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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은 상상의 공동체"인가

[인문견문록] 베네딕트 앤더슨의 <상상된 공동체>

영국 마르크스주의 정치학자 톰 네언(Tom Nairn)은 "민족주의 이론은 마르크스주의의 거대한 역사적 실패를 표상한다"라고 토로했다.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를 부르짖던 유럽 각 국가의 좌파정당들은 하나같이 전쟁찬성으로 선회했다. 노동자계급에 기초한 보편주의는 개별 국가의 민족주의적 열정 앞에 좌절되었다. 1차 대전 이후 세계 좌파의 희망이었던 독일 급진세력은 민족주의를 내세운 나치즘에 의해 괴멸되었다. 하층계급 자신의 이익과 반하는 정치적 행위에 열광적 지지를 보내는 대중들을 보면서 서구의 진보지식인들은 당황한다.

20세기 말, 21세기 초 한국에서는 정반대의 현상이 벌어진다. 불과 수십여 년 전만해도 가슴을 뜨겁게 만들던 '민족'이 빠르게 지식담론에서 사라져 갔다. 민족이 담론시장에서 사라지는데 무엇보다도 결정적이었던 것은 민족 이해에 관한 근대주의론의 파급력 때문이었다. 근대주의론 가운데 가장 많이 언급되는 사람이 "민족은 상상의 공동체"라는 명제를 내세운 베네딕트 앤더슨이다. 앤더슨의 이 언명은 그의 '주장'이 아니라 '역사적 사실'로서 지식 대중의 뇌리에 스며들었다. 그런데 막상 앤더슨의 주장에 대해서 꼼꼼히 연찬해보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한국에서 민족주의에 대한 공격에 이용되었던 책 <상상된 공동체>(서지원 옮김, 길 펴냄)는 도대체 어떤 주장을 하고 있는지 살펴보자.

▲ <상상된 공동체>(베네딕트 앤더슨 지음, 서지원 옮김, 길 펴냄) ⓒ길
베네딕트 앤더슨은 중국 윈난성에서 태어나 영국 캠브리지 대학에서 고전학을 공부했으며 이후 미국 코넬대학으로 건너가 인도네시아역사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코넬대학 교수로 재직하며 주로 동남아시아학을 가르쳤다. 인도네시아를 자신의 주 전공으로 삼은 이유를 "인도네시아가 당시 세계 최대의 공산당조직을 가지고 있어서"라고 밝힐 정도로 투철한 마르크스주의자였다. 민족 대신 계급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마르크스주의다. 마르크스주의자인 앤더슨이 민족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인도차이나에서 베트남, 중국, 캄보디아 삼국의 분쟁 때문이었다. 1978년 12월 통일된 베트남 공산정권은 캄보디아를 침공, 점령했다. 다음 해 2월 중국이 다시 베트남을 공격했다. 사회주의국가들끼리 물고 물리는 전쟁이 시작되었다. 마르크스주의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사회주의 혁명정부들끼리의 전쟁을 마르크스주의는 설명해낼 수 없었다. 앤더슨이 민족 연구에 빠져든 계기였다.

앤더슨은 민족은 상상되었다고 주장한다. 앤더슨에 따르면 "민족은 상상의 정치적 공동체"다. 왜 실체가 아닌 상상인가? 앤더슨의 말이다. "가장 작은 민족의 일원조차도 같은 겨레를 이루는 이들 절대다수를 알거나 만나보지 못한다. 그들에 대한 얘기를 들어볼 일조차 거의 없으리라. 그럼에도 각자의 가슴속에는 그들의 교감에 대한 심상이 살아 숨 쉬고 있다." 로빈 던바(Robin Dunbar) 영국 옥스퍼드대 인류학과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인간의 뇌가 감당할 수 있는 집단 규모의 한계치를 150명이라고 한다. 정서적으로 관계할 수 있는 사람의 최대치가 150명인데 민족이라는 관념은 어떻게 발생할 수 있었던 것일까?

앤더슨에 따르면 민족이 발명된 18세기 이전에 압도적인 문화체계로서 종교공동체와 왕조국가가 있었다. 종교공동체가 흔들리면서 민족이 상상되었다. 앤더슨은 종교를 "질병과 슬픔, 노화, 죽음 등 인간의 고통이라는 압도적인 짐에 대한 인간의 상상력 넘치는 대답"이라 설명한다. 종교전쟁, 과학의 발달, 원거리 통상의 전개는 작은 지역의 토착성에 기반한 종교적 믿음을 밑동에서부터 흔들게 된다. 특히 18세기는 서유럽에서 민족주의의 여명기이기도 했지만 종교적 사유방식의 황혼기였다. 종교의 쇠락과 민족의 부상은 긴밀하게 얽혀있었다. 계몽운동은 세상에 밝음(enlightment)이라는 긍정적 영향을 가져왔지만 의도치 않게 부정적 영향도 초래했다. 믿음은 흔들렸지만 종교적 신앙이 가라앉혀주던 현실의 고통은 그대로였다. 아니 초기 상업자본주의의 확산에 의해 고통은 더욱 강력해져만 갔다.

앤더슨의 설명이다. "천국의 해체, 이만큼 숙명을 자의적으로 만드는 것도 없다. 이제 요구되는 것은 숙명을 연속성으로, 우연성을 의미로 변모시키는 세속의 방식이었다. 우리가 보게 될 것처럼, 민족이라는 관념보다 이 목적에 더 잘 들어맞았던 것은 별로 없었다. (중략) 우연을 운명으로 바꾸는 것이 민족주의의 마술이다." 앤더슨의 설명은 다소 이해하기 어렵다. 에리히 프롬의 설명을 첨부한다면 이해가 쉬워질지 모르겠다. 인문학자 박홍규가 쓴 프롬 연구서 <우리는 사랑하는가>(필맥 펴냄)의 한 구절이다. "프롬은 순종이 주요한 덕이며 불순종은 커다란 죄악으로 규정하는 권위주의적 윤리학이 사디즘이나 마조히즘처럼 인간이 근본적으로 처한 상황에서 비롯되는 고독감과 무력감에서 손쉽게 벗어나고자 만든 것이라고 본다." 종교와 마을공동체가 주었던 안정감과 유대감이 흔들리면서 사람들은 민족이라는 새로운 대체재를 찾기 시작한다. 계몽사상의 주지주의적 사유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던 인간의 복합적 측면이다.

불안은 인간의 원초적 상황이다. 인간은 불안을 극복하고 안정감을 느끼려 필사적인 노력을 기울인다. 그 노력은 대개 상상을 동반한다. 기독교사회학자 이철 숭실대 교수의 논문 '도덕의 형성 및 유지에 있어서 공동체의 역할에 관한 종교사회학적 연구'(2015)에는 이런 인간의 노력을 잘 설명하고 있다. 논문에서 예시하는 사례들이다. 프로이트 손주의 사례다. 집에 엄마가 부재할 때 이 아이는 실패를 실에 묶어 던졌다 잡아당기는 것을 반복한다. 엄마의 부재가 주는 불안을 실패라는 상징을 통해 놀이로 승화한 것이다. 아이는 엄마의 오고 감을 실패를 던지고 당기는 행위로 은유화해 안정감을 얻는다. 대상관계 이론가 도널드 위니컷(Donald Winnicutt)의 '중간대상(transitional object) 이론'에서도 비슷한 예를 찾아볼 수 있다. 아이는 안정감을 느끼기 위해 베게, 인형, 장난감 등에 애착을 가지게 된다. 앤더슨은 민족이 '실패', '중간대상'의 역할을 했다고 말하는 것이다.

종교공동체 그 자체는 어떤 방식으로 유지되었는가? 종교공동체를 지지해 준 것은 문어(文語)였다. 이 문어는 특정 지역을 넘어서 넓은 지역에서 공유되었다. 일상에서는 사용되지 않던 라틴어, 고전 아랍어 그리고 한자가 대표적이었다. 앤더슨의 설명이다. "저 모든 위대한 고전적 공동체들은 신성한 언어라는 매개를 통해 지상을 초월하는 권력의 질서에 연결되었기에 우주의 중심에 있다고 스스로를 인식했다." 일반인들이 자기가 사는 마을을 거의 벗어나지 않는 삶을 살았지만 소수의 지식인과 성직자들은 라틴어를 통해 거대한 공동체를 사유했다. 고전어는 종교와 마찬가지로 신성한 것이었다. 배우기 어려운 언어를 구사하는 성직자, 지식인 커뮤니티는 자신들만의 세계를 구축하고 있었다. "성스러운 언어로 엮인 그런 고전적 공동체들의 성격에는 근대 민족이라는 공동체와는 다른 점이 있었다. 중대한 차이점의 하나는 그들의 언어에 독특한 신성함이 있다는 오래된 공동체의 확신과 그리하여 생겨난 회원권(성원권, 필자 주)에 대한 관념이다." 쉽게 설명하자면 종교공동체는 근대 민족공동체와는 달리 고전언어를 사용하는 특권층에 기반했다는 의미다. 식자층은 신을 정점으로 하는 위계질서 상의 중요한 지점을 담당하고 있었다. 고전어를 매개로 이루어지는 이런 계서제는 중심 지향적이며 수직적 구조였다. 구조의 변화가 오기 위해서는 고전어의 역할에 변화가 와야만 했다.

민족, 민족주의가 발생하기 이전에 종교공동체와 더불어 왕조의 영지(왕조국가)가 있었다. 왕조의 정통성은 종교공동체의 지원을 받았다. 왕은 신성했고 백성은 왕의 신민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유럽 왕조국가들은 영토적으로도, 구성원의 측면에서도 느슨했다. 17세기 이후 왕조의 든든한 뒷배경이던 종교적 신앙이 위협받자 왕조의 정당성도 함께 의심받기 시작한다. 혁명이 일어나고 찰스 스튜어트의 목과 루이 16세의 목이 날아갔다. 자본주의와 계몽사상으로 신앙이 위태로워지자 종교공동체의 지지로 정당성을 지원받아 온 왕가는 더욱 위축된다. 믿을 무엇인가가 필요했다. 기존의 왕가도 점차 아래로부터 올라오던 인민적 민족주의를 차용해 제도권으로 편입하려 시도했다. 성장하던 민족주의가 더욱 왕성해지는 계기가 되었다.

종교공동체와 왕조국가가 쇠퇴하면서 민족은 자동적으로 부상하게 된 것일까? 앤더슨은 민족, 민족주의가 가능했던 것은 지방 일상어(vernacular)로 쓰인 신문, 소설을 보편화한 인쇄자본주의 덕분이었다고 말한다. 신문, 소설을 읽는 독자층이 급속히 확대되면서 고전어는 구석으로 밀려나게 되었다. 인적 이동이 거의 없었던 중세에서 마을 밖을 상상하며 공감하기란 쉽지 않았다. 종교개혁 이후 라틴어에 밀려나 있던 각 지방의 일상어가 본격적으로 인쇄되기 시작했다. 인쇄업자들이 쏟아내는 인쇄물 덕분에 라틴어가 아닌 일상어 사용자도 식자층으로 편입되었다. 각 지역에서 사용되던 방언은 독일어공동체, 프랑스어공동체를 형성해갔다. 이런 유럽의 언어공동체가 이미 민족주의를 형성하고 있던 남·북미의 민족주의를 모방해가면서 각각의 민족으로 형성되어 갔다.

앤더슨을 설명하는 대부분의 글에서 인쇄자본주의의 발전 때문에 민족이 생겨난 것으로 설명한다. 무언가 부족하다. 각 지역의 이런저런 방언들이 주요한 언어로 인쇄된 신문, 소설을 통해 동일한 언어공동체로 발전해갔고 이 언어공동체가 민족으로 전환되었다는 것을 이해하기란 어렵지 않다. 그런데 민족주의는 어떤가? 현대 사회학계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민족 자체이기보다는 민족주의다. 민족주의의 특징은 자신의 목숨까지도 스스럼없이 희생하는 헌신성에 있다. 같은 언어를 사용한다고 타인에 대한 헌신성이 생겨날까? 무언가 이상하다. 책을 꼼꼼히 들여다보면 앤더슨이 써넣어둔 다른 논리적 장치를 발견할 수 있다. 앤더슨은 인쇄자본주의가 민족으로 직행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는 사회적, 거시적 변화와 맞물려 인간 내부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인식 수준에서의 변화도 동시적으로 뒤따랐다고 말한다. 인식이 변화하면서 '민족'에 대한 '사고'가 가능해졌다. 시간을 인식하는 방식의 변화였다. 특히 '동시성(simultaneity)'의 변화였다. 앤더슨은 시간관념의 변화를 핵심요소라고 지적한다. 신문, 소설은 특유의 시간관념을 통해 세계에 대한 우리의 감각을 변화시켰다.

우선 중세 사람들은 세계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었을까? 현대인에게 성 베드로의 '주님의 날은 한밤중의 도둑같이 올지니'라는 언명은 별다른 감흥을 주지 못하지만(근본주의 기독교인들을 제외한다면), 중세인들에게는 과거의 일이자 장차 닥칠 임박한 미래의 일이었다. 중세 기독교인들에게 수천 년 전 과거와 자신이 살아가는 일상적 오늘과 임박한 미래는 동시간대를 형성하고 있었다. 즉 '동시적'이었다. 독일 문헌학자 에릭 아우어바흐(Erich Auerbach)는 이런 '동시성(simultaneity)'의 관념이 현대인인 우리에게 매우 낯선 것이라고 설명한다. 필자가 이해하는 바로는 동시성이란 "같은 시간대를 살아간다는 감각"을 의미한다. 중세에는 그 감각이 수천 년을 오가면서 의미체(예수, 구원, 재림 등)를 매개로 연결되었다. 과거와 미래를 동시에 느끼던 통시적 동시성이 이제는 먼 지역의 사람과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 즉 공시적 동시성으로 변환된 것이다. 즉 동시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과 "함께 한다"는 시간 관념을 가지게 된 것이다.

앤더슨에게 시간관념의 전환은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민족을 발명해낸 신문과 소설이 근대적 동시성을 철저히 체현해내고 있기 때문이다. 소설 속에는 전혀 연결되지 않는 인물일지라도 동일한 시간 동일한 사회를 살아가는 것을 은연중에 독자에게 각인시킨다. 의미체가 아니었던, 그래서 완전한 타자였던 익명의 존재들이 새로운 '동시성'을 통해 의미체가 되었다는 말이다. 여기까지가 앤더슨이 자신의 주장을 지지하기 위해 활용한 논리적 구조들이다. 앤더슨은 이런 과정을 통해 민족과 민족정서가 형성되었다고 말한다.

앤더슨은 최초의 민족주의가 생겨난 곳은 아메리카였다고 말한다. 대영제국의 식민통치를 받던 북미와 스페인제국의 탄압을 받던 남미에서 민족주의가 출현했다는 것이다. 이 지역에는 인쇄자본주의가 일정 정도 진행되고 있었고 크리올 식자층도 있었다. 백인이지만 현지에서 태어났기에 식민통치시스템의 상층부로의 진입은 철저하게 금지되어 있던 이들 크리올(creole)들이 식민통치에 저항하면서 발생시킨 것이 최초의 민족주의다. 아메리카에서도 핵심은 남미의 반식민 민족운동이다. 그런데 크리올공동체가 어째서 유럽보다 더 일찍 민족 관념을 발전시키게 된 것일까? 남미 크리올이 본격적인 민족해방에 나선 것은 식민지가 되고나서 무려 300년이나 지나서였다. 먼저 18세기 후반 스페인의 카를로스 3세의 남미식민지에 대한 폭정을 들 수 있을 것이다. 멕시코의 경우 18세기 초 300만 페소였던 세금이 18세기 말에는 1400만 페소로 증가했다. 또한 크리올은 서유럽 계몽사상의 자장 안에 있었다. 남미의 독립운동은 크나큰 희생을 초래했다. 베네수엘라 지주 가문의 3분의 2 이상이 재산 몰수를 경험하게 되었다. 어째서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계급이 이런 급진운동에 나서게 된 것인가?

앤더슨은 "해답의 단초는 남아메리카의 공화국들 각각은 16세기부터 18세기까지 행정 단위였다는 사실에 있다"고 말한다. 원래 스페인제국의 행정적 편의를 위해 설정되었던 지역적 행정 단위가 시간이 흐름에 따라 나름의 역사성을 획득하게 되면서 "단단한 실체"로 발전해갔다. 스페인 본국이 남미 행정단위 사이의 통상교역을 억제했기에 지역 내부에서만 상업 활동이 이루어졌다. 지역의 크리올 관료들은 자기 지역에서만 이동이 가능했다. 크리올 관료들은 여행을 통해 자신의 땅에 대한 감각을 발전시켜갔다. 본국 출신 관료들은 특정 지역을 넘어서 승진할 수 있었지만 크리올에게는 불가능했다. 지역적으로 분절된 경제, 당대의 핵심 지식인이라고 할 수 있는 크리올 관료의 이동 불가능성과 이에 따른 자기 고장에 대한 애착 형성, 이런 것들이 모여서 행정 단위별로 민족정서가 축적되어갔다. 독립운동을 통해 스페인의 식민지는 행정 단위에 따른 18개의 민족국가로 나뉘었다.

아메리카의 민족운동이 성공하자 유럽은 민족주의를 수입했다. 이후 유럽에서도 본격적인 민족, 민족주의의 시대가 전개된다. 물론 남미민족주의운동에서도 결정적으로 중요한 요소는 인쇄자본주의였다. 앤더슨의 말이다. "경제적 이익과 자유주의, 계몽운동 중 그 어떤 것도 구체제의 약탈로부터 지켜낼 상상된 공동체의 모습이나 종류를 그 자체로는 창조할 수 없었고, 창조하지도 않았다. (중략) 이 특정한 과업을 성취하는데 순례자 크리올 관리들과 지방의 크리올 인쇄업자들은 결정적인 역사적 역할을 해냈다." 즉, 고립된 행정단위였기에 토착적 민족정서가 성장할 수 있었고 이런 정서를 가진 크리올들이 인쇄자본주의를 접하면서 본격적인 민족주의가 생성되었다는 것이다.

앤더슨의 주장에 대해서 여러 학자들의 반박이 있었다. 민족은 상상이라는 주장에 대해서 사회학자 신용하는 논문 '민족'의 사회학적 설명과 '상상의 공동체론' 비판'(2006)에서 이렇게 반박한다. "앤더슨은 마을에서 대면하지 않는 범위 이상의 것은 '상상'이라고 해서 쿨리(C.H.Cooley)의 제1차집단(혈족 및 대면집단, 필자 주)이 아닌 것은 상상이라고, 크기로서 비판을 모면할 장치는 해두고 있다. 그렇다면 쿨리의 제2차 집단은 사회적 실재가 아니라 모두 상상이라는 말인가." 정작 앤더슨은 다른 말을 한다. 앤더슨은 민족은 상상의 공동체라고 말하면서도 '상상'이 허구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오히려 민족을 허구로 주장했다고 어니스트 겔너를 비판했다.

또한 앤더슨의 이론은 유교문화권에서 적실성이 떨어진다. 조선은 한두 사람의 문제 제기가 있고 나면, 몇 달 안에 전국 수천, 수만의 유생이 동일한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증폭시키며 담론정치를 전개했다. 청나라에 저항감을 갖고 소중화라는 문명적 우월의식으로 무장했다. 이것은 누가 보더라도 민족의식에 해당한다. 그러나 남미의 식자층에 해당하는 조선 유생들은 문학에 해당하는 사장(詞章)은 극도로 폄하했다. 소설을 통해 동시성을 경험함으로써 혈연, 지역을 넘어선다는 주장은 검증하기 어려운 앤더슨만의 소설일 따름이다. 일본인 한국연구자 오타 타카코(大田高子)는 논문 '한국 내셔널리즘에 대한 고찰-내셔널리즘 이론에서 본 한국 "민족주의"'(2003)에서 이렇게 적고 있다. "한자문화권에서 내셔널리즘은 전근대로부터 국가와 구성원들의 인적·영역적인 연속성이 긴밀하기 때문에 앤더슨이나 겔너와 같은 근대주의자에 의한 근대적인 요소를 계기로 하는 네이션의 형성 이론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

앤더슨의 논리가 초래할 부정적 영향력을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러나 역사학자 박용희는 논문 '민족주의 연구를 둘러싼 새로운 시각'(2014)에서 이렇게 말한다. "그(앤더슨)가 민족에 대한 본질론적 인식을 거부하고자 했다고 해서 허구적 실체로서의 민족을 폭로하는 것에 주된 목표를 둔 것이 아니었음은 명백하다." 박용희의 해명을 보면 왠지 모를 이질감이 느껴진다. 우리가 생각하던 앤더슨은 민족이란 18세기 후반에 겨우 발명된 실체가 불분명한 상상에 지나지 않는다고 세상의 민족주의자를 향해 포문을 여는 그런 부류의 사람이 아니었던가? 사실은 앤더슨이 그런 사람이 아니라 앤더슨의 이론을 왜곡해 민족진영을 비판한 일단의 사람들이 그런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해방적 민족주의를 파시즘으로 왜곡, 선동하면서 민족주의를 비판하는 사람들이 그런 부류들일 것이다. 예전에 어느 문학평론가는 김지하 시의 민족주의 성향을 콕 짚어 파시즘과 연결시키는 글을 발표한 적도 있다. 문학평론가 이명원은 민족주의를 악마화해 선동하는 이런 사람들을 향해 '탈식민적 민족담론이 포기될 수 없는 이유, 베네딕트 엔더슨, <상상의 공동체>'(<오늘의 문예비평> 겨울 통권 47호)라는 글에서 이렇게 말한다. "탈식민의 노력들, 많은 경우 민족정서에 호소하면서 대항적 동일성을 확보했던 일련의 실천방식 전체를 민족주의=파시즘의 등식으로 과격하게 정리하는 것은 원인과 결과를 혼동하고 있는 명백한 오류다."

앤더슨을 그의 의도와 다르게 민족진영을 공격하는데 이용한 사람들이 즐겨 사용한 논조가 윤리적 보편주의다. 그들은 민족주의를 국가 단위의 이기주의와 비슷한 것으로 몰아세웠다. 그러나 영국의 정치사상가 데이비드 밀러(David Miller)는 아직 번역되지 않은 책 <민족성에 대하여(On Nationality)>에서 다른 이야기를 한다. 밀러는 민족을 윤리공동체로 이해한다. 밀러는 자유, 평등, 차등 원칙 등 단일한 범주나 개념 하나가 정의의 원칙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을 배격한다. 그는 정의의 다차원적 측면을 이해해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가 속한 공동체마다의 차이를 그 나름대로 인정하자는 파격적인 주장이다. 그는 윤리적 보편주의 대신에 윤리적 개별주의(particularism 특수주의, 필자 주)를 채택하자고 말한다. 개인의 인식과 선택, 행위는 그가 처한 구체적 공동체로부터 영향을 받기 때문에 다양한 판단 기준을 마련해야 하기 때문이다. 다양한 기준은 결국 자신이 속한 공동체 즉 대부분의 경우 민족공동체의 윤리적 가치일 수밖에 없다.

윤리적 개별주의로부터 윤리적 행위를 도출하고 선양하자는 그의 주장은 계몽사상에 익숙한 한국의 자유주의자들에게는 뜨악할 만한 주장일 것이다. 밀러는 책에서 이런 논리를 전개한다. 가난한 사람이 있다고 하자. 가난한 사람을 도와야 한다는 것은 보편적 윤리원칙이다. 그를 도울 때 누가 가장 잘 도울까? 말할 필요도 없이 그의 가족이다. 가난한 사람의 가장 가까이에 있는 가족이 그의 가난함이 어떤 이유에서 왔는지, 어떤 도움이 더 필요한지를 잘 안다. 그리고 정서적 애착 측면에서도 도움을 주려는 열의가 가장 넘친다. 타인을 도와야 한다는 보편주의적 윤리적 의무를 가장 가까운 사람이 질 때 도움은 제대로 작동하게 된다. 밀러는 이것을 "보편적 의무로부터 개별적 의무로 이르는 '유익한 약속'(useful convention)"이라 말한다. 개개인이 이런 개별적 의무에 충실할 때 "최종적으로는 모든 사람이 보편적 의무를 보다 더 잘 이행하게 되는 것"이다. 모두가 자신의 주위를 잘 돌보면 결국 사회 전체적으로는 보편윤리가 행해지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밀러는 인간의 윤리적 헌신성은 논리로부터 자동적으로 도출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윤리적 헌신은 개인이 애착을 형성할 수 있는 단위에서 가능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에게 윤리적 단위의 가능한 최대치는 민족이다.

이 글을 쓴 계기는 민족주의를 비판하는 사람들이 즐겨 애용하는 표현 "민족은 상상의 공동체"라는 말을 반박하기 위해서였다. 막상 책을 읽어보니 앤더슨이 말한 '상상'이란 표현이 오해를 자초하긴 했지만 정작 그 '상상'이 우리가 생각하던 날조로서의 '상상'이 전혀 아님을 알 수 있다. 앤더슨의 정확한 발언을 들어보자. "사실 원초적인 촌락보다 큰 공동체는 전부 상상된 것이다. 그러므로 공동체는 가짜냐 진짜냐가 아니라, 어떠한 스타일로 상상되었는가를 기준으로 구별해야한다." 민족이 대면집단보다 크기에 가공의 구성물에 불과하다는 식의 주장은 앤더슨의 책 어디에도 나오지 않는다. '상상의 공동체'라는 말 하나로 민족주의를 공격하던 이들은 앤더슨을 완전히 오해했던 것이다.

광복되고 70여년이 흘렀지만, 친일청산은 제대로 수행된 적이 없다. 이것은 민족주의의 과잉 때문인가? 결핍 때문인가? 민족주의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우선 이 문제에 답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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