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은 그저 고답한 공간으로만 여겨졌다. 국립광주박물관을 둘러봐도 그렇고 광주시립민속박물관을 눈요기해도 그렇다. 전시해놓은 모습이나 내용들에서 별다른 감흥을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광주는 미디어아트 창의도시라 하는 데 그런 식의 접근도 없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국립광주박물관이나 광주시립민속박물관을 찾는 방문객 수가 얼마나 되는지는 잘 모르겠다. 어쩌다 한 번 가볼라치면 방문객을 구경하기 힘들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만큼 방문객이 없다는 이야기이다. 근자에 들어 기획력 있는 전시나 교육프로그램에 따라 박물관을 찾는 인구는 있는 편이다. 그렇더라도 유치원생들 단체방문 외에 얼마나 많은 외지 단체 방문이 있었는지 한 번 그 발표를 듣고 싶다.
외국여행을 다닐 때면 그 도시의 박물관을 들리는 편이다. 그 나라나 도시의 역사를 이해하고 문화인류학적인 비교문화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유럽에는 조그만 소도시에도 박물관이 있는 곳이 많다. 스페인에서는 정말 작은 도시의 박물관에 70대가 넘은 노인부부 단체관광객들이 손잡고 차분히 관람하는 모습을 보고 “왜, 우리나라는 저런 모습이 없을까?”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우리나라는 박물관이라 칭하기는 좀 그렇지만 마을개선사업을 진행하면서 ‘마을박물관’을 만든 경우가 있다. 이것이라도 많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일제강점기나 그 이후 70~80년대의 흔적들을 추억처럼 붙여놓거나 매달아놓는다. 그게 오히려 정서적으로 와 닿는다.
가까운 중국 상하이 동방명주탑 1층의 상하이역사전시관은 150여년간의 상하이 역사를 담고 있다. 6개의 전시관으로 구성된 이곳은 각종 유물과 문헌, 사진, 전시품 등이 있다. 과거 상하이 시민들의 생활생과 거리 풍경을 재현해 놓았다. 실제 인물들을 모형과 마네킹으로 재현해 볼거리가 넘쳐났다. 1900년대 초의 트롤리와 20세기 초반의 버스, 자동차 등 시대별로 다 모여 있다.
이곳의 소장품은 3만여 점에 달한다고 한다. 2~3시간 이상 걸려야 볼 수 있다. 마치 관람객이 당시의 시대 속으로 빨려들어간 듯한 느낌을 받는다. 해설사를 동반하지 않아도 이 정도 느낌이 오는 데 해설사가 있었다면 아마도 하루를 걸려야 족히 구경할 듯 싶다. 입장료가 160위안(28,000원)인데도 아깝지 않을 정도이다.
며칠 전 고흥지역 문화답사를 갔다. 그 가운데 국내 최대 분청사기 도요지인 고흥군 두원면 운대리 가마터 일대에 자리한 고흥분청문화박물관을 방문하고는 깜짝 놀랐다. 함께 간 일행들도 입이 벌어져 쉽게 다무지 못했다. 녹색을 띤 ㅁ자형 2층 건물부터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분청사기라고 생각하면 크고 작은 도자기나 깨진 도자기들이 전시되어 따분할 것 같다는 생각도 선입견에 불과했다. 전시 동선이며 전시품의 수준, 그리고 아이나 어른들도 재미있게 체험할 수 있는 반응형 미디어 공간도 이채로웠다.
분청문화박물관 바로 옆에 조정래 가족문학관이 있었다. 조종현 선생과 조정래 작가, 아내 김초혜 시인으로부터 기증받은 1,274점의 자료가 전시되어 있다. 세 사람의 삶과 작품활동, 해석 등을 담겨 있는 자료다. 전시형태가 좀 아쉽기는 했지만 서로 연계되어 방문객을 맞이하는 게 효과적이라고 느꼈다.
광주역사박물관 건립에 따른 논의가 오래 전부터 있었다. 지난 2016년 5월 한 번 정책포럼이 열린 뒤로 3년 동안 감감무소식이다. 올 연초에 이용섭 광주시장이 민선7기 문화정책 방향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품격 있는 문화도시 실현을 위한 문화정책 추진방향의 하나로 ‘문화․예술이 일상이 되는 문화향유도시’ 등 4대 목표와 ‘매력자원 활용 관광브랜드화’ 등 10대 중점과제를 선정했다”면서 광주문학관, 국악원, 역사박물관 등 아시아문화중심도시에 걸맞은 문화 인프라를 구축하겠다고 해 기대를 모은 바 있다.
그런데 광주문학관은 상당수 문인들이 장소성에 있어 광주시의 시화문화마을 부지 결정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이다. 여러 차례 회의를 하고 지역 문인들의 의견 수렴을 했겠지만 더 이상 늦출 수 없어 마지못해 동의한 것이라는 뒷이야기가 들린다.
역사박물관은 어찌 되고 있는가 궁금하다. 시립민속박물관을 개보수하여 현행 민속 위주로 된 상설전시실을 민속과 광주역사를 아우르는 방향으로 개편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설마 이 정도로 광주시가 역사박물관을 준비하는 것이라면 출발부터 무엇인가 마음에 안든다. 더욱이 디자인을 강조하는 이 시장의 의도대로라면 현재의 시립민속박물관을 개보수하는 정도로는 양에 차지 않을 텐데 말이다.
내부에 들어갈 내용도 박제형 전시를 떠나 생동감 있고 미디어아트 창의도시다운 아이디어가 팍팍 나왔으면 한다. 듣기로는 조선시대의 광주읍성을 중심으로 현대사까지 공간적 접근을 한다고 한다. 민속박물관 2층 400여평을 역사전시관 정도로 꾸민다는 것이다.
광주역사박물관은 광주의 도시 이미지와 위상을 알려주는 기준이라고 생각한다. 설마 민속박물관에 마련하는 역사전시관으로 끝나지 않길 바란다. 국립광주박물관과 광주역사박물관의 역할을 구분하여 격동기를 겪으며 광주가 용솟음쳤던 한말부터 현대사에 이르는 모습을 생동감있게 연출한 역사박물관이 들어서야 할 것이다.
광주시민부터 이곳에서 하루 종일 뒹굴며 우리의 자랑스런 역사를 배우고 자긍심을 가질 수 있는 내용이었으면 한다. 의향의 도시, 인권의 도시, 민주의 도시가 묻어나는 역사박물관이 들어서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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