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시마 인근 수산물 수입 분쟁에서, 미국이 일방적으로 일본 편을 들었다. 박근혜 정부는 분쟁에서 이기려는 노력을 스스로 접었다.
세계무역기구(WTO) 상소기구가 지난 11일 한국의 일본 후쿠시마 인근 수산물 수입 금지 조치에 대한 최종 판단을 한 뒤 드러난 사실이다.
일본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는 지난 2011년 3월에 발생했다. 2년 뒤인, 2013년 9월 한국은 후쿠시마현을 포함한 인근 8개 현에서 잡힌 28개 어종의 수산물에 대해 수입 금지 조치를 취했다. 그리고 다시 2년 뒤인 2015년 5월, 일본 정부는 한국이 수입 금지 조치를 해제하라며 WTO에 제소했다. 2심 방식 재판인데, 1심 결정은 지난해 2월에 나왔다. 일본이 이겼다. 하지만 최종심인 2심에선 한국이 이겼다.
최종심에서도 한국이 지리라는 전망이 압도적이었다. 식품 위생 관련 WTO 분쟁에서 1심 결정이 뒤집어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렇다면, 의문이 든다. 1심을 뒤집는, 몹시 이례적인 결정이 내려졌다는 것은, 최종심이 그만큼 근거가 탄탄하다는 뜻이다. 이는 1심 결정이 부실했다는 이야기다. 그렇지 않다면, 1심이 뒤집히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1심은 왜 그토록 근거가 약한 결정을 했나.
미국 "한국의 주장은 반드시 기각돼야 한다(Korea's claim must fail)" 의견서 제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 국제통상위원회 소속 송기호 변호사가 실마리를 담은 설명을 했다. 송 변호사는 15일 TBS 라디오에 출연해서 배경 설명을 했다. 송 변호사는 이날 인터뷰에서 미국이 "한국의 주장은 반드시 기각돼야 한다(Korea's claim must fail)"라는 내용이 담긴 의견서를 제출했다고 밝혔다. 이런 의견서는 1심과 최종심 모두에게 제출됐다. 이처럼 미국이 일본 편을 들었음에도, 한국이 최종 승리한 데 대해 송 변호사는 "기적"이라고 표현했다. 그를 포함한 통상 전문가 대부분이 최종심에서도 한국이 지리라고 예상했었다. 예상이 빗나간 데 대해 송 변호사는 "즐거운 마음으로 사과"한다고 밝혔다.
진짜 의문은 이 대목에서 나온다. 미국의 영향은 1심과 최종심에서 모두 작동했다. 그런데 왜 최종심과 1심 결정이 달랐나. 최종심에서 나타난 "기적"이 1심에서 벌어질 수는 없었나. 1심 재판은 2015년 5월부터 2018년 2월까지 진행됐다. 박근혜 정부 중반부터 문재인 정부 초반까지다. 1심 패소의 책임은 두 정부에 걸쳐 있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의 책임이 더 선명하다. 현 정부 임기 안에 결국 1심이 뒤집어졌다. 반면 지난 정부는 1심 패소의 주요 원인을 제공했다.
박근혜 정부가 구성한 '일본 방사능 안전관리 민간전문가위원회', 돌연 활동 중단
대표적인 사례가 '일본 방사능 안전관리 민간전문가위원회'의 갑작스런 활동 중단이다. 이 위원회는 정부 예산으로 구성됐으며, 2014~2015년 세 차례 현지 조사를 진행했다. 당시 조사 대상에는 방사능 오염수 실태뿐 아니라 후쿠시마 인근 해양 오염까지 포함돼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조사 범위가 대폭 축소됐다. 송 변호사는 "위원회 회의록을 보면 일본이 해저토, 심층수를 조사 대상에서 빼자고 요구했고, 이를 받아준 것으로 나온다"고 말했다.
이어 위원회는 2015년 6월 5일 갑작스레 활동을 중단했다. 송 변호사는 "1심 판결문을 보면 (재판부가) 왜 위원회 활동이 중단됐느냐고 문제를 제기하니까 (한국 정부가) 설명을 못했다"면서 "'민간전문가위원회는 한국 정부하고는 관계가 없다'며 어이없는 대응도 했다"고 지적했다.
위원회가 활동을 멈춘 탓에 후쿠시마 현지 조사 보고서도 나오지 못했다. 송 변호사는 "1심 판결을 보면 보고서 중단 이유가 일본이 제소했기 때문이라고 나와 있다"고 설명했다.
박근혜 정부는 출범 첫 해에 일본 후쿠시마 인근 수산물 수입을 금지했다. 하지만 뒷감당은 제대로 하지 않았다. 한국에 유리한 보고서 작성을 스스로 멈췄다. 내기로 한 보고서를 내지 않아서, 재판부의 비판을 자초했다. 이에 대해 송 변호사는 박근혜 정부 시기의 위안부 합의에 빗대 설명했다. 정부가 "국가의 역할을 포기한 것"이라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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