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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거품' 때문에 어떻게 망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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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거품' 때문에 어떻게 망했나?

[일본은행의 자성]"지금 한국은 일본의 복사판"

정부의 투기억제책에도 불구하고 최근 국내 아파트값이 폭등하면서 "이러다가 일본의 전철을 밟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세간에 급속히 높아지고 있다. 80년대 후반 부동산투기를 막지 못한 결과 지난 91년 거품이 꺼지면서 지금까지 12년째 장기불황의 늪에서 허덕이고 있는 일본의 뒤를 따르고 있는 게 아니냐는 우려다.

과연 일본은 왜 이런 실수를 범했으며,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과연 일본의 전철을 밟고 있는 것인가.

일본 중앙은행인 일본은행의 산하연구소 일본은행금융연구소(IMES)는 지난 2000년 6월 <자산가격 버블과 금융정책: 1980년대 후반의 일본의 경제와 그 교훈>이라는 70쪽 분량의 보고서를 발표한 바 있다. 오키나 쿠니오, 시라가와 마사아키, 시라츠카 시게노리 등 세명의 연구원이 합동으로 작성한 이 보고서는 지금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일본 땅값 90년에 비해 80%나 폭락**

IMES는 1987년~1990년 4년간을 '버블기'라고 정의하고 있다.

버블의 1차적 특징은 '자산가격의 대폭적 상승'이다.

우선 주가의 경우 일본 닛케이지수는 1986년부터 오르기 시작해 최정점이던 1989년 12월말 3만8천9백15엔으로 1985년 9월 플라자합의때의 1만2천5백98엔에 비해 3.1배나 올랐다. 그후 거품이 빠지면서 주가는 급락, 1992년 8월에는 최정점에 비해 6할이나 떨어진 1만4천3백9엔으로 무너졌고 요즘은 7천~8천엔에 머물고 있다.

지가(땅값) 폭등은 도쿄에서 시작돼 오사카, 나고야 등 주요도시를 거쳐 전국으로 확대됐다. 도시지가 가격지수를 보면 최정점이던 1990년 9월의 경우 1985년 9월보다 4배나 올랐고, 그후 땅값은 하락세로 급반전해 1999년말 현재의 경우 최정점이던 1990년 9월에 비해 무려 8할이나 폭락했고 지금도 하락세는 계속되고 있다.

이같은 자산거품의 파열은 곧바로 금융기관 부실화로 이어졌다. 일본의 주요 은행의 부실채권액만 살펴보아도, 1998년말 명목 국내총생산(GDP)의 4.1%인 20조3천억엔에 달했고, 여기에 1992년이후 누적직접상각액을 더하면 그 규모는 명목 GDP의 9.0%인 44조6천억엔이나 됐다. 이같은 부실규모는 선진국 가운데 최악의 상태다.

***거품발생의 4대 메커니즘**

IMES 보고서에서 특히 주목되는 대목은 '버블의 발생 및 확대 메커니즘'을 규명한 대목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진행중인 아파트거품의 발생 메커니즘과 너무나 흡사하기 때문이다.

이 보고서는 거품을 낳은 요인을 다음 네 가지로 요약정리하고 있다.

첫번째, 금융기관의 대출 세일즈 경쟁이다.
일본 대기업의 자금조달은 1980년부터 급속히 자유화돼 국내외 금융시장에서 회사채 및 주식 발행으로 자금을 쉽게 조달할 수 있게 됨에 따라, 은행은 갑자기 대출해줄 곳을 잃어버렸다. 이에 급속히 수익률이 떨어지기 시작한 은행들이 눈을 돌린 곳은 부동산 관련 가계대출과 부동산담보 중소기업 대출이었다.

두번째, 장기간에 걸친 금리인하이다.
우선 금리인하는 자금조달 비용을 낮춤으로써 '투기꾼의 자금조달'을 쉽게 만들었다. 또한 금리인하는 주가를 급등시킴으로써 기업이 보유하고 있는 토지와 주식의 자산가치를 높여, 이들 자산을 담보로 한 은행대출 및 회사채 발행을 용이하게 만들었다. 금리인하가 반드시 거품 발생의 충분조건은 아니나 필요조건인 것만은 분명하다.

세번째, 세제 및 규제 미비에 따른 땅값 상승의 가속화다. 요컨대 상대적으로 토지보유에 대해서는 낮고, 매매차익에 대해선 무거운 세금을 매기는 토지세제가 땅값 상승을 부추겼다. 보유세율이 낮을 경우에는 세금 부담측면에서 토지 보유 인센티브가 높아 토지 공급을 억제하는 효과를 가져오고, 그 결과 땅값이 오른다.

네번째, 리스크(위험) 관리기능의 약화다.
일반적으로 버블기에는 금융기관, 일반기업, 개인, 정부 등 모든 경제주체의 행동이 공격적으로 바뀌면서 리스크 사전 체크 기능이 약화된다.

***영원한 거품은 존재하지 않는다**

IMES는 1987년 일본의 거품경제가 시작된 한 요인으로 1987년 10월19일의 블랙 먼데이(뉴욕의 주가 대폭락)을 꼽는다. 뉴욕의 주가폭락은 미국을 위시한 전세계에 공황 발발 위기감을 불러 일으켰고, 미국은 이에 세계 주요 중앙은행들로 하여금 금리를 낮추고 통화량 공급을 늘리도록 압박했다. 마치 지난 2001년 9.11테러를 계기로 미연준(Fed)이 금리를 대폭 낮추고 우리나라를 비롯한 다른 나라 중앙은행들이 그 뒤를 따르게 된 것과 흡사한 국면이었다.

미국의 금리인하 압박은 실물경제가 튼실한 일본에 대해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1988년 1월 열린 레이건 미대통령과 다케시다 일본총리간 미-일정상회담에서 레이건은 일본에게 금리인하를 요구했고, 그 결과 공동성명에 "일본은행은 경제의 지속적 성장을 달성하고 외환시장 안정을 이룩하기 위해 단기금리(콜금리)가 계속 낮아지도록 노력하기로 합의했다"는 문구가 들어가게 됐다.

그 결과 일본은행은 거품이 양산되던 1988년과 1989년 상반기까지 금리를 손대지 못했고, 1989년 5월에 이르러서야 콜금리를 2.5%에서 3.25%로 높일 수 있었다. 하지만 이미 투기바람에 휘말려든 일본 주가와 땅값은 꿈쩍하지 않고 상승행진을 거듭했고, 1990년에 들어서 거품이 터질 때까지 이런 상황은 계속됐다.

하지만 영원한 거품은 없는 법이다. 주가는 1989년까지 최정점으로 1990년 들어 급락세로 반전돼, 1990년 8월에는 전년의 최고점에 비해 50%나 급락했다. 땅값은 주가보다 늦게 떨어지기 시작해, 1991년 2월을 최고정점으로 그후 끝없는 추락을 거듭했다. 거품의 종언이었다.

IMES는 결론부에서 일본은행의 실수를 다음과 같이 자성하고 있다.

"금리인상이 일찌기 행해졌다면 그렇지 않은 경우에 비해 그 만큼 거품의 '자율적 붕괴' 타이밍을 앞당김으로써 버블기의 신용팽창을 압축, 버블 붕괴후의 악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한마디로 압축해 '선제적 대응'에 실패한 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식의 늑장 대응을 함으로써 일본경제의 몰락을 초래했다는 처절한 자성이다.

***지금도 계속되는 '부동산 경기부양론'**

일본은행의 이같은 반성은 지금 극심한 경기침체에도 불구하고 유독 아파트값만은 폭등을 거듭하고 있는 우리에게도 많은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정책당국은 "가뜩이나 경기침체가 심각한만큼 부동산경기마저 위축되서는 안된다"는 논리아래 '부동산 경기부양론'을 펼치고 있다. 최근 아파트값 폭등에 따른 비난여론이 높아지자 몇몇 투기대책을 내놓기는 했으나, 이와 동시에 쏟아놓은 금리 인하 및 신도시 건설, 미온적 분양권 전매제한 등의 상반된 대책을 보면 정부의 정책기조는 여전히 '부동산 경기부양론'에 기초하고 있다 하겠다.

하지만 이같은 땅값 폭등에 기초한 거품경제는 앞의 일본 경우에서 볼 수 있듯, 그 끝이 참담하다. 일본은 1991년이래 지금까지 장장 12년째 '헤이세이(平成) 불황'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이런 불황이 앞으로 얼마나 더 계속될지 누구도 모르는 암흑속을 헤매고 있다.

한국은행을 비롯한 재정경제부, 건설교통부 등 관련부처가 몇년 뒤 일본은행처럼 참담한 자아비판을 하는 일이 없기를 바랄뿐이다. 지금 많은 이들이 "이러다가 제2의 일본이 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정책당국자들은 분명히 알아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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