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이 예정된 북한 김정은 위원장이 북중, 북러 관계 강화를 통해 미국과 벌이는 비핵화 협상 공동전선을 구축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노동신문> 등 북한 매체의 19일 보도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지난 17일 시 주석에게 보낸 서한에서 "총서기 동지는 제일 먼저 진정 어린 따뜻한 축하의 인사를 보내셨다"며 "이것은 나에 대한 총서기 동지의 더없는 신뢰와 우정의 표시가 되는 동시에 우리 당과 정부와 인민의 사회주의 위업에 대한 확고부동한 지지와 고무가 된다"고 밝혔다. 북한 최고인민회의에서 국무위원장에 재추대된 김 위원장에게 보낸 시 주석의 축전에 대한 답전 성격이라는 것이다.
김 위원장은 "우리는 1년 남짓한 기간에 네 차례나 되는 상봉과 회담을 통해 조중(북중) 관계의 새로운 장을 공동으로 펼치었으며 한 집안 식구처럼 서로 도와주고 위해주는 조중 관계의 특수성과 생활력을 내외에 뚜렷이 과시했다"고 했다.
또 "이 과정에 나와 총서기 동지는 서로 믿음을 주고받으며 의지하는 가장 진실한 동지적 관계를 맺게 되었다"며 "이는 새 시대 조중 관계의 기둥을 굳건히 떠받드는 초석으로, 조중 친선의 장성강화를 추동하는 힘 있는 원동력이 됐다"고 했다.
김 위원장은 이어 "조중 두 나라의 사회주의 위업과 조선반도의 정세 흐름이 매우 관건적인 시기에 들어선 오늘 조중 친선협조 관계를 더욱 귀중히 여기고 끊임없이 전진시켜 나가는 것은 우리들 앞에 나선 중대한 사명"이라며 "나는 총서기 동지와 맺은 동지적 의리를 변함없이 지킬 것"이라고 했다.
이처럼 김 위원장은 미국과의 비핵화 협상 국면을 "관건적인 시기"라고 규정하는 한편, 지난 4차례의 북중 정상회담에 큰 의미를 부여하고 시 주석과의 "동지적 의리"를 강조한 서한을 공개함으로써 미국에 대한 압박성 메시지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김 위원장의 답전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앞두고 공개된 점도 주목된다. 러시아 정부가 이달 하반기 김 위원장이 방문할 것이라고 공식 발표하면서 북한이 북러 관계 밀착을 대미 협상에 지렛대로 삼으려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제기되고 있다.
이는 2차 북미 정상회담 결렬 이후 김 위원장이 첫 번째 정상외교의 파트너로 러시아를 선택한 셈이어서 시 주석의 4월 답방을 예측했던 것과는 다른 행보다. 북한이 미중 무역 갈등과 얽혀 운신의 폭이 넓지 않은 중국보다 러시아 쪽과 공조 관계를 다져 대북 제재에 돌파구를 찾으려 한다는 관측과 무관치 않다.
이런 관측 속에 김 위원장이 시 주석에 보낸 친서를 통해 북중 관계 및 시 주석과의 동지적 관계를 재천명함으로써 '러시아 경도설'을 불식하는 효과도 기대한 것으로 보인다.
중국과 러시아를 향한 김 위원장의 외교 행보는 북미 비핵화 협상이 다자 관계 국면으로 접어들 가능성도 시사한다. 북미 양측이 비핵화 협상 장기화를 대비하는 와중에 북‧중‧러 공조가 구조적으로 구축되는 효과가 예상되기 때문이다.
18일 북한 권정국 외무성 미국담당 국장이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일이 될만 하다가도 폼페이오만 끼어들면 일이 꼬이고 결과물이 날아가곤 한다"며 미국 측 협상 책임자인 마이크 폼페이오 장관에 대한 교체를 요구한 점도 실무 협상에 난항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다만 북중, 북러 관계 강화가 상징적 의미는 있지만, 중국과 러시아가 국제사회 제재를 사실상 주도하는 미국에 정면으로 반기를 들 가능성은 낮다는 관측이다. 북미 협상에서 진척을 보지 못하는 한, 중국과 러시아가 북한에 줄 선물도 마땅치 않아진다는 의미다.
북러 정상회담에서 양국 정상은 유엔 안보리 대북 제재 결의로 올해 말까지 본국으로 귀환해야 하는 러시아 내 북한 노동자 문제 처리 방안 등을 논의할 것으로 보이지만, 대북 제재 정책 반대라는 원론적 입장을 천명하는 것 외에 획기적인 제재 돌파 방안을 도출하기는 어려울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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