원(전북 전주을)이다.
정 의원은 "현재 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된 공직선거법은 전국을 6개의 권역으로 나누고, 각 권역별 정당 득표율을 기준으로 지역구 의석과 연동하여 비례대표 의석을 배분하는 방식"이라며 "권역별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는 국회의원 정수를 억지로 맞추려다 보니 법률안에 수학 기호가 포함된 계산법이 6개나 들어가 있을 정도로 국회의원 선출 방식이 매우 복잡하다. 한 마디로 깜깜이·짜깁기 합의안"이라고 여야 4당 합의안을 비판했다.
4당 합의의 기본 개념이자, 손학규 대표가 열흘 간의 단식 농성을 하며 도입을 촉구한 끝에 도출한 연동형 비례제를 바른미래당 의원이 부정한 셈이다.
정 의원은 "지역주의가 심한 지역에서는 지역구나 비례대표 모두를 똑같은 정당에 투표하는 지역주의 투표의 행태가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고 거듭 연동형 비례제를 비판하며 "반면 지역구와 비례대표의 동시 입후보를 허용하는 석패율 제도는 지역구 선거의 득표율이 비례대표 당선에 결정적이기 때문에 정당정치의 기반이 약한 지역의 후보들에게 정당활동과 선거운동을 촉진시킬 수 있는 유인과 동기를 제공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정 의원은 회견 후 기자들과 만나, 법안에는 바른미래당 내 바른정당계 8명 전원과 국민의당계 김삼화·김중로·이동섭 의원, 무소속 이언주 의원 등 12명이 서명했다고 밝혔다. 바른정당계 8명에는 현직 원내대표인 오신환 의원과 대선후보를 지낸 유승민 의원, 당 혁신위원장 물망에 오르는 정병국 의원도 당연히 포함된다. 정 의원은 자신의 법안을 이미 패스트트랙에 태워진 기존 선거법 개정안과 병합해 심의하자고 주장했다.
그러나 오신환 바른미래당 원내대표는 정 의원의 법안에 서명하기는 했으나 정작 이날 의원총회 모두발언에서는 "패스트트랙 과정에서 많은 무리가 따랐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이미 지정된 것을 철회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고 말해 '패스트트랙 무력화'는 고려 대상이 아니라는 입장을 밝혔다.
오 원내대표는 지난 주말 더불어민주당·자유한국당과의 국회 정상화 협상 과정에서 양당이 보인 태도를 비판하면서, 패스트트랙 철회를 요청하는 한국당을 향해 "이 지점에서 현실적 판단을 내려야 한다"며 이같이 말하고 "남은 것은 각 당이 성실히 협상에 임해 합의 처리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날 바른미래당 의원총회에서는 김삼화·신용현·이태규 의원 등 안철수계 의원 6명이 제안한 '정병국 전권 혁신위' 방안이 현장 발의 안건으로 제안됐고 법안 관련 논의도 예정돼 있었으나, 시작부터 손학규 지도부 사퇴파와 옹호파가 정면으로 충돌하며 극렬한 설전을 벌였다.
손학규 대표 최측근을 자임한 이찬열 의원은 바른정당계 하태경 최고위원의 '나이 들면 정신 퇴락' 발언을 겨냥해 "인격 살인"이라고 공격하고, 오 원내대표가 바른정당계 편을 들고 있다며 "공정하게 직을 수행해 달라", "바른정당 원내대표가 아니다"라고 했다.
바른정당계 이혜훈 의원은 하 최고위원 발언에 문제가 있긴 하지만 그 후 3~4차례 진정성 어린 사과를 했는데 하 최고위원에 대해 윤리위가 징계 심의를 시작한 것은 과한 대응이라며 손 대표 측 인사인 송태호 윤리위원장의 해임을 주장했다.
지상욱 의원도 "손 대표 측 사조직에 의해 당 중요 부분이 점령돼 정치적 의도를 갖고 운영되고 있다"며 "바른미래당이 (손 대표 싱크탱크) 동아시아미래재단 '시다바리'가 아니다"라고 맞섰다. 지 의원은 손 대표에게 "공사 구분을 못한다"고 노골적으로 비난하며 "정적을 치고자 하는 차도살인의 방법으로 윤리위를 운영하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찬열·이혜훈·지상욱 의원은 패스트트랙 과정에서의 사보임 문제를 거론하며 과거 감정이 섞인 설전을 이어갔고, 이혜훈·지상욱 의원은 결국 오 원내대표에게 '김관영 원내대표가 사보임은 없다는 약속을 했는지 안 했는지 당시 의총 녹취록을 공개해 달라'고 요구까지 했다.
안철수계 의원들은 패스트트랙 사보임 설전에는 참여하지 않으며 혁신위 구성을 제안하고 양측의 자제를 촉구했다. 다만 신용현 의원은 하 최고위원 징계안에 대해서는 "처음에 (하 최고위원 발언을 듣고) 놀라기는 헀는데, 그 다음에 진정성 있게 사과한 것은 사실이라 생각한다. 손 대표께서 보다 전향적으로 받아줬으면 한다"고 바른정당계와 같은 입장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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