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날 전국여성농민총연합 소속 이장·부녀회장단 20여 명은 "민족 최대의 명절인 설을 열흘 앞두고 있지만, 지난해 여름부터 시작된 쌀값 폭락으로 설을 맞이하는 농민들의 심정을 참담하기만 하다"며 "전국 150만 명의 여성 농민이 쌀값 보장과 쌀 대북 지원을 요구하며 추운 겨울 여의도 노숙 농성과 삭발식까지 진행했지만, 정부는 여전히 뚜렷한 대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전국여성농민총연합 김경순 회장은 "지금도 전국의 시·군청 앞마당에는 쌀값 보장을 요구하는 농민들의 나락이 그대로 쌓여있고, 충청남도와 경상남도의 농민들은 쌀 직불금 지원 조례 제정을 위해 장날마다 서명을 받고 있다"며 "이렇듯 각지에서 농민들의 시름이 커져만 가는데, 정부의 쌀값 대란에 대한 임시방편적인 대처에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 여성 농민들이 쌀값 폭락에 대한 정부의 대책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프레시안(선명수) |
농민들이 지난해에 이어 쌀값 문제의 해결을 재차 촉구하는 까닭은 생산 비용을 훨씬 밑도는 쌀값 때문이다. 지난해 가을 산지 쌀값은 백미 80킬로그램 한 가마에 12만 원으로 2008년에 비해 최대 20퍼센트 가까이 하락했으며, 이는 백미 한 가마의 최저 생산 비용인 21만 원에 크게 못 미치는 가격이다.
농협은 이태째 풍작이 예상되자 재고미를 싼 값에 방출했지만, 지난해 말 재고량은 2008년보다 25퍼센트 늘어난 82만 톤에 이르렀다. 여기에 쌀 관세화(개방화) 유보의 대가로 매년 의무적으로 수입해야 하는 쌀 최소시장접근(MMA) 물량 역시 2005년 23만 톤에서 2008년 29만 톤으로 급격히 늘어난 탓에, 쌀값 하락의 주요인이 되고 있다.
이에 농민들은 재고량 증가에 따른 공급 과잉을 쌀값 폭락의 근본 원인으로 보고, 정부에 대북 쌀 지원 법제화를 통한 쌀값 문제 해결을 요구하고 있다. 이날 전국여성농민총연합 김경순 회장은 "적어도 올 여름이 시작될 때까지 창고에 쌓여있는 재고 물량을 줄이지 않으면 지난해보다 더 심각한 사태가 발생할 것"이라며 "쌀 재고 물량 해소를 위해 정부는 대북 쌀 지원을 재개하고 저소득층에 대한 쌀 현물 지원을 차상위 계층까지 확대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전라북도 김제시 용지면 모산마을 이장 강다복 씨 역시 "쌀값은 매년 떨어지지만, 생산비는 꾸준히 올라 더 이상 농사짓기 힘든 상황"이라며 "쌀값 하락을 막기 위해 그나마 해결 통로가 됐던 대북 쌀 지원을 재개해야 한다"고 말했다.
MB "쌀값 낮춰 소비 촉진" 발언에 농민들 "농사짓지 말란 얘기냐"
한편, 이명박 대통령은 이날 오전에 열린 제45차 비상경제대책회의에서 "정부가 쌀을 싸게 공급하는 방법을 찾아봐야 한다"면서 "그게 소비를 촉진하는 길"이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정부가 (비축미를) 3년간 보관했다가 싸게 내놓는데, 미리 내놓으면 되지 않느냐"며 "보관료를 생각하면 더 경쟁력이 있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 대통령은 취임 직후인 지난 2008년 3월 5일 첫 수석비서관 회의를 주재하면서도 "연간 쌀 보관료가 6000억 원이나 되는데, 이런 보관 비용을 감안하면 묵은 쌀값을 낮춰 기회비용의 개념으로 처리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지적하는 등, 쌀 재고 문제에 대해 여러 차례 언급했었다.
쌀 소비 촉진을 강조하는 대통령의 이 같은 발언에 대해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김황경산 정책국장은 "쌀값을 낮춘다고 소비가 급작스럽게 늘어나는 것도 아닌데, 정부는 근본적인 대책없이 소비 촉진이라는 임시방편적인 정책만을 되풀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황경산 국장은 이어서 "정부는 항상 쌀의 가격 경쟁력만을 강조하는데, 농민들의 쌀 생산비를 염두해 두지 않고 가격만 낮추라는 것은 결국 농민들이 농사를 포기하란 얘기와 마찬가지"라며 "이명박 정부가 기업 중심으로 농업을 재편하려는 '농업 선진화'의 일환으로 이런 정책을 반복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고 꼬집었다.
한편, 이날 이 대통령의 발언 직후 정부는 묵은 쌀 40만 톤을 사실상 반값인 밀가루 가격으로 쌀 가공 식품업체에 공급하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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