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3일 경남 김해 봉하마을에서 열린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0주기 추도식에는 이낙연 총리와 여야당의 대표들이 모두 참석했다. 아니, '모두'라는 말은 수정해야 한다. 자유한국당 대표 황교안이 조경태(최고위원)를 대표로 한 '추모단'을 파견하고 자신은 강원도 고성의 산불 현장과 철원 최전방의 감시초소(GP) 철거 현장을 방문했기 때문이다. 그는 고성에서 '현장 최고위원회의'를 열고 이렇게 말했다. "문재인 정부가 북한 눈치를 살피느라 우리 군을 뇌사 상태로 만들고 있다. 이런 정권을 믿고 잠이나 편히 잘 수 있겠는가?" 그는 현직 대통령을 향해 '국가원수 모독'이라고 해석할 수 있는 인신공격을 퍼부었다. "(문 대통령은) 국정을 함께 이끌어야 할 야당은 줄기차게 공격하면서 국민을 위협하는 북한 독재정권에 대해서는 앞장서서 감싸고 있다. (그러니) 국정이고 안보고 제대로 돌아갈리 있겠는가? 야당을 공격할 노력의 100분의 1이라도 핵 개발 저지와 북한 인권 개선에 쓰기 바란다."
대한민국의 상비군은 현재 62만여 명으로 알려져 있다. 황교안이 헌법상 국군통수권자인 대통령이 취임한 이후 2년 남짓 만에 그 많은 군인들을 '뇌사 상태'로 만들었다고 주장하는 논거는 무엇인가? 그가 '장교와 사병을 망라한 군인 전원의 뇌 건강을 검진해 달라'고 국군통합병원에 의뢰하기라도 했다는 뜻인가?
황교안은 고성에 가기 앞서 철원 GP 철거 현장에서 '국군 뇌사 상태론'과는 모순되는 발언을 했다. "GP 철거에 따른 안보 공백이 생기지 않도록 (군 관계자들이) 철저하게 훈련하고 경각심으로 근무하는 모습을 봤다." 문재인 대통령이 '뇌사 상태'로 만든 군인들이 어떻게 그런 자세로 일할 수 있다는 말인가?
황교안은 지난 4월 25일 국회에서 패스트트랙(신속처리 안건)이 지정된 뒤 '협치'를 거부하고 5월 7일 부산에서 '민생투쟁 대장정'에 나섰다. 그는 24일, 18일 간의 전국 순회를 마치고 25일 서울에서 주말 집회에 참석하기로 했다. 국회를 외면한 채 계속하던 '가출 정치'를 접은 것이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황교안이 장외 투쟁을 하면서 '무난한 말만 하던 전형적 공무원 스타일에서 강력한 대여투쟁을 하며 대통령에 대해 독설을 퍼붓는 야당 지도자로 변신했다'는 평가도 나온다고 한다. 과연 그런가? 황교안이 안고 있는 가장 심각한 문제는 한국 현대 정치사에 대한 인식이 너무 박약하고 자기 세력 중심적이라는 것이다. 그는 1948년 8월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래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등이 주도해온 독재정치와 반인권적 행태에 관해서는 단 한 마디의 비판도 한 적이 없다. 이명박이 대통령으로 자행한 위법적 사익 추구와 대국민 사기, 박근혜가 최순실과 함께 저지른 국정농단은 황교안의 뇌에는 전혀 입력되지 않은 것 같다.
지난 2월 말 자유한국당 대표로 선출된 뒤 3개월 가까이 황교안이 보인 정치적 행보는 생산보다는 파괴에 가까운 성향이 더 짙었다. 대통령을 '김정은의 대변인'이라고 비하하는가 하면 집권세력을 '좌파 독재'라고 공격하는 것은 이제 일상적 행태가 되어버렸다. '남북의 평화적 공존'과 갈라진 민족의 화합 같은 명제는 그의 뇌 속에 전혀 들어 있지 않음이 분명하다. 그런데도 그는 버젓이 '대권 행보'를 계속하고 있다. 통합을 추구하기보다는 분열을 일으키려는 그가 언제까지 그런 방식으로 지지세력을 늘려 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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