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살균제참사전국네트워크(이하 가습기넷)가 종전의 피해자 판정 기준을 철회하고, 모든 가습기 살균제 사용자를 피해자로 인정하라고 정부에 요구했다.
지난 25일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고 조덕진 씨가 사망했으나,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로 인정받지 못한 데 따른 문제 해결을 촉구하기 위해서다.
가습기넷에 따르면 조 씨는 지난 2007년부터 2010년까지 매일 옥시싹싹 뉴가습기당번을 사용했다. 2016년 간질성 폐렴과 폐 섬유화 진단을 받았으나,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로 인정받지 못해 정부의 어떤 지원도 받지 못했다.
조 씨 일가족이 가습기 문제로 추정되는 피해로 고통 받았다. 같은 제품을 사용한 조 씨의 어머니도 2012년 간질성 폐렴으로 사망했다. 조 씨 부친 조오섭 씨 역시 현재 천식 투병 중이다.
29일 가습기넷은 청와대 앞에서 조 씨 장례예배를 연 후 서울 영등포구 옥시레킷벤키저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이 같이 밝혔다.
가습기넷은 "잘못된 판정 기준으로 인해 아직 상당수 피해자가 피해자로 인정받지 못하고, 가해 기업은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며 "2017년 문재인 대통령이 피해자 15명을 청와대로 초대해 공식 사과하고 문제 해결을 약속했으나, 그간 달라진 게 무엇이냐"고 정부를 질타했다.
조 씨의 딸 조은해 씨는 "엄연한 피해자가 존재함에도 국가는 피해자 등급을 나눠 '당신은 피해자가 아니'라고 정하고 있다"며 "왜 피해자가 피해를 보상받기 위해 이토록 고통받아야 하느냐"고 호소했다.
기자회견에 참석한 조 씨의 부친 조오섭 씨는 "정부 구제도 없고 기업 보상도 없어 남은 어린아이 셋을 책임질 사람이 아무도 없다"며 "어떻게 국민이 정부를 믿고 따를 수 있겠느냐"고 울분을 터뜨렸다.
가습기넷은 옥시를 상대로도 피해자와 유가족에게 진심 어린 사과를 하고, 책임을 보여줄 수 있는 배상을 하라고 강조했다. 옥시는 674억 원의 피해 구제 분담금을 냈으나, 가습기넷은 구제와 배상은 전혀 다른 문제라는 입장이다.
가습기넷은 또 이 같은 참사를 일으킨 책임을 지고 옥시가 한국 사업을 접어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아직 정확한 피해자 총 규모조차 집계가 어려운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참사 사건은 한국 역사상 최악의 화학물 참사다. 사망자 대부분이 산모와 영유아였다는 점을 봐도 그렇다.
정부는 지난 8년의 조사 결과 전국에서 약 6000명이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피해를 입었다고 밝혔으나, 가습기넷 등 참사 피해자들은 정부 발표 수치는 빙산의 일각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2017년 국립환경과학원 조사에 따르면 국민 400만 명이 가습기 살균제에 노출된 바 있고, 그 중 56만 명이 건강에 피해를 입었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정부에 접수된 피해 신고 건수는 6384건이다.
피해 신고를 했다손 쳐도 정부 판정 기준으로 직접 피해를 입지 않은 이로 등록됐다면 어떤 구제도 받지 못한다는 점은 그간 피해자 단체가 개선이 필요하다고 줄곧 요구한 바 있다. 조 씨의 경우 환경부로부터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폐 손상 가능성 거의 없음(4단계)' 판정을 받아 정부 지원을 받지 못했으나 사망에 이르렀다.
아직 제대로 된 피해자 구제 방안이 나오지 않으면서, 피해자들 상당수는 이중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
가습기살균제사건과 4·16 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가 지난 달 14일 발표한 가습기 살균제 참사 피해가정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피해자의 66%가 지속되는 만성적 울분 상태에 처했고, 그 가운데 절반은 심각한 울분 상태였다.
피해자들의 27.6%는 자살을 생각했으며, 11.0%는 자살을 시도했다. 일반 인구의 각각 1.5배, 4.5배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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