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6> 불한당들의 시대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6> 불한당들의 시대

그림소설 <불한당들의 시대> 제1부 이야기의 서막 ➅

이우학교 미술교사이기도 한 노길상 작가의 픽션 <불한당들의 시대>를 연재합니다. <불한당들의 시대>는 7세기 경의 한반도 역사를 극화(劇畫:그림이야기) 형식의 판타지 소설로 창작한 것입니다. 부석사의 연기 설화를 바탕으로 의상과 선묘, 그리고 두 사람과 관계된 실존 또는 가상의 인물들 사이에 벌어지는 이야기입니다.(편집자)



7. 길달문(吉達門)


왕은 혼인을 서둘렀다. 복승(福勝)의 딸 복힐구(福肹口)를 스스로 선택했다. 복승은 귀족 출신이었으나, 다른 왕족과 대원신통과는 소원한 인물이었다. 혼인은 왕이 직접 주관하였고, 비형랑이 지체 없이 왕명을 수행했다. 모든 일은 일사천리였다.

왕은 중악(中岳)의 숲에서 이리들에게 둘러싸였던 일을 자주 이야기했다. 비형랑과 기달, 그리고 두두리들이 아니었다면 이리 밥이 되었을 것이라고 농담처럼 말했다. 칠흑 같은 밤의 숲에서 비형랑의 활은 백발백중이었고 기달의 칼은 어김없이 이리들의 목을 갈랐다. 이리가 많다고 하여 낭산(狼山)이라 불리던 중악엔 그 후로 한동안 이리의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왕은 기달에게도 집사(執事) 벼슬을 제수(除授)했다. 왕은 기달에게 관복을 하사하였으나, 기달은 끝끝내 여우 거죽을 벗지 않았다. 왕은 그 연유를 물었으나 비형랑이 대신 답했다.

갓난이로 산속에 버려졌던 기달을 암여우가 제 새끼처럼 품었다. 여우는 기달에게 젖을 먹였고, 부드러운 가슴 털로 감쌌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는 알 수 없겠으나, 한동안 기달은 암여우의 품속에서 연명하였다.

어느 날, 여우 사냥을 나선 두두리들은 웅크린 채 꼼짝도 하지 않는 여우를 발견했다. 그물에 걸린 여우의 품속에는 사내아이가 잠들어 있었다. 괴이한 일이었다. 늙은 두두리들은 변고(變故)의 조짐인지 길사(吉事)의 조짐인지 알 수 없으나, 어쨌든 모든 일은 산신령님의 뜻일 것이라 말했다. 단, 갓난이의 이름을 기달(吉達)로 지어 액막이를 하자고 제안했다. 여우는 기달의 곁을 떠나지 않았고 기달 또한 그랬다.

겨울마다 두두리들은 여우의 덕을 보았다. 여우는 용케도 죽은 짐승을 눈 속에서 찾아내고선 기달 앞으로 물어 날랐다. 혹독한 골산의 겨울을 그나마 여우가 캐낸 얼어붙은 고깃점으로 겨우 살아남을 수 있었다. 두두리들은 액막이의 효과라고 여겼다. 그러나, 여우의 수명은 사람에 비하여 턱없이 짧았다. 기달이 소년기에 접어들자 여우는 걸음도 제대로 걷지 못하더니 이내 죽었다. 기달은 친어미가 죽은 것처럼 몇 날 며칠을 서럽게 울었다. 그때부터 기달은 죽은 어미의 거죽을 둘러쓰고 한 시도 벗는 법이 없었다.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듣고 있던 왕은 웃으며 말했다.

"하하하~ 기달의 효심이 갸륵하다!"

여우가 기달인지 기달이 여우인지 구분이 어려울 정도로 한 몸처럼 연결되어 있었다. 그 이후로 왕은 기달을 볼 때마다 잔잔한 미소를 뗬고, 다만 골산에서 짐승처럼 자라난 비형랑과 기달이 좀 더 사람 구실을 할 수 있는 인사(人士)로 거듭나기를 희망했다. 비형랑이 사리를 분별하는 명석함과 더불어 침중한 태도가 두드러졌다면, 기달은 그렇지 않았다. 사인과 내관들을 위협하거나 행패를 부렸고, 나인과 시녀들에게 이상한 연기를 피워 까무러치게 만들거나 겁탈하기도 하였다. 기달의 행각은 종잡을 수가 없었다.

급기야, 참다못한 대신들이 왕에게 몰려갔다. 그들은 비형랑과 기달을 제거할 수 있는 구실을 찾는데 혈안이었다. 평소 강직한 성격의 각간(角干) 임종(林宗)이 앞으로 나섰다. 임종은 기달의 무도한 만행을 낱낱이 고하며, 왕이 더 이상 비형랑과 기달을 비호하는 것은 선대(先代)의 망극한 은혜에 누를 끼치는 것이라 일갈했다. 뒤따른 문무대신들이 맞장구를 쳤다. 사도태후의 치하에선 숨죽이며 일신의 안위에만 급급하던 대신들이었다.

'대신들이 언제부터 나라 걱정에 열성을 보였던가! 할미 태후와 나를 비교하여 조롱하려는 것인가? 이는 필시 나를 만만히 보고 업신여기려 함이 분명하다.'
생각이 이에 미치자 왕은 임종을 향해 고쳐 앉았다.

"각간께서 말하는 선대는 무엇입니까? 태후마마를 가리키는 것입니까?"

"선대가 어찌 사도태후 한분만을 일컬음이겠습니까? 아주 오래전부터 제왕께서 지켜 오신 격식과 품격을 말하는 것입니다. 자고로 골품(骨品)에 따라 벼슬이 나누어졌거늘, 작금에 이르러 문란함이 도를 지나칩니다. 이것은 나라의 근간은 뒤흔드는 중차대한 일입니다."

자신의 뒤로 병풍처럼 도열한 대신들의 기세 때문인지 임종은 거침이 없었다. 대신들의 얼굴을 번갈아 살피던 왕도 물러서지 않았다.

"비형랑은 선대 진지왕의 아들이오. 말하자면 짐(朕)의 사촌이 된다는 말입니다. 집사라는 벼슬이 과하다고는 생각되지 않습니다."

"왕께서는 어찌하여 세간에 떠도는 풍문을 쫓으십니까? 그것은 설화(說話)입니다. 도화녀가 멋대로 지어낸 요사한 망설일 뿐입니다."
각간을 비롯한 대신들은 골품도 없는 미천한 잡배들이 정사를 어지럽힌다고 기광을 떨었다. 임종은 비형랑과 기달의 관직을 박탈하고 즉시 출궁 시킬 것과, 두두리들을 골산으로 내쫓을 것을 요구하였다. 왕은 거간(拒諫)도 납언(納言)도 하지 않았다. 다만 묵묵부답으로 일관했고, 대신들은 그런 왕을 더욱 만만히 여겼다. 임종을 위시한 대신들의 아우성은 연일 계속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신원사(神元寺) 앞으로 흐르는 황천(黃川)은 물살이 거셌다. 폭풍우에 파손된 다리 때문에 승려와 국인(國人)들이 고립된 지 오래였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무너진 다리를 이을 엄두를 못 냈다. 황천의 물살에 휩쓸리면 온데 긁혀 훼손된 시체가 남천(南川)에서 떠올랐다.

왕의 특명을 받은 비형랑과 기달, 그리고 두두리들은 황천의 다리를 보수했다. 위태롭던 나무다리를 헐고 암수 돌이 정확하게 맞물린 석교가 하룻밤 사이에 이어졌다.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고, 누구도 감히 나서지 못하던 위험한 일이었다. 비형랑과 기달의 무리들은 밤새 횃불을 밝혀 놓고 무거운 석물을 이어 붙였다. 골산에서 단련된 두두리들의 힘은 상상을 초월했다. 신원사에 고립되었던 승려들과 국인들이 두두리들을 부둥켜안고 환호성을 질렀다. 이 소문은 삽시간에 서라벌 전역으로 퍼졌다. 하루 밤에 가설된 다리는 귀신 다리, 즉 귀교(鬼橋)라 불렸고, 구경 나온 이들로 장사진을 이루었다. 급기야, 귀교 주변에는 장사치들이 자리를 잡기 시작하더니 춘양교(春陽橋)와 월정교(月淨橋)처럼 시장이 들어섰다. 시장을 오가는 모든 국인들은 비형랑과 기달, 그리고 두두리들의 공적을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했다. 더불어, 영흥사의 불을 끈 것도, 천경림으로 번지는 불길을 막은 것도, 사도태후를 구출하는데도 비형랑과 기달 무리의 공이 컸다는 사실이 다시 한 번 회자되었다. 날마다 시중(市中)에는 비형랑과 기달을 주인공으로 하는 풍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고, 급기야 세간의 영웅으로 떠받들리기에 이르렀다.

일이 이렇게 되자, 임종과 대신들의 입장이 궁색해졌다. 대신들은 슬그머니 꽁무니를 뺐고, 임종은 홀로 왕과 대면해야 했다. 왕이 임종에게 말했다.

"이제 비형랑과 기달의 무리를 골산으로 내쫓긴 어렵게 되었습니다. 국인들이 용납치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각간께서는 뜻을 굽히지 않겠습니까?"

임종은 왕이 못마땅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사도태후와 새주 미실의 꼭두각시가 아니었던가. 우연한 화재와 실종 사건이 아니었다면 여인네들의 치마폭에서 숨죽이며 눈치나 보았을 왕이었다. 그랬던 인물이 이제 왕 노릇을 한답시고 같잖은 위엄을 세우려 하고, 측근이랍시고 근본도 없는 불한당 같은 패거리들을 끼고 있는 모습이라니!

임종은 무엇보다 나라의 안위가 걱정이었다. 호시탐탐 배후를 노리고 있는 백제국이 눈에 쌍불을 켜고 있는데, 나라가 어찌 되려고 이러는 것인가! 말하고 있는 왕의 입술이 마치 물고기처럼 입술만 벙긋벙긋 하였다. 오늘 아침엔 나정(蘿井:혁거세의 탄강지)의 신궁(神宮)에 나아가 나라의 시조신(始祖神) 앞에서 맹세까지 하고 나선 걸음이었다.

'좌우지간 오늘은 끝장을 보고 말 것이다. 내가 왕의 망동(妄動)을 바로잡고 말 것이다...'라며 다짐에 다짐을 거듭하는 순간, 왕의 말이 귓속을 쑥 비집고 들어왔다.

"공께서는 대를 이을 아들이 없는 것으로 아는데 기달을 양자로 들이심이 어떻습니까? 아직 젊은 혈기를 주체하지 못하여 좌충우돌입니다만, 그 충성스러움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습니다. 신원사 다리를 보수한 것을 보십시오."

임종은 사레들린 기침을 참으며 말을 더듬었다.

"신은 오직... 나라의 안위와... 끝장을..."

임종은 퇴궐 길에 올랐다. 기달이 뒤를 따랐다. 임종은 넋이 빠진 얼굴이었고, 기달은 희희낙락 했다. 왕이 임종의 후사(後嗣)를 염려하여 기달을 양자로 두게 하였다는 소식이 삽시간에 퍼졌다. 국인들은 신하의 시름을 걱정하는 자애로운 임금이라며 칭송했다. 왕이 아끼는 충신 기달을 양자로 받아들여 집안의 경사가 났다는 말도 있었다. 임종은 이때부터 말더듬증이 걸렸고, 임종의 딸들이 알몸으로 대로에서 미쳐 날뛰는 일이 다반사가 된 것도 이때부터였다. 기달은 자신과 무관한 일이나 심심한 책임감을 느낀다며 임종의 집에서 나와 흥륜사로 거처를 옮겼다. 기달은 흥륜사의 남쪽 누문(樓門)을 세우는 일에 매진했다. 신원사의 다리처럼 흥륜사 남문도 순식간에 세워졌다.

세간에는 기달과 두두리들은 귀신의 종자들이 분명하다며 두려워하는 자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들이 본색을 드러낸 것은 준공식이 있고 나서부터였다.


국인들은 기달과 두두리들의 두 번째 이적(異蹟)이라며 흥륜사 남문으로 모여들었다. 왕도 친히 행차하여 기달과 두두리들을 치하했다.

"기달은 짐의 충성스러운 신하로 그간에 쌓인 정은 지극히 돈독하다. 비록 출생은 미미하였으나, 그 진실된 마음은 어느 누구와 견주어도 부족함이 없다. 하여, 이제부터 기달과 비형랑은 짐의 신하일 뿐만 아니라 친우(親友)의 관계를 허하노니, 앞으로 문무대신들은 대우에 소홀함이 없도록 하라."

왕은 대신들과 국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기달과 비형랑의 손을 번쩍 들어 올렸다. 고목나무에 매미가 매달리듯 기달과 비형랑이 발버둥 쳤으나, 국인들은 웃음소리와 함께 함성과 박수를 쏟아냈다. 한껏 고무된 두두리들도 서로 부둥켜안고 기뻐했다. 늦은 밤까지 두두리들의 흥겨운 춤사위와 노랫소리는 그칠 줄 몰랐다.

다음 날, 기달은 누문 머리에 크게 걸린 흥륜사 현판을 떼고 '길달문(吉達門)'이라고 쓴 편액(扁額)을 걸어 올렸다. 왕이 하사한 글씨였다. 이른 아침부터 문을 통과하려는 행인들이 길게 줄을 섰다. 기달이 문세(門稅)를 내야만 통과할 수 있다고 알렸다. 난데없는 통보에 어안이 벙벙한 행인들은 오던 길을 되돌아가기도 했고, 어쩔 수 없이 통행료를 지불하기도 했다. 흥륜사의 승려들도 일명 '길달세(吉達稅)'를 지불해야만 했다. 흥륜사의 승려들은 왕의 권세를 등에 없고 기달이 오만방자해졌다고 항의했다. 참다못한 흥륜사의 주지가 사찰에 속한 문을 사사롭게 이용하느냐고 따졌으나, 돌아온 것은 치도곤(治盜棍)이었다. 어느 누구도 문세(門稅)를 내지 않고서는 길달문을 통과할 수 없었다. 대신마저도 예외가 없었다. 왕이 직접 기달을 친우라 표명한 마당에 기달을 견제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기달의 행패는 점점 더 심해졌다. 아녀자를 희롱하거나 겁탈하는 일도 있었다. 기달의 난동이 이와 같은데도 대신들은 숨죽이기만 했다. 임종의 집안이 풍비박산 나는 것을 똑똑히 지켜봤던 터라 어느 누구도 선뜻 나서지 못했다.

임종의 일로 신하들은 젊은 왕의 실체에 대해 어렴풋하게나마 감지할 수 있었다. 모든 일은 결국 왕의 뜻대로 된다는 것과, 일천(日淺)한 왕이라 하여 깔보았다간 멸문지화를 당할 수도 있다는 것을 조금씩 알아차리기 시작했다. 이 사실은 왕의 곁에서 모든 일을 지켜봤던 비형랑에게 더더욱 뚜렷하게 각인되었다. 허나, 왕의 본모습을 알았다 하더라도 그 진의를 종잡기는 쉽지 않았다. 왕의 계획이나 목적은 모든 일이 끝난 뒤, 관련된 원인과 결과를 유추한 이후에야 선명해지는 것이었다.

그럴 때마다 비형랑은 왕의 주도면밀함에 몸서리를 쳤다. 비형랑은 몰래 도망하여 다시 골산으로 돌아갈 것인지, 아니면 불안하고 위태하지만 왕의 곁에서 살아남을 것인지를 고민했다. 만약, 월성에서 살아남는 길을 선택한다면 왕과 관련된 모든 일의 인과(因果)를 깊이 고민해야 했다. 비형랑은 엄두가 나지 않았다.


왕이 비형랑을 급하게 찾았다. 내관들의 부름에 비형랑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왕은 깊은 고민에 빠져있었다. 순간 비형랑의 추리는 숨 가쁘게 돌아갔다.

'왕의 표정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왕은 무엇을 감추고 무엇을 드러내고 있는가? 왕은 손끝 하나도 허투루 움직이지 않는다!'

비형랑은 긴장한 나머지 선체로 뻣뻣하게 굳어버렸다. 그 모습이 왕에게는 졸고 있는 모습으로 보였을 것이다.

"너는 졸고 있는 것이냐? 시름이 깊어 하소연이라도 하려 했더니 너는 고작 잠이나 자고 있다? 크하하하!"

왕은 비형랑이 안절부절 하는 모습을 보고 크게 웃었다.

"네가 나의 시름을 잠시 잊게 하긴 하였다. 하하하!"

얼굴이 붉어질 정도로 웃던 왕은 대뜸 손바닥을 뻗어 보였다. 난데없는 상황에 비형랑은 몸을 움츠렸다. 눈을 동그랗게 뜬 비형랑을 향해 왕이 물었다.

"무엇이 보이느냐?"

갑작스러운 질문에 비형랑은 말을 더듬었다.

"왕... 왕께서 손... 손바닥을 보이고... 계십니다."

"손바닥 말고는 보이는 것이 없느냐?"

어리둥절 하는 비형랑이 재미있다는 듯 왕은 계속 웃으며 물음을 이어갔다.

"하하하. 질문이 잘못되었다. 그럼 이렇게 물으마. 눈에 보이는 것 말고 보이지 않는 것 말이다. 짐의 손에 응당 있어야 할 것은 무엇이고 있지 말아야 할 것은 무엇인지가 보이느냐?"

비형랑은 왕의 진의가 무엇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무슨 말씀이온지? 미천한 저로서는 왕께서 하시는 말씀을... "

왕은 자신의 손을 거두며 다시 말했다.

"너도 나의 충신이고 기달도 그러하다. 충신뿐이겠느냐, 짐의 생명을 살려준 은인이자 친우가 아니겠느냐. 엊그제만 해도 충신과 친우의 손을 잡아주던 손이었다. 이제 더 이상 그럴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그래서 묻는 말이다. 나의 손에 마땅히 쥐어져야 할 것이 무엇이겠느냐? 친우의 손이겠느냐 아니면..."

왕은 씁쓸한 미소를 흘리며 말을 흐렸다. 비형랑은 궁리하고 또 궁리했다. 왕의 손에 당연히 쥐어져야 할 것은 무엇인가? 왕의 손바닥에 응당 있어야 할 것이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왕은 몰라서 묻는 것이 아니다. 왕의 속내를 알아맞히기를 바랄 뿐이다.

그날 이후로 비형랑은 한동안 두문불출했다. 이레가 지났을 즈음, 비형랑은 골산에서 입었던 옷을 다시 꺼냈다. 활집과 화살통을 등에 메고 흥륜사로 향했다. 비형랑을 태운 말은 천천히 한 걸음씩 나아갔다. 말이 내딛는 걸음마다 깊게 숙인 머리가 끄덕이며 흔들렸다. 마치 졸고 있는 것처럼.

'왕의 손에 무엇이 쥐어져야 하는가? 왕은 무엇을 움키고자 하는 것인가?'

비형랑이 말 울음소리에 깜짝 놀라 깬 것은 흥륜사 남문이 보이는 언덕에 다다랐을 때였다. 비형랑은 말을 멈춘 채 언덕에서 한참을 보냈다.

저 멀리 승려들에게 야료를 부리는 두두리들이 보였다. 기달은 누문 위에서 술상을 받아놓고 대낮부터 얼큰히 취해 있었다. 번화했던 누문 주변은 길달문이라는 현판이 걸린 이후로 행인이 뜸해졌고, 간간히 승려들만 왕래했다.

말안장에 앉아 꿈적도 않던 비형랑은 등에 맨 화살통으로 손을 뻗었다. 이윽고 활시위에 살을 걸었다. 화살은 쏜살같이 날아가 남문 누각의 기둥에 요란한 소리를 내며 박혔다. 술이 취해 코를 골던 기달이 깜짝 놀라며 고개를 쳐들었다. 비형랑이었다. 기달은 골산에서 입던 옷을 입은 비형랑이 마냥 반가웠다. 기달은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장난이 심하잖아, 비형랑! 어서 와~ 아직 술이 남았으니."

비형랑이 쏜 두 번째 화살이 기달이 쓰고 있던 여우 거죽을 비켜 맞으며 기둥에 박혔다. 히죽히죽 웃기만 하던 두두리들이 깜짝 놀라 기달을 향해 소리쳤다.

"기달, 피해! 비형랑이 너를 죽일 참이야! 어서 피해!"

기달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기달은 기둥에 박힌 화살을 뽑아 들고 언덕 위의 비형랑을 바라보았다. 비형랑은 고개를 숙이고 있을 뿐 움직이지 않다. 두두리들이 계단을 뛰어올라 기달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이번에는 일시에 쏘아 올린 십여 발의 화살이 기달과 두두리 주변으로 둔탁한 소리를 내며 박혔다. 기달과 두두리들을 향해 정확히 조준된 화살이었다. 기달은 그제야 비형랑의 화살에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비형랑 혼자서 단번에 십여 발을 쏠 수 있단 말인가? 주변에 꽂힌 화살의 끝을 살피던 기달의 표정이 순식간에 새파랗게 질렸다. 비형랑의 표식이 있는 화살은 저만치 꼽혀 있었고, 표식이 없는 화살은 기달과 두두리들을 향해 정확하게 날아든 화살이었다. 어리둥절해하는 두두리들에게 기달이 말했다.

"왕이 우리를 버렸다. 왕이 우리를 죽이려 한다. 비형랑은 왕의 뜻을 통보하고자 온 것이다."

또다시 수십여 발의 화살이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기달과 두두리 사이로 날아들었다. 비명과 함께 두두리들이 쓰러졌다. 기달은 본능적으로 몸을 날려 기둥 뒤로 몸을 숨겼다. 다급하게 기달이 소리쳤다.

"숲으로 달아나라! 숲으로 몸을 숨겨라! 이곳을 벗어나..."

그 순간, 또다시 수십여 발의 화살이 기둥에 박혔다. 화살촉에 달린 기름병의 파편이 온데 튀었다. 순식간에 불길이 기둥을 타고 오르며 검은 연기를 내뿜었다. 기름이 튀면서 불꽃이 사방으로 번졌다. 기달과 두두리들의 모습이 환하게 드러났다. 끊임없이 화살이 쏟아졌다. 두두리들의 몸에 마치 고슴도치처럼 화살이 박혔다. 기달은 분노에 휩싸여 비형랑이 서있던 언덕으로 쏜살같이 달려갔다. 그러나, 비형랑은 온데간데없고 창검으로 무장한 군사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한 기달이 미친 듯이 소리쳤다.

"비형랑 이놈! 네놈이 어찌 내게 이럴 수가 있느냐! 피를 나눈 형제와 같은 나를 죽이려 들다니! 왕의 신임이 나에게 쏠리자 시기하여 이러는 것이렸다. 왕과 나 사이를 이간질 하지 않고서야 왕이 군사를 보냈을 리 없다. 나는 왕이 시키는 일만 했다. 그런 나를 왕이 저버릴 리 없단 말이다!"

그때였다. 어디선가 날아온 화살이 기달의 등에 꽂혔다. 깜짝 놀란 두두리들이 기달을 부축 하며 일으켰다. 기달은 피를 토하며 절규했다.

"비형랑! 듣고 있나, 비형랑! 너는 이제 나의 원수다. 언젠가 다시 돌아올 것이다. 그때는 각오하고 있어야 할 것이다! 비형랑, 이 놈~"

두두리들은 기달을 끌고 숲 속으로 달음질쳤다. 군사들이 뒤를 쫓았으나 발견한 것은 기달이 쓰고 있던 여우 거죽뿐이었다. 거죽에 붉은 피가 흥건했다. 비형랑은 여우 거죽을 움켜쥐었다. 그의 손은 떨리고 있었다.


잠시 후, 어륜거(御輪車)의 바퀴소리가 들려왔다. 왕은 길달문에서 불이 났다는 소식을 듣고 급하게 행차한 것이라 했다. 국인들도 불타오르는 길달문을 보기 위해 모여들었다. 불은 탁탁 소리를 내며 거세게 타올랐다. 왕은 타다만 길달문의 현판을 집어 들었다. 왕의 표정은 비통했다. 왕은 눈물을 보이며 모여든 국인들과 승려들을 향해 말했다.

"기달은 짐에게 충성을 다하였으나 이를 믿고 국인들을 업신여기는 일이 종종 있었다. 짐에겐 한 명의 충신보다 국인들의 안위가 더 우려스러울 뿐이었으나 미처 마땅한 바를 구하지 못하였다. 이에 비형랑이 왕의 뜻에 앞서 나섰다. 비형랑은 생사고락을 같이한 친우였음에도 짐을 위해 큰 결단을 하였다. 충신은 이와 같은 것이다. 사사로운 정을 멀리하고 오직 나정(蘿井:혁거세의 탄강지)의 신궁과 국인들을 걱정하는 것. 그것이 바로 충신의 본 모습인져..."

왕은 화살이 박힌 여우 거죽을 들어 올리며 또 이렇게 말했다.

"기달이 여우귀신이란 말이 있었는데... 과연 그러하구나. 죽은 모습이 여우와 다름이 없구나!"

국인들과 승려들은 왕이 직접 여우거죽이 기달이라하니 믿지 않을 수 없었다. 국인들은 왕이 여우 거죽을 들어 올리자 반사적으로 박수와 환호성을 쳤다. 비형랑은 묵묵히 고개를 숙이고 있을 뿐이었다. 왕은 손을 뻗었다. 거대한 왕의 손이 비형랑의 손을 감쌌다.

비형랑은 여전히 왕의 손에 쥐어져야 할 것들에 대해 생각했다. 지금 왕의 손에 쥐어져 있는 자신의 손이 과연 왕이 원했던 마땅한 것인지, 아닌 것인지. 추론하여 결론에 이르기엔 아직 드러나지 않은 것이 너무나도 많았다.

병사들이 두두리들의 시체를 수습하는데도, 국인들은 그 자리에 주저앉아 꺼져가는 불길을 마냥 쳐다보고 있었다. 병사들이 무너진 길달문의 잔해를 헤집자 작은 불씨들이 일어나며 사그라들었다. 국인들은 순식간에 점멸하는 불꽃을 보며 기달의 짧디짧은 호시절(好時節)을 이야기했다. 개중에는 허망한 인생사를 회상하며 씁쓸한 입맛을 다시는 이도 있었고, 어떤 이는 아련한 추억을 회상하듯 괜한 눈물을 훔치기도 하였다.

그날 이후로 세간의 풍문에는 기달과 두두리들이 죽지 않고 다시 골산으로 돌아갔다는 말도 있었고, 깊은 숲 속의 귀신이 되었다는 말도 있었고, 자신을 배신한 비형랑에게 복수하기 위해 두두리들과 모의를 꾸미고 있을 것이란 말도 있었지만, 직접 기달과 두두리들을 목격한 이는 아무도 없었다.

또 그날 이후로, 비형랑의 저택이 자리 잡은 사량부(沙梁部)에서는 새롭게 휴행하는 노래가 있었으니... 그 노랫말은 이와 같았다.

'성스러운 임금의 혼(魂)이 아들을 낳았으니,

여기가 바로 비형랑의 집로세.

그러다 죽소~ 그러다 죽겠소~

온갖 날뛰는 귀신 무리들이여,

이곳에는 함부로 머물지 마시오.

그러다 죽소~ 그러다 죽겠소~'

저자의 아이들이 노래를 부를 때마다, 저택 담장 안에서 들려오는 불호령이 아이들을 내쫓았다.


계속...

글 그림 : 노길상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노길상

이우학교 미술교사, 작가.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