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연고점을 연거푸 갈아치운 원/달러 환율의 급등 배경을 두고 우려와 반론이 교차하고 있다.
한국 경제의 구조적 한계, 성장동력 저하 등 장기적·근본적인 문제점이 반영돼 원화 가치가 하락했다는 견해가 나온다.
외국인 투자자의 배당 송금과 미국과 중국의 무역갈등에 따른 경계심 등 일시적·계절적 요인이 주로 작용했다는 의견도 있다.
12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원/달러 환율은 지난 10일 장중 1,182.9원까지 상승했다. 장중 고가 기준으로 2017년 1월 17일(달러당 1,187.3원) 이후 최고치다.
원화 가치가 이처럼 2년 4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진 배경으로 미·중 무역갈등이 먼저 꼽힌다.
미국이 10일 중국 수출품에 추가 관세부과를 강행한 데 이어 전날 협상이 무위로 끝나는 등 양측의 갈등이 고조됐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미·중 무역협상 등을 둘러싼 불확실성이 증대되면서 국내외 금융·외환시장의 변동성이 커지고 있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정부는 환율 상승이 구조적 문제라기보단 이런 일시적 요인에 큰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고 있다. 바꿔 말해 한국 경제의 '펀더멘탈(기초체력)'은 튼튼하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부도 위험을 나타내는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은 5년물 기준으로 지난 11일 35.39bp(1bp=0.01%포인트)를 기록했다.
말레이시아(63.57bp)·홍콩(38.18bp) 등 아시아 신흥국은 물론 스페인(55.82bp)·체코(44.82bp) 등 유럽 국가들보다 낮다. 그만큼 시장에서 위험을 낮게 본다는 의미다.
외환보유액은 지난해 4천억달러를 넘었다. 대외 금융자산에서 부채를 뺀 순자산은 4천130억달러로 사상 최대규모다. 경상수지는 83개월째 흑자다.
그러나 이런 지표를 들어 환율 급등 원인을 일시적 요인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는 지적이 전문가들 사이에서 제기된다.
지난달 1일부터 이달 8일까지 한 달 남짓 사이에 원화 가치는 2.9% 하락했다. 경제 규모가 큰 신흥 10개국 중 터키·아르헨티나에 이어 3번째로 낙폭이 컸다.
특히 무역갈등의 당사국인 중국 위안화(-1.0%)보다도 원화의 낙폭이 큰 만큼, 환율 급등에는 다른 요인도 섞여 있다는 논리다.
LG경제연구원 이근태 연구위원은 "한국 경제의 펀더멘털은 외채나 외화유동성 등 안정성이 견고하지만, 수출과 투자 등 성장성 측면에서 악화하는 게 문제"라고 진단했다.
저출산에 따른 생산가능인구 감소, 수출 둔화와 투자 부진 등으로 한국 경제에 대한 장기 전망이 어두워졌고, 올해 1분기 '마이너스 성장'으로 이런 전망이 힘을 얻으면서 원화 가치가 한 단계 낮아졌다고 이 연구위원은 설명했다.
연세대학교 성태윤 교수는 "최근 무역갈등 국면에서 한국이 타격을 심하게 입는 이유는, 중국의 대미 수출품 중간재를 한국이 수출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우리 기업의 장기 수익성이 나빠지고 상품의 국제 경쟁력이 하락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성 교수는 "환율이 그동안 안정적이었던 것은 반도체 수출이 버텨준 덕이었다"며 "수십조원씩 벌던 반도체가 약해지자 구조적 문제들이 하나둘 불거지는 것"이라고 했다.
외환 당국은 대내외 여건상 환율 상승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지만, 그 속도가 가파르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변동폭이 지나칠 경우 시장 개입에 나설 가능성도 엿보인다. 미국은 한국을 '환율 관찰대상국' 명단에서 제외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블룸버그통신이 지난 9일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한 바 있다.
익명을 요구한 당국자는 "환율의 방향보다 속도에 신경을 쓰는데, 최근 속도가 조금 빠른 것 같아 걱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