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가 민주당에 대해 과거에 범해 아직도 회계장부에 은닉돼 있는 분식회계에 대한 '대사면'을 요구해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오는 6월 임시국회에서 증권관련 집단소송제 법안이 통과되면 특히 분식회계, 허위공시, 주가조작 등 3가지 범법행위가 집중적인 소송대상이 된다. 그중에서도 분식회계는 기업들에게 가장 두려운 소송대상이다. 1조5천여원의 초대형 분식회계를 한 SK글로벌 사건이나 1조6천억원의 분식회계를 한 (주)진로 등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 분식회계가 드러날 경우 오너의 경영권 자체가 붕괴되는 사태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재계, "과거 분식회계 사면해달라"**
현명관 전경련 부회장 등 경제5단체 부회장단은 2일 김효석 제2정책조정위원장과 가진 비공개 간담회에서 “기업 스스로 주가관리나 상장요건을 맞추기 위해 하기도 했으나 과거 분식회계는 기업들이 정치자금을 내느라 어쩔 수 없이 한 측면도 있었다”면서 과거 분식회계에 대한 사면을 요구했다. 사실상 많은 기업들이 현재 분식회계를 하고 있음을 시인한 셈이다.
이날 재계는 최소한 5년이상의 유예기간을 둬 장부를 ‘깨끗하게 만들’ 기회를 준 뒤에 분식회계를 문제삼으라고 요구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재계는 또 과거 분식회계는 법적으로 문제삼지 말고, 집단소송제 도입이후 분식회계만 문제삼아줄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민주당 김효석 위원장은 이에 간담회를 마친 뒤 “집단소송법을 통과시킨 뒤 새로 발생한 분식회계에만 이 법을 적용하고 과거의 분식회계에 대해서는 ‘대사면’을 추진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라고 밝혔다. 이에 앞서 한나라당도 집단소송제후 분식회계에 대해서는 1년 내지 2년 정도의 유예기간을 두는 방안을 제의한 상태다. 여야가 재계의 요구를 수용하는 양상이다.
***민주당, 정부부처내 이견**
그러나 이같은 방침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민주당 정세균 정책위의장은 “당이 분식회계를 사면하는 방향으로 가기 어렵고 실현 가능성도 낮다”고 밝힌 뒤 “아직 정책 사이드에서 그런 논의를 한 일이 없고 당.정이 협의한 일도 없다”고 말했다. 그는 “분식회계 사면은 김 위원장 개인 아이디어 차원”이라고 일축했다. 정세균 위원장은 “분식회계에 대한 사면을 할 경우 외국이 한국 기업의 재무제표를 믿지 못하게 되고 이렇게 되면 국가 신인도가 급락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실제로 주무부처인 금융감독위원회도 정부의 기업의 과거 분식회계를 사면해 주더라도 개별 민사소송이나 세금문제는 그대로 남게 돼 사면의 실효성이 크지 않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재정경제부도 대외신인도를 우려해 사면 논의 자체를 우려하는 분위기다. 다만 차제에 현행 외부감사법에 규정한 분식회계의 정의가 모호한만큼 소송 남발을 막기위해 구체적으로 명확히 규정하는 법 개정은 고려해볼만하다는 정도다.
사면 논의에 회의적인 시각은 재계 일각에서도 제기되고 있다. 사면의 경우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 문제가 제기될 뿐 아니라 분식을 고백하는 순간부터 여신이 끊어질 우려가 있으며, 집단소송대상이 안되더라도 민사소송 대상이 될 수도 있다는 이유다.
분식회계 대사면론은 지난 2000년 대우그룹 해체직후 22조원의 분식이 밝혀지면서 금감원 일각에서 제기된 바 있다. 그러나 그때마다 "행정적으로 혜택을 줄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는 세법위반 배임죄 등 범법사실에 대해 사면해줄 논리적 근거가 약하다"는 반론이 제기되면서 무산됐다.
2001년에는 “전기 분식에 대해서는 면죄부를 주는” 금감원 방침이 발표되기도 했으나 이 방안만으로 분식을 해소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당시 금감원은 전기 오류수정을 통해 과거분식을 떨어낼 경우 금감원 감리를 면제해주고 신용등급 하락에 따른 금융불이익을 주지 않는 등의 방안을 발표했으나, 시행기간이 2001년말까지로 짧았던 등 문제가 많아 사실상 유야무야되고 말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계는 '오너의 경영권 방어' 측면에서 과거의 분식회계에 대한 사면을 계속 요구할 전망이다.
이와 관련, 한 경제전문가는 "대다수 대기업들이 과거부터 누적된 분식회계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게 객관적 현실"이라며 "기업들이 솔직히 과거의 분식회계 규모를 공개하고 이에 따른 주가급락 등을 감수하면서 어떻게 분식회계분을 채워나갈 것인가를 밝힌다면 논의가 가능할 수 있으나 과거분식 회계에 대한 초법적 형-민사상의 사면을 요구하면 논란은 불가피할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이어 "이런 사면논의가 생산적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라도 정부는 각 기업의 분식회계 규모에 대한 전반적 파악부터 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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