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MO(유전자변형식품) 규제를 위한 국제조약인 카르타헤나 의정서가 14일(현지시간) 팔라우의 비준으로 90일 뒤인 9월 정식으로 발효된다. 우리나라는 2000년에 이 의정서에 서명을 한 뒤 현재까지 계속 비준을 미룬 상태여서, 이에 대한 대비가 시급하다는 우려가 많다.
***유전자변형식품을 거부할 수 있는 권리**
유엔환경계획(UNEP)은 14일 '바이오안정성에 관한 카르타헤나 의정서'에 팔라우가 50번째 국가로 비준함으로써 앞으로 90일후인 9월 이 의정서가 공식으로 발효된다고 발표했다. 현재 이 의정서에는 프랑스, 네덜란드, 스웨덴 등 유럽연합 회원국들과 인도, 멕시코, 케냐 같은 아시아, 아프리카, 남미 국가들이 비준을 한 상태다.
의정서가 발효되면 비준국들은 구체적인 과학적 증거가 없더라도 유전자변형식품(GMO)이 생물종 다양성이나 인간의 삶을 해칠 수 있다고 판단될 경우에 GMO 수입을 거부할 권리를 갖는다. 이를 위해 의정서는 GMO 수출국들이 사전에 성분 목록 등 관련 정보를 공개할 것을 의무화해, 수입국들이 GMO의 안정성을 직접 판단할 수 있도록 했다. 현재까지는 수입 GMO에 대한 안정성 논란이 있을 때마다, 미국, 캐나다 등 주요 수출국에서 수입국의 정보 공개 요구를 거부하거나, 과학적 증거를 요구해 수입 규제가 사실상 어려웠다.
클라우스 퇴퍼 유엔환경계획 사무국장은 이번 의정서 발효가 "생명공학이 인류의 발전에 영향을 줌과 동시에, 생물종 다양성과 인류 건강에 잠재적 위험 요소로 작용할 수도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캐나다 등 GMO 수출국들 반발**
한편 의정서에 대한 반발도 만만치 않아 GMO를 둘러싼 갈등이 더욱 가속화될 전망이다. AFP통신에 따르면 지난 5월 13일, 미국은 호주, 칠레 등 12개 농산물 수출국과 연대해 GMO 수입금지 조치를 내린 유럽연합을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하겠다고 엄포를 놓은 적이 있으며, 21일에는 W. 부시 대통령이 직접 "유럽 여러 나라가 GMO의 거래를 제한해 아프리카의 기아 해결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고 비판한 바 있다.
미국을 비롯한 GMO 수출국과 프랑스, 네덜란드 등 수입국 사이의 갈등은 이미 의정서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도 여러 차례 불거졌다. 지난 1999년 콜롬비아의 카르타헤나에서 의정서 채택이 시도되었으나 소위 마이애미 그룹이라 불리는 미국, 캐나다, 호주, 아르헨티나, 칠레 등 주요 농산물 수출국의 반발로 결렬됐던 것이다. 이런 상황 때문에 발효가 확정된 뒤 퇴퍼 사무국장은 "미국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마침내 생물종 보호를 위한 이정표가 완성되었다"고 말하는 등 특별히 미국을 지칭해 불만을 표시하기도 했다.
해당 전문가에 따르면 한국이 2000년 9월에 의정서에 서명을 한 뒤, 계속 비준을 미루고 있는 것도 세계 GMO 재배 면적의 66%를 차지하는 미국의 강한 반발과도 무관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지난해 미국 무역대표부는 한국의 GMO 표시제에 대한 완화를 요구해 환경, 소비자 단체의 반발을 산 적이 있다.
더 큰 문제는 카르타헤나 의정서와 같은 환경 협정들이 세계무역기구의 규정과 충돌한다는 일부의 주장이다. 상품, 서비스 등 무역장벽의 철폐를 목표로 하는 세계무역기구의 규정에 비추었을 때, GMO에 대한 수입을 규제하는 의정서는 부합하지 않다는 것이다. 지난해 남아공의 요하네스버그 지구정상회의에서는 이를 둘러싸고 격렬한 논쟁이 벌어진 바 있다. 재계나 일부 언론에서 GMO 규제를 비롯한 국제 환경 협정들을 비준하는 것을 일종의 '보호무역주의'라고 비판하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나온 것이다.
***한국, 10월에나 비준 가능해**
여러 가지 현실적인 장애물에도 불구하고, 준비를 더 이상 늦춰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다. 우리나라도 이미 GMO의 수입이나 표시 여부를 놓고 환경, 소비자 단체와 수입 식품 회사가 끊임없이 갈등을 빚어왔고, 현재 벼, 감자, 고추 등 약 35작물에 대한 GMO가 연구되고 있기 때문이다.
관계 당국 역시 더디지만 준비를 해왔다. 우리나라는 2001년 이 의정서의 발효에 대비해 산업자원부 주관으로 '유전자변형생명체의 국가간 이동에 관한 법률'을 제정한 바 있다. 이 법은 부칙에 의정서 비준과 동시에 효력을 발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산자부 실무자에 따르면 7월에 시행령, 시행규칙이 확정될 전망이고, 유해성 평가의 범위를 놓고 농림부, 식약청 등 관계 기관과 협의를 진행중이라고 한다. 늦어도 10월에는 비준이 가능하도록 추진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정부의 대비가 미흡하다는 비판도 끊이지 않고 있다. 환경운동연합은 의정서에 대한 국가 책임 기관이 산자부인 것 자체가 "환경보다는 무역에 중심을 둔 것"이라고 비판한다. 비준동의안이 국회에 상정조차 되지 않고 심의 단계에 머물러 있는 실정 역시 이것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의정서를 대비한 법안 자체가 "너무 포괄적인 내용이 많아서 좀더 구체적인 규정을 법안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지적한다. 또 산자부, 식약청, 환경부, 농림부, 해양수산부 등으로 GMO 업무가 분리된 상황에서 "효율적인 감시와 안정성 확보가 어렵다"는 주장이다. GMO 업무를 전적으로 담당할 전문 기관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산자부 실무자 역시 "관계 부처의 이해관계 때문에 단기적으로는 어렵겠지만, 장기적으로는 GMO 업무를 담당할 전문 기관이 필요한 게 사실"이라고 공감을 표시했다.
환경운동연합은 17일 "유전자변형식품 이제 당당히 거부하자"면서 우리나라의 조속한 비준을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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