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한 달러(Weak Dollar)' 시대가 본격적으로 전개되고 있다.
존 스노 미 재무장관이 파리에서 열린 G8 재무장관 회담을 마친 후 18일(현지시간) "미국 정부는 더이상 시장에서 형성되는 달러가치로 달러 강세 여부를 판단하지 않겠다"고 밝히자, 시장은 이를 '강한 달러' 정책의 포기로 받아들여 연일 달러가 급락을 거듭하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저치로 떨어졌던 1995년부터 미국은 "강한 달러가 국익에 도움이 된다"는 원칙아래 외환투기세력을 견제하면서 달러 가치를 뒷받침해온 정책을 구사해 왔다. 이 때문에 스노 장관의 발언은 미국 정부가 달러 가치 하락을 막기 위해 개입할 의도가 없다는 것을 공식화한 것으로 받아들여진 것이다.
게다가 스노 장관은 달러 가치가 2000년 10월 최고치에 비해 28%가량 떨어진 데 대해 "정말 서서히 조정되고 있는 것"이라며 추가하락도 용인하겠다는 뜻을 나타냈다.
***부시의 일방주의와 무능한 경제팀이 달러하락 초래**
미국이 이처럼 강한 달러 정책을 수정하게 된 배경을 두고 다양한 분석이 나오고 있지만 대체로 디플레이션 위험이 다가오고 있다는 위기상황을 우선적으로 꼽는다.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FT)의 이코노미스트 데이비드 헤일은 19일(현지시간) '미국의 약한 달러 정책'이라는 칼럼을 통해 "미국 경제가 현재 직면하고 있는 상황은 독특하다"면서 "지난 1년간 달러가 주요통화에 대해 30%나 하락한 시점에서 미연방준비제도이사회(Fed)는 디플레이션 위험을 경고했다"고 지적했다.
달러가치가 하락했음에도 불구하고 미 재무부 채권 수익률은 45년래 최저로 떨어지고 독일정부채권 수익률보다도 0.37%포인트나 낮은 상태다. 투자자들이 인플레이션에 대해 개의하지 않기 때문에 달러가치 하락은 미 금융시장에 고통으로 여겨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칼럼은 "달러 하락은 1년 이상 지속되어 왔지만 특히 최근 몇주간 급락한 이유는 다음 세 가지"라고 정리했다.
첫번째, 금융시장에서는 부시 행정부의 재정 정책으로 올해 연방재정적자가 4천억~5천억 달러에 이르고 경상수지적자는 6천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보고 있다는 점.
두번째, 부시 정부가 재정상황, 대외무역, 외교관계 등에 악영향을 미칠 제국주의적 외교정책을 추진하는 데 시장이 경악하고 있다는 점.
제국주의 시대 영국은 막대한 경상수지 흑자를 누렸었다. 미국처럼 세계 초강대국이 엄청난 경상수지 적자를 내고 있는 전례는 없다. 미국은 냉전시대나 지난 91년 걸프전 때까지만 해도 동맹국들로부터 막대한 국방비 지출을 상쇄할만한 자금을 돌려받았다. 그러나 미국의 일방주의가 심해지면서 모든 비용을 혼자 감당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세번째, 시장은 미국 경제정책팀에 중심이 없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 부시 행정부는 백악관에 거의 권력이 집중돼 있어, 각료 중에서는 국무장관와 국방장관의 힘이 두드러질 뿐이다. 재무장관의 위상이나 영향력은 부적절한 발언과 좋지 못한 의회 관계로 중도하차한 폴 오닐 전 재무장관때부터 약화됐다. 후임 스노 장관은 의회와의 관계개선을 위해 많은 노력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시장은 그를 정책입안자라기보다는 세일즈맨으로 보고 있다. 부시 행정부의 경제정책을 수립했던 래리 린지 백악관 경제수석과 글렌 허바드는 사임해 버렸다.
다른 경제정책 기관들도 힘이 없다. 신임 국가경제정책회의(NEC) 의장은 시장을 상대하기보다는 내부 행정에 집중하고 있다. 예산관리국(OMB) 미치 다니엘스 국장은 인디애나주 주지사 선거에 출마하기 위해 지난 5월초 사임했다. 심지어 백악관 경제자문회의는 백악관에서 퇴출됐다. 경제정책은 정부의 경제기관들이 아니라 백악관 정책보좌관들에 의해 장악된 것으로 보인다. 칼 로브 백악관 정치보좌관이 달러 문제에 대해 기자회견을 갖지 않는 한 백악관이 달러의 반등을 유도할 능력도 없는 상태인 것이다.
***'부시 거품' 발생하면 재선 힘들듯**
미국의 부동산 거품을 위태롭게 하는 자금이탈 현상만 벌어지지 않는다면, 미 정부는 달러 안정을 위해 어떤 대응도 하지 않을 것이다. 반면 다른 나라들은 환율 방어에 나설 것이다. 아시아는 대대적인 시장 개입을 통해 달러 하락에 저항할 것이다. 중국의 외환보유고는 올해 2천8백억~3천3백억 달러로 늘어날 것이며 일본의 외환보유고는 5천억~6천억 달러, 2008년경에는 무려 1조달러로 급증할 것이다.
아시아 국가들이 환율방어에 나선다면 미국은 다른 통화에 대해 한층 대폭적인 달러가치 하락을 통해 경상수지 적자를 줄여야 할 것이다. 이같은 압력은 유로권, 영국, 캐나다, 남아공 등 여러 국가들의 통화팽창을 경쟁적으로 촉발시킬 것이다. 이들 국가는 환율하락을 막기 위해 금리를 인하해야 할 것이다.
부시 행정부는 2004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경제회복을 위한 공격적인 재정통화정책을 추구하고 있다. 지난 80년대말 일본은 환율방어를 위한 통화팽창 정책으로 부동산.주식 가격이 폭등하는 거품경제를 초래됐다.
향후 경쟁적인 통화재팽창 정책 역시 중앙은행들이 예상보다 훨씬 더 공격적인 금리 인하를 단행하는 상황을 강요할 것이다. 만일 이런 상황이 전개된다면 부시 대통령은 재선에 실패할 것이다. 2004년말에서 2005년에 자산시장 곳곳에서 '부시 거품'이 발생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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