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전쟁 위기, 북핵 위기에 '한국판 엔론사태'로 불리는 SK그룹의 분식회계 사태까지 겹치면서 지난 97년 경제위기가 재연되는 게 아니냐는 두려움이 빠르게 번져가고 있다.
이런 와중에 13일 블룸버그 통신의 아시아 경제 담당칼럼니스트 윌리엄 페섹 주니어가 도쿄발 기사로 97년 외환.금융위기보다 심각한 아시아 위기의 재연 가능성을 경고해 주목된다.
***"아시아 자본시장에 대한 절망감"**
'아시아 시장에 97년 위기의 그림자가 다시 덮쳤다'는 칼럼을 통해 페섹은"아시아 금융위기가 발생한 지 거의 6년이 다된 지금 당시와 비슷한 위기감이 감돌고 있다"면서 "아직 패닉(공황) 상태까지는 아니지만 아시아의 운명이 나쁜 쪽으로 급선회하고 있다는 우려가 팽배해 있다"고 전했다.
페섹은 구체적으로 "이같은 위기감은 이라크 전쟁 가능성, 급등하는 유가, 북핵 위기 등으로 세계적인 경기침체에 이미 타격을 받은 아시아 시장을 더욱 짓누르고 있다"면서 "이같은 불확실성 요인들이 합쳐져 아시아 금융위기의 짙은 먹구름을 형성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97년 같은 위기감은 주가 하락을 떠받치기 위한 노력에서 감지될 수 있다"면서 "한국에서부터 말레이시아, 필리핀에서 일본에 이르기까지 아시아 각국 정부들은 주가를 부양하고 경제 전체를 살리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고 전했다.
페섹은 "현재 상황과 90년대말과 가장 유사한 점은 아시아 자본시장에 대한 절망감"이라면서 "6개월전 서구보다 더 빠른 성장을 하는 역동적이고 자율적인 신흥아시아 시장에 관한 이야기가 지금은 금융 위기를 회피하는 방안에 대한 논의로 바뀌었다"고 월가의 심각한 분위기를 전했다.
특히 페섹은 "97년의 그림자는 최근 동아시아 시장에서 투자자들이 급속이 빠져나가고 있다는 점에서 찾아 볼 수 있다"면서 "한국의 경우 미국의 달러가치가 하락하는 상황임에도 원화 가치가 더 곤두박질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97년에 투자자를 위협한 것은 기업 부실로 인한 위기였다면 지금은 급증하는 가계부채에 대한 우려"라고 분석했다.
***"아시아 위기가 재연되면 97년보다 더 악성일 것"**
나아가 페섹은 "아시아 위기가 재연된다면 지난 97년보다 더 악성일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 근거로 지난 97년의 경우 아시아 경제와 밀접한 관계를 가진 다른 국가들의 상황을 비교했다.
당시는 미국의 경제가 호황이었고 캐나다, 영국, 유럽 제국 등이 나름대로 경제사정이 좋았던 반면, 지금은 세계 경제를 떠받칠 '경제적 지지대'가 없다는 것이다.
페섹은 "미국도 일본도 경제상황이 좋지 않고 유럽도 허덕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면서 "아시아가 자체적인 극복 여력도 부족한 상태에서 이번 위기는'견인차가 없는 세계경제'라는 최악의 시나리오에 직면했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페섹은 "아시아가 수출 의존형 경제에서 벗어나는 나름의 성과를 거둬 미국에 대한 의존을 줄였지만 아직 충분하지 못하다"면서 "활황세인 중국 경제가 위안이 될 수 있다고 해도 아시아가 번영하기 위해서는 활발한 세계수출시장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중국 역시 수출 의존도가 갈수록 커지면서 세계경제 침체에 취약한 상태"라고 덧붙였다.
페섹은 "5년전 앨런 그린스펀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이 미국을 금융위기의 바다 한가운데에 있는 '번영의 오아시스'라고 말할 만큼 미국의 강력한 소비력과 투자가 아시아 경제회복에 기여했다"면서 "이번에는 그같은 오아시스가 없는 형국"이라고 말했다.
한 마디로 말해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97년 악몽의 재연이 결코 강 건너 불이 아니라는 게 페섹의 경고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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