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을 무시하고 미국과 영국이 강행한 이라크전을 계기로 유럽 및 중동 지역에서 미국 중심의 기존 세계질서가 빠르게 재편될 조짐을 보이기 시작해 주목된다.
26일(현지시간) AP통신의 브뤼셀발 기사에 따르면, 유럽연합(EU)의 로마노 프로디 집행위원장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프랑스, 독일, 벨기에 등의 이라크전 반대 입장표명을 높게 평가한 뒤 "유럽이 스스로의 안전보장을 위해 미국에 필적할 수 있지 않으면 (유럽이) 세계에서 진정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라며 미국이 주도하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 의존하지 않는 EU 독자의 군사력 강화를 촉구했다.
프로디 집행위원장은 이라크전과 관련, "이라크 위기는 우리에게 새로운 십자로를 가져온 게 분명하다"며 "우리는 다른 길을 택해야 한다"고 말했다.
프로디는 4월말 프랑스, 독일, 벨기에 등과 함께 유럽정상회담을 열어 유럽연합의 독자적 군사적 강화 방안을 협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프로디 집행위원장은 96~98년 이탈리아 총리를 역임하면서 열악한 국가재정 문제를 적극적으로 풀은 중도좌파 정치인으로, 지난 2000년부터 유럽연합 집행위원장직을 맡고 있다.
이같은 프로디의 EU 독자의 군사력 강화 주장은 최근 이라크전 지지여부를 둘러싼 갈등의 결과 미국이 독일에 주둔중인 미군을 대거 철수시키는 방안을 추진하는 과정에 나온 것이어서, 향후 미국이 주도하는 NATO 중심의 유럽 군사질서에 커다란 변화를 예고하는 신호탄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라크전이 진행중인 중동지역에서도 미국 중심의 세력질서에 변화가 예고되고 있다.
중동의 대표적 친미국가인 사우디 아라비아의 사우드 외무장관은 26일 외국기자단과의 회견에서 미국-영국군의 이라크 공격이 장기화하거나 이라크 시민이 대량으로 사망하는 사태가 발생할 경우 미국과의 오랜 동맹관계를 재고하겠다고 경고했다.
그는 "(동맹) 관계는 지금까지는 건전하다고 하겠다. 그러나 전쟁이 동맹관계에 기여하는 것이 없고 전쟁이 장기화하면 동맹관계를 악화시킬 게 분명하다. 그런 까닭에 우리는 전쟁의 종결에 대단히 큰 관심을 갖고 있다"며 미국에 대해 전쟁 조기종식을 촉구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