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제3부(재판장 송진훈, 변재승 대법관)가 지난 1월24일 경실련, 참여연대, 민변, 천주교 인권위원회,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등 5개 시민단체가 월간 <한국논단> 이도형(70) 발행인 등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발한 사건에 대해 원고승소 판결을 내렸다고 참여연대가 6일 밝혔다.
극우진영의 대표적 기관지 격인 <한국논단>에 또한차례 사법부의 엄한 심판이 내려진 것이다.
***<한국논단>, "시민단체들, 재벌 약점을 미끼로 돈을 끍어쓴다"**
<한국논단> 사건은 1997년 말경 제15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열린 후보초청 토론회에서 패널로 참석한 월간 <한국논단>의 이도형 발행인이 당시 이회창 신한국당 대통령후보에게 다음과 같은 악성 질문을 던지면서 초래됐다.
"그런데 제가 볼 때에는 시민단체가 전체 시민이나 국민을 위해 봉사하고 공헌하는 것보다는 상당히 위협을 주고, 어떤 특정세력에 대해 반대를 하고 심지어는 폭력적인 위협을 하고 있습니다. (중략) 이 사람들이 도대체 무슨 돈을 가지고 그렇게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지, 일설에 의하면 재벌이라든가 기업체에서 약점을 미끼로 해서 돈을 긁어 쓴다는 말도 있습니다."
이에 경실련 등 5개 단체는 이도형을 대상으로 10억원의 명예훼손 소송을 냈고, 법원은 이에 1심과 2심에서 모두 이씨에게 각 단체에 2천만원씩 도합 1억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이도형은 이에 불복, 대법원에 상고를 냈으나 대법원은 이도형에게 패소 최종판결을 내린 것이다.
재판부는 "언론의 보도에 의한 명예훼손이 성립하려면, 피해자의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킬만한 구체적인 사실의 적시가 있어야 하는 데 여기서 말하는 사실의 적시란 반드시 사실을 직접적으로 표현한 경우에 한정할 것은 아니다. 간접적이고 우회적인 표현에 의하더라도 그 표현의 전 취지에 비추어 그와 같은 사실의 존재를 암시하고 또 이로써 특정인의 사회적 가치 내지 평가가 침해될 가능성이 있을 정도의 구체성이 있으면 족하다"고 판결이유를 밝히며 상고를 모두 기각하고 상고비용은 피고들의 부담으로 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아울러 재판부는 "원고들과 같은 시민운동단체는 업무수행의 도덕성과 공정성, 자원조달의 투명성을 그 존립의 중요기초로 하고 있는데 '기업체에서 약점을 미끼로 돈을 끍어쓴다'는 내용의 발언으로 원고들의 도덕성이나 순수성에 상당한 타격을 받게 되어 향후 활동에 재약이 예상되는 점에 비추어 볼 때 이는 피해자의 사회적 가치 내지 평가를 심히 침해하는 내용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창간이래 '매카시즘 기사' 양산해 끊임없이 물의**
대표적 극우보수잡지인 <한국논단>은 이번 사건외에도 지난 92년 창간이래 시민단체와 노동계, 학계 등을 매도하는 '매카시적 기사'를 양산, 지금까지 명예훼손 배상 누적액만 6억원을 넘을 정도로 끊임없이 물의를 일으켜 왔다.
한 예로 대법원 민사3부(주심 윤재식대법관)는 2000년 5월20일 천주교 인권위원회가 자신들을 친북 이적 세력으로 매도하는 기사 때문에 명예가 훼손됐다며 월간 <한국논단>과 발행인인 이도형씨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한국논단 등의 상고를 기각, "한국논단은 2천만원을 배상하라"는 원심판결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월간지는 신속한 보도를 필요로 하는 다른 언론 매체보다 신중하게 사실을 확인하려는 노력이 필요한데도 한국논단은 이에 상응하는 노력을 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구체적으로 "한국논단은 '천주교 인권위가 출소한 공산주의자들의 거주를 돕기 위해 거처를 주선해 줬다'거나 이를 바탕으로 '친북 이적 활동을 공공연히 전개하고 있다'고 보도했지만 이 기사의 내용은 진실이라고 볼 증거가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박노해 서경원씨 등을 석방하라는 천주교 인권위의 탄원은 양심수 문제를 인권 차원에서 건의한 것이므로 공산주의자들의 석방을 요구했다고는 볼 수 없다"며 "이를 '북한의 주장을 여과없이 수용했다'고 보도한 기사 내용은 진실성을 결여했다"고 밝혔다. 기사내용이 진실과 다르더라도 진실이라고 믿을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으면 명예훼손 책임을 지지 않을 수도 있지만 한국논단은 모 수사기관의 구체적이지 않은 정보를 기초로 기사를 썼으므로 진실이라고 믿을 만한 충분한 이유가 없었다고 재판부는 지적했다.
천주교 인권위는 한국논단이 97년 8월호에 '공산당이 활개치는 나라'라는 제목의 기사 등을 통해 인권위가 친북 이적활동을 하고 있다고 보도하자 1억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내 1심과 항소심에서 모두 승소했다.
또 지난 2001년 2월26일 서울지법 민사합의25부(재판장 안영률 부장판사)는 이장희 외대교수와 경실련 통일협회가 "자유민주체제의 우월성을 담고 있는 통일교육용 교재를 이적표현물로 보도, 명예를 훼손당했다"며 조선일보사(월간조선)와 한국논단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피고는 1억5백만원을 지급하라"며 원고승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피고들이 남한 민주주의의 우월성을 밝힌 교재내용은 제외한 채 일부 내용만 거론, 이교수가 북한체제를 마치 찬양한 것처럼 보도한 사실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이로 인해 검찰조사를 받고 오랜 재판끝에 무죄 판결을 받는 동안 원고가 고통을 받은 것에 대해서는 손해를 배상함이 마땅하다"고 덧붙였다.
이교수는 1997년 <월간조선> 7월호와 같은해 <한국논단> 9월호에서 자신이 경실련 통일협회와 공동으로 제작한 초등학생용 통일교육 교재 '나는야 통일 1세대'에 북한을 찬양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고 보도하자 소송을 냈다.
지난해 1월22일에는 대법원 1부(주심 이용우)가 "시민단체와 노동조합들을 좌익 용공세력으로 몰아 명예를 훼손했다"며 민변 등 9개 단체가 월간 한국논단과 발행인 이도형씨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 상고심에서 우선 민변과 전국언론노조 등 4개 단체에 대해 "1억8천만원을 배상하고 정정보도문을 게재하라"며 원고승소 판결을 확정했다. 이들 시민단체들은 "<한국논단>이 97년 2월호에서 `노동운동인가,노동당 운동인가'라는 제목으로 시민단체와 노조가 사회를 혼란에 빠뜨리고 정부를 전복하려 한다는 기사를 게재하는 등 세 차례에 걸쳐 명예를 훼손했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서울고법 민사9부(부장 박국수)는 이어 지난해 7월21일 나머지 인권운동사랑방·민주노총 등 5개 단체에 대해서도 "피고는 원고들에게 모두 1천5백만원을 지급하고 정정보도문을 게재하라"는 일부승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인권운동사랑방이 인터넷에 올린 '장기복역 양심수들에게 연하장을'이라는 제목의 글이 공산주의자들이 부당하게 복역한 것으로 왜곡 또는 미화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민주노총과 관련,'공산게릴라식 빨치산 전투'라고 표현한 것은 비유가 지나치고 모멸적인 언사로 언론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보호받을 수 없다"고 덧붙였다.
***이도형은 '골수 조선맨'**
문제의 <한국논단>은 지난 92년 이도형씨에 의해 창간됐다. 이도형씨는 1964년 조선일보에 입사, 1992년 논설위원을 마지막으로 퇴사할 때까지 28년간 조선일보에서 잔뼈가 굵은 철저한 '조선맨'이다.
그는 퇴사를 하면서 곧바로 <한국논단>을 창간했고, <한국논단>은 그후 <월간조선>과 함께 보수극우 진영의 양대 기관지를 자처하며 각종 매카시적 기사를 양산해왔다. 이도형은 97년 대선때에는 김대중 후보를 매도하는 기사를 양산, 3년 집행유예를 선고받기까지 했다.
그는 지난해 언론세무조사때는 언론탄압을 중단하라는 시위를 벌이기도 했고, 최근에는 북한의 NPT 탈퇴를 규탄하는 보수진영 집회를 주관하는 등 언제나 조선일보와 맥을 같이 해왔다.
김동춘 교수(성공회대.사회학)는 2001년말 계간 <사회비평> 겨울호에서 "해방이래 극우반공 세력은 백색테러와 정치폭력으로 자신의 위기에 대응했으나 90년대이후 민주화 국면에서는 '인종주의의 한국적 버전'이라 할 지역주의와 색깔론이라는 언어폭력으로 위기에 대응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김 교수는 언어폭력의 목표가 "상대방과의 대화를 차단하고 상대방을 적으로 몰아서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매장하는 것"이라며 그 언어폭력의 대표적 매체로 조선일보와 <한국논단>을 꼽았다.
그는 "조선일보와 <한국논단>은 공공성을 지닌 언론이 아니라 입지가 좁아진 극우반공주의의 정치선전지와 유사한 기능을 하고 있다"며 "1940년대 말의 서북청년단, 50년대 (일제 밀정 출신) 김창룡, 60~70년대 군부와 공안기구, 80년대 5공정권과 안기부가 했던 역할을 이어받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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