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언론들의 ‘반한(反韓) 보도’가 나날이 정도를 더해가며 파문을 확산시키고 있다. 미국의 3대 방송사중 하나인 CBS TV의 간판 시사프로그램 '식스티 미니츠(60분)'가 지난 10일 '양키 고 홈'이라는 제목으로 한국에서 일고 있는 반미분위기와 관련한 20분짜리 특집물을 내보낸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미8군사령관 울먹이며 "이래도 주둔해야 하느냐?"**
이 프로그램에서는 지난해말 촛불시위때 시청 앞 광장에서 대형성조기가 찢겨 나가는 장면과 '양키 고 홈'이라고 쓴 시위대들의 피켓 등을 클로즈업하면서, 찰스 캠벨 미8군 사령관이 성조기가 불태워지기까지 한 사태가 발생한 데 대해 눈물을 글썽이며 “이래도 주둔해야 하느냐”며 울먹이는 모습까지 내보냈다.
CBS는 또 한국인들 몇 명을 모아놓고 “김정일과 부시 중 누가 더 위협적인가? 라는 질문에 대해 ”부시“라고 거침없이 답변하는 모습도 조명했다. 한국인들에게 폭행당했다는 미군은 ”내가 폭행당하기 전에 그들은 미국에 대해 욕을 퍼부었다“고 말했다.
토마스 허바드 주한 미대사도 CBS와의 인터뷰에서 "한국 젊은이들이 각종 위협에 대해 워싱턴의 정치인만큼 집중하는지 모르겠다"면서 우회적으로 최근의 반미감정에 대한 불만을 토로했다.
공중파 방송의 위력은 대단했다. 이 방송이 나간 직후 유엔 주재 한국대표부와 뉴욕 총영사관 등에 미국인들의 항의전화와 이메일이 쇄도하고 있다.
미국의 한국전쟁 참전 용사들은 “6.25 참전을 후회한다”며 흥분했고, 다른 미국인들도 “주한미군을 철수시켜야 한다” “한국 제품에 대한 불매운동을 벌이겠다” 며 노골적으로 반한감정을 드러냈다.
***본질 외면한 '짝눈 보도'**
반한적 뉘앙스의 보도를 하는 미국 언론은 CBS뿐이 아니다.
워싱턴포스트(WP)는 지난달 9일 “한국의 반미감정이 깊어지고 있다”는 기사를 내보내면서 성조기가 불태워지고 있는 사진을 웹사이트에 게재한 이후 지금까지 이 사진을 걸어놓고 있다.
WP의 당시 기사에서 29세의 한국 여성이 “미국이 떠나도 개의치 않는다. 북한이 핵무기를 원하면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미국과 다른 많은 나라들도 핵무기를 가지고 있다. 북한이 핵무기로 우리를 공격할 리 없다. 우리는 피를 나눈 하나의 민족”라고 말했다면서 “이것이 한국과 미국 사이에 놓인 간극”이라고 주장했다고 전했다.
미국의 여타 언론들도 지난해 전국을 휩쓸었던 촛불시위의 근원인 고 신효순.심미선양 압사사건에 대한 보도는 생략한 채 촛불시위때 표출된 일각의 반미 분위기를 클로즈업하는 보도로 일관하는 분위기다.
CBS 보도에 따른 파문이 국내외로 확산되자, CBS와 인터뷰를 했던 허바드 주한미대사는 "전체가 아닌 일부만을 보도했다"며 진화에 나섰다.
허바드 대사는 13일 MBC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과의 인터뷰에서 "CBS가 전체를 보여주지 못했다"며 그 근거로 "주한미군 철수에 반대하는 집회들도 한국에서 있었다"는 점을 꼽았다.
하지만 그의 해명은 CBS 보도의 일부 형평성 문제를 지적하는 수준이었지, 본질적 문제점을 지적하는 것은 아니라는 한계를 안고 있었다.
***'감성적 분노'와 '이성적 우려'**
이같은 최근 미언론의 반한 보도를 접한 국내 분위기는 '감성적 분노'와 '이성적 우려'가 교체되는 것으로 요약가능하다.
CBS 보도 등이 신효순.심미선양 압사사건으로 표출된 한국민의 오랜 울분에 대한 이해없이 미국민들의 감정을 건드리는 대목만을 클로즈업하는 일방주의적 보도로 일관하고 있는 데 대해선 '감성적 분노'가 일반적 기류를 형성하고 있다. 미언론이 마치 주인이 머슴을 힐난하는듯한 고압적 시각에서 작금의 문제를 왜곡보도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비판이다.
특히 최근 제기되고 있는 반미적 기류가 한국 특유의 현상이 아니라, 부시 정부 출범후 목격되는 '범세계적 현상'이라는 점이 간과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그러면서도 이같은 미언론의 반한적 보도가 계속될 때 억울하게 '경제적,군사적 불이익'을 입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동시에 제기되고 있다. 특히 미국시장 의존도가 높은 경제계에서 이런 우려의 소리가 많이 나오고 있다. IMF사태후 우리나라 수출입의존도가 국내총생산(GDP)의 78%에 달할 정도로 급속히 높아진 상황에서 세계최대 소비자인 미국의 일반국민과의 감정악화란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니라는 지적이다.
이와 관련, 국내외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감성적 대립의 악순환 대신 이성적 비판과 대화를 통한 대등관계 구축을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많다.
한 예로 지난해말 촛불 집회때 대형 성조기가 찟겨진 대목은 분명한 실수라는 지적이 지배적이다. 세계인들에게 감명적이었던 평화적 메시지가 가득했던 촛불시위에서 멈췄어야 한다는 비판이다. 만약 당시 대형 성조지가 찟겨지는 일이 없었다면, 일반 미국민들을 자극하는 미언론들의 반한적 보도는 불가능했으리라는 게 일반적 지적이다. 왜곡의 '빌미'를 제공했다는 지적인 것이다.
한국민의 생존과 이익을 위협하는 미국정권의 잘못된 정책에는 단호히 대응하되, 일반 미국민 모두를 자극하고 적으로 돌리는 전술적 잘못을 되풀이해선 안된다는 지적인 셈이다.
***왜곡의 빌미 제공 않는 냉철한 대응 필요**
이와 관련, 최근 한 미국 기업인의 조언은 우리에게 참고할만한, 하나의 균형잡힌 대응방식을 시사하고 있어 주목된다.
제프리 존스 주한미상공회의소(AMCHAM) 명예회장은 12일 서울 양재동 교육문화회관에서 `한국 투자환경 평가 및 과제'를 주제로 열린 KOTRA 투자아카데미에서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촛불시위가 미군철수 주장이 아니라 미군주둔을 전제로 한 소파개정 요구라는 점을 알리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존스 명예회장은 북핵사태에 대해 "미국인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것은 북한이 개발한 핵이 제3자에게 넘어가 미국으로 흘러 들어가는 것"이라며 "북한이 남한을 섣불리 공격할 수 없고 북한이 미국의 공격을 받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다는 점 등을 설명하면 외국인들이 한반도 상황을 정확히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제프리 존스는 한국에 진출 또는 투자하는 미국기업인들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암참의 대변자다. 그의 조언은 최근 급속히 악화되고 있는 한미관계가 한국에 투자한 미국기업에게도 결코 득이 되지 못한다는 판단에 따른 고민의 결과로 보인다.
우리의 주장을 당당히 알리되 상대방에게 왜곡의 빌미를 제공하지 않는 냉철한 대응이 요구되는 시점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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