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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연탄 대신 촛불…21세기 맞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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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연탄 대신 촛불…21세기 맞나요?

[토론회] "'복지'를 넘어서, 이젠 에너지 '기본권'이다"

#1. 지난해 12월 3일, 저소득층이 모여 사는 서울 미아동의 한 주택가에서 불이 났다. 화재 원인은 촛불. 불난 집에 세 들어 살고 있는 인중환(84) 할머니는 고장 난 연탄보일러를 수리할 돈이 없어 양초로 난방을 대신해 왔다고 말했다. 다행이 큰 부상은 입지 않았지만, 기초생활수급자에게 지급되는 월 40만 원의 보조금으로 생활해 온 인 할머니는 당장 갈 곳을 잃게 됐다.

#2. 인 할머니의 안타까운 사연은, 지난 2005년 경기도 광주에서 한 여중생이 단전된 집에서 촛불을 켜고 잠을 자다 불이나 숨진 사건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목숨을 잃은 여중생의 가족은 전기장판으로 겨울을 나면서 전기료가 많이 나왔고, 건설 현장의 인부로 일하는 아버지 남모 씨는 겨울철 일거리가 떨어지자 전기료 88만 원을 체납할 수밖에 없었다.

2005년 여중생의 죽음으로 우리 사회에 '에너지 기본권' 논의가 촉발된 지 5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상품'이 아닌 '기본권'으로서의 에너지 정책은 제자리걸음이다. 매년 단전된 집에서 촛불을 켜고 생활하다 화재가 나는 사건이 되풀이 되고 있으며, 올 겨울 유례없는 한파 속에서 발표된 정부의 동절기 전기 요금 인상 정책은 서민들을 한숨짓게 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저소득층에 대한 에너지 복지와 '에너지 기본권'에 대해 모색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진보신당 녹색위원회·조승수 의원실, 에너지정치센터, 한국에너지복지센터 등이 9일 오후 국회도서관에서 연 토론회에서는 에너지 기본권 정착에 대한 다양한 논의가 오갔다.

▲ 단전으로 촛불을 켜고 생활하다가 화재로 목숨을 잃는 사건이 잇따라 발생하면서 '에너지 기본권'에 대한 논의가 확산되고 있다. 사진은 서울 성북구에 위치한 저소득층 주택가 모습. ⓒ프레시안(허환주)

'땜질' 사업 반복하는 에너지 정책…'에너지 빈곤층' 실태 파악조차 못해

이날 토론회에서는 발제자로 나선 진보신당 녹색선거기획단 이강준 단장은 현물 중심 지원으로 짜여진 지식경제부의 '주먹구구식' 에너지 복지 정책에 대해 꼬집었다.

지난해 지식경제부가 '에너지 복지'를 위해 쓴 예산은 모두 4266억 원. 이중 38.3퍼센트인 1637억 원이 저소득층의 가스·전기 공급 중단을 유예하는데 쓰였다. 다음으로는 저소득층에 대한 가스·전기 요금 인하에 33.1퍼센트인 1413억 원이 사용됐으며, 연탄 등 난방 기구를 보조하는 데에도 154억 원이 투입됐다. 에너지 복지 예산의 80퍼센트 가량이 '현물 지원'에 투입된 셈이다.

이에 대해 이강준 단장은 "물량 공급 위주의 복지 서비스에 치중된 정책"이라며 "에너지 빈곤에 대한 법적·정책적 규정이 없는 상황에서 진행되는 현물 중심의 지원 제도는 정책 수립에 혼선을 낳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제도가 당장 저소득층을 '따뜻하게' 하는 효과는 있을지 몰라도, 매해 보조금 규모가 달리지는 한시적인 정책만으로는 에너지 빈곤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설명이다.

현행 에너지기본법은 "국가, 지방자치단체 및 에너지 공급자는 빈곤층 등 모든 국민에 대한 에너지의 보편적 공급에 기여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지만, 정작 에너지 빈곤층에 대한 실태 파악과 구체적인 정책에 대한 가이드라인은 마련되지 않은 상태다.

따라서 정부는 뚜렷한 법적 근거 없이 그때그때 여론이나 국제 유가 상황에 따라서 에너지 지원책을 발표한다. 지난해 에너지 복지 사업에 집행된 4266억 원 역시 요금 할인·난방비 지원 등 다양한 사업들에 쓰였지만, 이마저도 법적 근거가 없어 언제라도 사라질 수 있는 '고무줄 사업'이다. 당장 보건복지가족부는 지난해 말 저소득층에게 지원되는 에너지 보조금 예산 902억 원을 전액 삭감한 바 있다.

'에너지 빈곤층'에 대한 실태가 정확히 파악되지 않는 것도 문제로 꼽힌다. 현재 정부가 추산하는 에너지 빈곤층은 총 120만 가구. 그러나 이마저도 소득의 10퍼센트 이상을 광열비에 지출하는 영국의 산출 기준을 그대로 적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따라 지원 가구 선정 등의 계획 수립도 주먹구구식으로 진행될 수밖에 없다.

이강준 단장은 "에너지 빈곤에 대한 개념 정의가 부재한 상태에서는 체계적인 계획 수립이 어렵고,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를 중심으로 지방자치단체의 추천을 받아 대상 가구를 선정하다보니, 복지 혜택의 사각지대 역시 발생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소비 중심의 지원보다는 에너지 효율 높여야"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에너지 전문가들은 단기적인 에너지 복지 사업 대신 주택의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대책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연탄 지급·에너지 보조금 등 소비 중심의 지원보다는 주거 시설을 개선해 에너지 효율성이 높이는 것이 더 장기적이고 친환경적인 대안이라는 지적이다.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의 한재각 부소장은 "그동안 정부의 정책은 에너지 빈곤의 원인 중 에너지 '가격' 문제에만 집중해 왔다"며 "에너지 기본권 차원에서 주택의 에너지 효율성을 확대하는 문제에 주목할 필요가 있으며, 이 방식은 장기적으로 비용 효과적인 정책 수단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실제 진보신당 관악구 당원협의회 등 지역의 정당·사회단체들이 관악구 저소득층 주택을 대상으로 '따뜻한 집 만들기' 사업을 벌여온 결과, 다양한 성과가 나타나고 있다. 이들 단체가 지난달 28일 관악구 중앙동의 반지하 주택에서 이중창을 설치하고 단열 공사를 진행한 결과, 하루 공사만으로도 에너지 효율이 40퍼센트 이상 높아진 것으로 측정됐다. (☞관련 기사: "우리집이 변했어요…비밀은 바로!")

▲ 지난달 28일 단열 공사를 진행한 서울 관악구 소재 저소득층 주택 창문의 기밀 성능 측정 결과. 이날 하루 공사만으로 에너지 효율이 40퍼센트 남진 높아진 것으로 측정됐다. ⓒ진보신당 관악구정책연구소

'따뜻한 집 만들기' 사업에 참여한 이봉화 진보신당 관악구정책연구소 소장은 "(에너지 효율화 사업으로) 저소득층 가정이 난방비를 절감하고, 에너지 소비를 줄이면서 지역 일자리 창출의 효과도 발생할 수 있지만, 많은 저소득층 가구가 비용 문제 때문에 엄두를 못 내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주택 에너지 효율화 사업이 녹색 일자리 창출과 온실 가스 배출 절감, 저소득층 복지 등 많은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설명한다. 미국의 사례만 봐도, 오바마 정부 출범 이후 적극적으로 추진된 미국의 주택 단열 지원 프로그램인 'WAP(Weatherization Assistance Program)'는 연간 570만 그루의 나무를 심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미국 에너지부의 통계를 보면, 1978년부터 2005년까지 WAP를 통해 창출된 신규 일자리는 5만여 개이며, 매년 2만여 개 이상의 고용 유지 효과가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오바마 정부는 경기부양법(ARRA·American Recovery and Reinvestment Act)에 따라 WAP에 대한 지원을 대폭 확대해, 한 가구당 6500 달러의 주택 단열 비용을 지원하고 있다.

"시혜적인 복지 개념보다는 '에너지 기본권'으로 접근해야"

물론 우리 정부도 에너지 복지의 일환으로 에너지 효율화 사업을 진행하고 있지만, 아직 역부족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가다. 지난해 지식경제부에서 사용한 에너지 복지 예산 중, 6.6퍼센트인 285억 원만이 저소득층 에너지 효율화 사업에 쓰였다.

이날 지식경제부 에너지자원정책과 채희봉 과장은 "당장 가스와 전기가 끊어질 처지에 놓인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하는 사업이다 보니, 현물 지원이나 할인 제도 중심으로 갈 수밖에 없다"며 "에너지 효율화 사업에 대한 충분한 검토와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 28일 서울 관악구 중앙동의 한 주택에서 에너지 효율화를 위한 집 수리를 진행한 결과 결과, 외풍이 심했던 창문(위)이 사진 아래와 같이 이중창으로 바뀌었다. ⓒ프레시안(선명수)

그러나 현물 지원 중심의 복지 정책이 당장은 저소득층에게 큰 힘이 될 수 있어도, 다수의 에너지 빈곤층이 살고 있는 주거 환경 자체가 난방비를 많이 소비하는 구조라는 점에서 이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요구된다.

대다수 저소득층 주택이 비교적 저렴한 도시가스를 쓸 수 없는 여건이거나 집 자체가 부실해 열 손실이 많은 상황에서, 정부 정책은 이런 구조적인 문제에 효과적으로 대처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한국에너지복지센터 이기순 간사는 "저소득층에 대한 에너지 지원량을 늘리는 것만으로는 에너지 빈곤 문제가 해결될 수 없으며, 효율을 개선시키는 것만이 실질적으로 에너지 복지를 실현할 수 있는 방법"며 "보건복지부가 아니라 지식경제부의 사업이라면 에너지 수요 관리·에너지 안보라는 관점에서 에너지 효율화 사업에 접근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꼬집었다.

17대 국회부터 에너지 기본권을 꾸준히 요구해온 진보신당 조승수 의원은 "시혜적 복지 개념에 익숙한 한국 사회에서 '기본권'이라는 개념이 아직 낯설 수 있지만, 에너지는 복지의 관점에서만 볼 것이 아니라 기본권으로 접근하되 여기에 복지 개념이 플러스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조 의원은 서울 관악 지역을 시작으로 구로, 노원, 은평, 울산 북구 지역에서 에너지 빈곤층에 대한 실태 조사를 진행하고, 에너지 빈곤층에 대한 체계적 지원을 목적으로 한 에너지복지법을 추진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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