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핵무기 보유 선언을 계기로 언론은 "북한, 9번째 핵무기 보유국이 되는가" 등의 관련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이들 기사는 세계의 핵무기 보유현황을 다루며 한결같이 이스라엘 얘기를 하고 있다. 4백여개의 핵무기를 보유한 것으로 추정되나, 이스라엘이 공식적으로 이를 시인한 일은 없다는 식이다.
이스라엘의 핵무기 보유는 미국등 강대국의 '이중적 핵정책'의 허상을 드러내보이는 대표적 사례로 꼽히고 있다. 아울러 전세계의 많은 국수주의자들로 하여금 핵무기 보유를 주장, 시도케 하는 결정적 근거로도 작용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북한의 핵무기 보유 선언을 계기로 한국, 일본, 대만 등 아시아의 국수주의자들 사이에서 핵무기 보유 시도가 재연될 가능성을 점치고 있기도 하다. 이는 미국과 중국이 북한의 핵무기 보유에 예민한 반응을 보이며, 반드시 이를 저지하려고 있는 이유중 하나이기도 하다.
실제로 일본의 경우 대표적 극우인 이시하라 신타로 도쿄도지사 등은 '일본의 핵무장화'를 오래 전부터 주장해왔고, 국내에서도 그런 주장이 제기돼왔다. 그런 대표적 인물중 하나가 조갑제 월간조선 사장이다.
실제로 조갑제 사장은 자신의 사이트(chogabje.com)의 '기행문' 섹션에 이스라엘의 핵무기 보유과정을 소개하며, 반대로 미국의 저지로 핵무기를 갖지 못한 우리나라의 식민지적 근성을 비판하는 글을 올려놓고 있다. 이스라엘을 열흘간 다녀온 뒤 지난 1995년 <월간 조선> 8월호에 실었던 '대한민국은 국가인가, 협회인가'라는 글이 그것이다.
여기서 그는 1960년대 프랑스와의 비밀 핵개발 협정과 미국의 묵인아래 4백개의 핵무기와 장거리미사일을 개발, 지금까지 중동에서 절대적 군사패권을 지키고 있는 이스라엘의 핵개발 과정을 소개하며 이를 크게 부러워하고 있다. 그는 또 자주국방노선을 추구, 핵무기를 개발하다가 친미파인 김재규에게 암살된 '박정희의 좌절'을 안타까워하며, 이는 한국에 외국 군대가 주둔하면서 식민지 근성이 남아 있기 때문이라고 개탄했다.
'박정희주의자' 조갑제 사장의 한 내면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조갑제 사장은 그러나 최근 고영구 국정원장 임명과 관련, 지난 22일 '고영구씨가 국정원장이 되면 CIA가 협조할까'라는 글을 자신의 사이트에 실었다.
"국정원은 對北정책을 추진하는 데 있어서 조직과 정보를 제공하며, 미국 CIA와 對北정보를 공유한다. 김현희에 의한 대한항공기 폭파사건, 아웅산 테러 사건 같은 국제적인 사건이 터지면 미국 CIA의 협조가 문제 해결에 결정적이다. 北核문제에 대한 韓美 정보 공조도 안보의 기반이 된다.
高泳耉 후보 같은 사람에게 미국 CIA가 중요 정보를 줄 것인가. 그가 쓰는 참모중에 사상적으로 의심스러운 사람이 있다면 그런 조직에 정보를 주겠는가. 김대중 정부하의 국정원은 북한의 對南공작기관에 수억 달러를 보내는 심부름 役을 했다. 민족 반역자를 위해 봉사함으로써 스스로의 정체성을 잃어버린 이런 조직에 高후보 같은 인물이 책임자로 들어설 때 과연 우방국과의 협조가 잘 이뤄질 것인가. 아니면 김정일 정권과의 협조가 잘 이뤄질 것인가.
원래 돈이 가는 길과 정보가 가는 길은 같다고 한다. 국정원이 김정일의 對南공작기관에 국민과 국회를 속이면서까지 거액의 불법 비자금을 보내는 내밀한 사이가 되었으니 정보도 북한으로 넘어갔으리라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이런 판에 高泳耉씨 같은 인물이 국정원장이 되면 미국과의 관계는 더욱 멀어질 것이다. 한반도 위기상황에서 그 어느 때보다도 가까워져야 할 韓美 정보기관 사이가 벌어진다는 건 국가와 국민들에게 엄청난 손실을 가져다 줄 것이다. 그런 손실에 무감각한 사람들이 하는 일이라면 결국 국민들은 당해봐야 알게 될 것이다."
조갑제 사장의 이같은 두 글을 보면 외형상 우리나라 우익의 사상적 혼란과 자기모순을 목격하게 된다. 자주적 군사대국화에 대한 강한 욕망과, 미국에의 철저한 종속성이라는 상반된 두 요소의 충돌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같은 외형적 혼란도 '이스라엘'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자연스레 해소된다. "이스라엘같은 '친미 군사대국'이 되면 해법을 찾을 수 있다"는 결론이 도출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조사장은 그러나 이스라엘은 단순한 군사대국이 아니라 세계, 그중에서도 특히 미국의 금융,서비스산업의 헤게모니를 틀어쥐고 있고 그결과 미국정치권 역시 쥐락펴락하고 있는 유대인들의 국가라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 한국은 결코 이스라엘이 아니며, 이스라엘이 될 수도 없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는 데에서 한국우익의 비극은 시작되고 있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다음은 조갑제 사장이 쓴 '대한민국은 국가인가, 협회인가'라는 글 가운데 이스라엘의 핵무기 관련 부문을 뽑은 글이다. 편집자
***"이스라엘이 한국처럼 미군에 국방을 의존하고 있었다면 核개발은 불가능했을 것"**
이스라엘에서 접하는 신문·방송·잡지·책들도 온통 안보를 제1주제로 삼고 있었다. 이스라엘-시리아 평화협상의 조건을 둘러싼 격론, 레바논 남부에서 이스라엘 병사가 전사한 사건, 요르단 서안(西岸)(West Bank)의 점령지에서 발생한 소요, 예루살렘의 아랍인 땅을 이스라엘 정부가 수용한 사건…. 텔 아비브의 서점에 갔더니 이자크 라빈 수상과 시몬 페레스 외무장관의 자서전이 나란히 꽂혀 있었다. 노벨 평화상도 공동으로 받고 집권 여당(노동당)의 2大 지주이기도 한 두 사람은 30여년간 정치적 라이벌 관계에 있다. 지금은 콤비가 되어 이스라엘과 PLO(팔레스타인해방기구), 요르단, 시리아와의 평화협상을 정력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두 사람의 회고록은 이스라엘 정치의 중요한 단면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재미있게 읽혔다. 우선 두 회고록의 내용이 전쟁, 건국, 외교, 테러, 核개발, 비밀공작(工作) 등을 중심으로 하고 있어 숨막히는 긴장감을 자아낸다. 라빈, 페레스 모두 솔직하고 직설적으로 쓰고 있다. 정치인이 이렇게 표현해도 되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특히 시몬 페레스는 자신이 그 책임자로 일했던 核무기 비밀 개발에 대해서 한 장(章)을 떼내어 자세하게 쓰고 있다.
이스라엘은 1956년 이집트의 나세르에 의한 수에즈운하 국유화 사건 때 프랑스·영국과 합세하여 對 이집트 작전에 가담한 것을 기회로 삼아 프랑스와 비밀核개발 협정을 체결했다. 프랑스 기술의 도움으로 네게브사막에 재처리시설, 원자로 등 핵무기 개발 단지를 만든다. 이스라엘 건국의 아버지인 벤 구리온 수상은 이 사업을 적극적으로 지원했으나 골다 메이어(뒤에 수상 역임) 등 반대자들도 만만치 않았다.
페레스는 회고록에서 이 核개발 과정을 설명하면서 한번도 「核무기 개발」이란 용어를 쓰지 않았지만 그 대신 「核무장 선택권」이란 의미이지만 사실상 핵개발을 뜻하는 「뉴클리어 옵션」(Nuclear Option)이란 용어를 썼다. 페레스 외무장관은 이스라엘이 비밀核개발을 성공시키는 과정에서 돌파해야 했던 여러 난관들을 설명했다. 그 중의 하나.
페레스 당시 국방차관이 1959년 아프리카의 세네갈을 방문하고 있는데 벤 구리온 수상으로부터 남은 일정을 취소하고 급히 귀국하라는 연락이 왔다. 비상사태가 발생한 줄 알고 돌아오니 벤 구리온 수상, 골다 메이어 장관, 해외 정보기관인 모사드 책임자 하렐이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수상이 설명인즉, 소련의 첩보위성이 네게브사막의 核시설 건설공사 현장을 촬영했고 이 사진을 갖고 그로미코 소련 외무장관이 지금 워싱턴으로 날아갔다는 것이다. 포스터 덜레스 美국무장관에게 그 사진을 들이대고서 미국과 소련이 힘을 합쳐서 이스라엘에 대해 核개발을 포기하도록 압력을 넣으려 하는 것 같다는 정보를 입수했다는 것이다.
특사를 미국으로 보내 간청을 해보자는 쪽으로 이야기가 진행되고 있었다. 이때 페레스가 단호하게 반대하고 나섰다는 것이다.
『우리가 미리 이실직고하면 약점을 잡히게 된다. 그냥 가만히 있자. 도대체 소련 첩보위성이 찍은 사진에 뭐가 나오나. 땅을 판 구멍밖에 보이지 않을 것이다. 딱 잡아떼면 그만이다』
이런 취지의 설득이 통해서 이스라엘 정부는 김일성식으로 얼굴에 철판을 깔고서 核개발을 계속 추진해 지금은 核강대국이 되었다. 이스라엘은 이미 1960년代 核폭탄 제조에 성공했고 지금은 약 4백개의 탄두를 갖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것을 운반할 장거리 미사일 제리코 1, 제리코 2호도 실전용으로 배치된 지 오래이다. 小國이 강대국의 감시망 속에서 비밀리에 核무기를 개발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 하는 것은 核무기 개발에는 성공했으나 국제적인 압력으로 경제난에 봉착, 결국 核무기 제조는 보류하고 있는 인도를 비롯, 박정희의 좌절과 북한의 경우에서 잘 드러나고 있다.
이스라엘이 유독 核무장에 성공한 것은 벤 구리온과 페레스 같은 배짱 있는 정치인의 리더십과 자주국방에 대한 정치권의 전면적(全面的) 지원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이 한국처럼 미군에 국방을 의존하고 있었다면 核개발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1970년대 韓美국방장관 회담때 럼스펠드 美국방장관은 서종철(徐鐘喆) 한국 국방장관에게, 『만약 한국이 핵개발을 시도한다면 미국은 한미 상호 방위조약의 폐기를 포함한 외교·경제·사회·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의 양국관계를 전면 재검토할 것이다』고 통보한 적이 있다. 박정희의 核개발 등 자주국방 의지에 대하여 미국 편에 서서 불만을 가지고 있었던 이가 바로 김재규(金載圭) 당시 정보부장이었음은, 그의 항소이유서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카터 행정부가, 자주국방 노선을 추진, 미국의 영향력에서 벗어나려는 박정희에 대해서 한국內의 일부 재야 및 정치 세력을 조종하고 인권외교라는 위선적 명분론을 들고나와 코너로 몰았던 것도 이스라엘과 비교되는 대목이다.
시프記者가 지적했듯이 외국 군대가 주둔하면 한국처럼 식민지 근성이 남아 있는 나라에선 외세에 조종되는 세력이 나타나게 된다. 조국에의 배신과 국론분열이 빈발하여 먼저 내부적으로 국가의지가 꺾여버리게 되는 것이다. 페레스가 보인 배짱은 국내적으로 단합된 주권국가만이 부릴 수 있는 오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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