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전체의 성장, 발전도 시급한 마당에 웬 지역 간 균형 발전이냐 하는 힐난도 있을 법 하지만, 성장의 열매가 특정 지역에만 국한되고 낙후 지역이 넓게 존재하게 된다면 국민 모두의 행복 증진을 의무로 하는 국가가 자신의 존립 목적을 배반하는 것이다.
오늘날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동반 성장을 강조하는 것이나, 계층간 격차 확대를 우려하는 것 역시, 그간 우리나라의 눈부신 성장의 열매가 대기업과 상류층에만 국한되고, 중소기업이나 저소득층으로는 성장의 낙수 효과가 잘 일어나지 않음으로써, 국민 모두의 행복이 구현되지 않고 있다는 반성에서 비롯된 것이다.
마찬가지로 공간적으로도 발전 지역과 저발전 지역의 격차는 좀처럼 해소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어디의 누군가는 행복할지 몰라도 다른 곳의 누군가는 불행을 곱씹게 되는 일이 많아, 국가가 하나의 공동체로서의 존립 근거가 약화되는 결과로 이어지게 된다. 대통령의 '동반 발전' 주장은 그러한 문제의식에서 비롯된 것으로서, 만시지탄이나마 제대로된 장기적 발전 정책 방향을 짚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나라의 지역격차 추이는 다음 그래프가 가장 잘 보여준다.
이 그래프는 우리나라의 권역별 지역내총생산(GRDP)의 비중을 1960년까지 추적하여 보여준다. 1960년대는 우리나라 산업화가 본격화되는 시기이자, 지역 격차가 본격화되는 시기이다. 그래프에서 볼 수 있듯이 1960년대 초에는 수도권, 영남권, 호남권이 대략 25~30% 사이에서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고, 충청권 13%, 강원-제주 9%의 비율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60년대 중반부터 산업화가 시작되면서 수도권 비중의 급증, 호남 비중의 급감, 영남 비중의 유지, 충청 및 강원-제주 비중의 하락이 뚜렷하게 목격된다. 이것은 1960년대 수출지향 공업화가 경인지역에 집중되는 상황을 잘 보여준다.
그리고 1970년대 중화학공업화 정책이 남동임해 공업 지역과 영남 내륙 공업지역에 집중되면서 수도권 비중의 둔화, 영남 비중의 증가, 호남 비중의 여전한 급감, 충청 및 강원-제주 비중의 하락이 그대로 드러난다. 지역 불균형 발전의 형태가 고스란히 드러나, 발전 지역과 저발전 지역이 현저하게 차별화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특히 호남의 오랜 저발전은 1980년 광주에서의 국가폭력과 겹쳐지면서, 우리 정치사에 오랜 지역주의 정치로 뚜렷한 흔적을 남겼다. 현재는 민주 대 반민주 구도가 강화되면서 지역주의 정치 행태가 많이 흐려졌지만, 그것의 가장 강력한 원인의 하나로 지목될 수 있는 발전 지역과 저발전 지역의 지역 격차는 여전히 해소되지 않은 채로 남아 있다.
1980년대에는 40% 수준에서 둔화되던 수도권 비중이 다시 치솟아 거의 50%에 이르게 되고 영남을 비롯한 호남, 충청 등 여타 지역은 비중의 하락을 겪는다. 가히 수도권만의 발전이라고 아니할 수 없게 된다. 이것은 1980년대의 중요 산업 정책이었던 중소기업 육성 정책이 수도권에 집중되었기 때문이다.
이때 수도권정비계획법은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오히려 1990년대 초중반에 이르러 제3차 국토종합개발에서의 서해안 신산업지대 개발 정책이 평택-당진, 군산-장항, 목포 지역에 중화학 공업의 성장을 이끌면서 수도권 비중의 하락, 호남, 충청 비중의 증가를 유도했다. 그러나 이러한 지역 균형 발전이 성립했던 것도 5~6년에 불과했다. 뒤이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지역 균형 목표는 사라지고 수도권 규제를 대폭 완화하면서 수도권 비중은 다시 상승하는 추세를 보이게 되었다.
다음 그래프는 권역별 지역내총생산 성장률과 전국 성장률의 차이를 5년간 이동평균으로 나타낸 것이다.
이 그래프는 우리나라 산업화 초기의 뚜렷한 지역 격차 확대(1차 확대기), 그리고 1970년대 말에서 80년대 초에 이르는 둔화기(1차 둔화기), 그리고 1980년대의 2차 확대기와 1990년대 초중반의 2차 둔화기를 잘 드러내고, 각 시기에 어느 지역이 가장 많이 성장하고 어느 지역이 가장 발전하지 못했는지 보여준다. 이 그래프는 특히 2000년대 이후의 미세한 지역 격차의 추세를 잘 보여준다.
2000년대 이후의 충청권의 약진과 수도권과 영남권의 둔화 후의 발전, 호남 및 강원-제주의 성장 후의 저발전이 뚜렷하게 나타난다. 특히 2010년 이후 이뤄지는 수도권 및 영남권의 회복, 충청권 성장률의 둔화, 호남 및 강원-제주권의 전국 대비 성장률의 하락 경향이 눈에 띈다. 이러한 추세로부터, 대통령의 "강호축 동반 발전"이라는 화두가 더욱 절실하게 읽힌다.
지역 균형 발전의 방책은 비교적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다. 1960년 이후 우리가 경험한 비교적 짧은 두 번의 격차 둔화 시기로부터 얻는 교훈이다. 두 번 모두 국가 수준에서의 적극적인 산업 정책, 투자 유도, 인프라 확충이 그러한 결과를 이끌었다. 지역 자체 내의 자원을 활용하는 내생적 발전 위에, 국가의 적극적인 역할이 덧입혀져야 한다. 어떤 점에서 그것은 국민국가 영토 내에 거주하는 모든 국민의 동등한 행복 추구권을 보장하기 위한 국가의 책무이기도 하다.
* 서민철 박사는 한국교원대학교 대학원에서 우리나라의 지역불균등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현재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연구위원이다. 지역개발, 지역불균등발전, 서울 도심부의 정의와 변화에 관한 연구를 수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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