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8 정상회담 마지막 날인 3일(현지시간) 프랑스에서는 전국적인 시위가 일어나 주최국 대통령으로서 자크 시라크의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 이번 시위는 그러나 반세계화 행렬이 아니라 연금제도 개혁안에 반발하는 공공부문 노동자들이 주도한 시위였다.
***프랑스, 2020년에는 근로자 1명이 퇴직자 1명 부양해야 할 판**
미국의 AP통신은 3일 “이날 시위로 파리의 열차와 버스 운행은 절반이 감소하고 공항에는 비행기 80%가 발이 묶여 있다”고 보도했다. 프랑스의 주요신문들도 발행되지 못했다.
프랑스 공공부문 노동자들이 지난달 1백만명이 참가한 대규모 시위가 벌인 13일에 이어 한달도 못돼 다시 전국적으로 격렬하게 시위를 벌이고 있는 이유는 퇴직후 연금을 1백% 받을 수 있는 재직기간을 늘리려는 연금제도 개혁안 때문이다. 프랑스 정부의 연금제도 개혁안은 근로자의 정년퇴직 시기를 늦춰 연금 가입기간을 연장하고 연금 분담액도 늘리겠다는 것이 골자다.
개혁안에 따르면,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연금 납입기간이 현행 37년6개월에서 2008년까지는 40년, 2012년에는 41년, 2020년부터는 민간과 같은 수준인 42년으로 늘어나게 된다. 연금납부 기간이 길어지면 연금수령개시 시기도 그만큼 자동으로 늦춰지게 된다.
노동계는 연금 납입기간 연장 계획을 연기하자는 주장이지만 프랑스 정부로서는 개혁안이 관철되지 않으면 인구 고령화로 연금재정이 파산을 피할 수 없다는 강경한 입장이다.
프랑스 정부에 따르면, 1960년엔 4명의 근로자가 퇴직자 1명의 연금을 부담했으나 인구 고령화에 따라 2000년엔 2명의 근로자로 줄었고 2020년엔 근로자와 퇴직자의 비율이 1대 1이 된다. 때문에 앞으로 10년내로 연금 재정이 파산한다는 경고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그동안 안락한 노후 보장을 기대하며 연금 분담액을 내온 노동자들로서는 ‘세대간 형평성’을 이유로 개혁안에 대해 결사 반대하고 있다.
프랑스에서 국민 반대가 불을 보듯 뻔한 연금개혁을 시도한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95년 중도 우파의 알랭 쥐페 총리는 연금개혁을 밀어부치다 한달 가까운 노조 파업에 굴복, 97년 총선에서 사회당에 정권을 내줘야 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정부가 또다시 파업에 굴복만 하지 않는다면 여당인 대중운동연합(UMP)이 상.하 양원을 장악하고 있어 법안 통과는 무난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개혁안은 이달 10일 국회에 제출돼 7월말 표결에 부쳐질 예정이다.
***각국 예외없이 연금개혁 놓고 큰 갈등**
문제는 연금 개혁을 둘러싼 이같은 진통이 주요 선진국들이나 우리나라의 경우도 거의 마찬가지라는 점이다. 인구 노령화에 따라 분담금을 늘리고 연금수령액을 줄이는 등 제도를 손질하지 않고는 도리가 없기 때문이다. 개혁안들은 주로 연금납부기간 확대. 수령시기 연기(유럽 및 이스라엘) 또는 분담금 증액 및 수령액 축소(미국, 한국) 등의 방식으로 추진되고 있다.
지난달 노령연금을 받을수 있는 최소연령을 60세에서 65세로 올리고, 연금보험료 납부기간도 40년에서 45년으로 연장하는 개혁안을 마련한 오스트리아에서는 오스트리아 노동자들이 전국적으로 1백만명이 참가,50년만의 최대 파업을 벌였다.
독일과 이탈리아도 10~15년 후면 연금이 파산할 위기에 봉착해 개혁안 마련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이스라엘은 첫 연금수령 시기를 현행(남자 65세,여자 60세)보다 2~7년 늦춘 개혁안이 지난달초 의회 금융위원회를 통과했다.
브라질은 올초 공무원의 연금수령액을 현재의 70% 수준으로 줄이고,고소득자의 연금납부액을 10% 올렸다. 동시에 연금수령 나이도 남자는 53세에서 60세로, 여자는 48세에서 55세로 상향조정했다.
이탈리아 정부는 자체만으로 개혁안을 추진하기 부담스러워 국민들 눈치만 보고 있다. 때문에 베를루스코니 이탈리아 총리는 유럽연합에서 공동으로 연금제도 개혁안을 마련하자는 식으로 연금 문제를 유럽 전체로 떠넘기는 전략을 취해 사실상 손을 놓고 있는 게 아니냐는 비판을 받고 있다.
***우리나라 사정도 오십보백보**
문제는 우리나라도 연금 파산 위기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데 있다.
출발한 지 15년밖에 안된 국민연금은 적립금액이 최근 1백조원을 넘어섰지만 현재의 제도를 유지할 경우 2035년에 1천7백15조원으로 정점에 오른 뒤 적자로 돌아 2047년에 고갈된다는 조사 결과가 나와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급속히 연금 재정이 바닥나는 이유는 가입자가 보험료로 낸 돈의 두 배를 연금으로 받는 '저부담 고급여' 설계에 인구 고령화 현상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근로인구(18~64세) 1백명당 노령인구(65세 이상)는 2000년 10명에서 2020년엔 22명으로 두 배로 늘고 2050년엔 65명, 2070년엔 75명으로 급증하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난해부터 1년여에 걸쳐 재정안정화 방안을 마련해온 국민연금발전위원회는 분담금 증액 및 수령액 감소라는 큰 원칙에 합의했음에도 불구하고 지난달 28일 "단일안을 도출하지 못했다"며 손을 들었다. 벌써부터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이 “연금액을 축소하는 제도 개악은 절대 수용할 수 없다”며 강력한 대정부 투쟁을 공언하고 있기 때문이다.
98년에도 퇴임 전 소득 대비 연금액 비율(소득대체율)을 70%에서 40%로 낮추려는 국민연금 개혁안이 10% 삭감하는 데 그친 바 있다.
과연 노무현 정부는 각국이 다 직면한 문제인 연금 개혁을 뚝심있게 관철시킬 수 있을지, 예의주시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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