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전에도 광주사람들은 쌀밥을 즐겨 먹었다”
평야지역이 많고 영산강과 황룡강이 지나는 광주 인근은 농사짓기에 적합한 지역으로 벼농사를 많이 지었다.
세계적인 농경복합유적으로 알려진 광주 신창동유적의 탄화미에 대한 시민고고학차원의 학술강연회가 17일 오전 10시 광주 신창동주민센터 세미나실에서 열린다.
광주고고문물연구소(이사장 조현종 박사)는 시민이 참여하는 고고문물의 연구활동을 저변 확산시키기 위해 지난해 12월 1차 특별강좌에 이어 이번에 제2차 특별강좌인 <신창동유적과 시민고고학 2>를 마련했다.
신창동유적의 최고권위자인 고고학자 조현종 박사가 유적에서 출토된 탄화미를 토대로 민족문화의 원형질인 쌀문화와 민속, 그리고 벼농사의 기원과 전개에 관해서 설명할 예정이다.
옹관묘유적으로 널리 알려진 광주신창동유적은 1992년 발굴조사에서 우리나라 처음으로 확인된 저습지에서 두꺼운 벼껍질층이 함께 발견됐다.
조 박사는 “이 벼껍질층은 실제 최대 두께 155cm에 달해 2,000년 전의 왕겨와 벼줄기, 수초과 식물, 나뭇잎 등으로 구성된 토층 속에 압착된 상태로 있어 이 왕겨를 낟알로 환산하면 유적의 벼 총량은 500t을 상회해 세계 최고의 수준이다”고 말했다.
신창동 유적은 농구와 악기 등 경이로운 목기와 칠기, 다양한 토기류가 확인되어 국가 사적 제375호로 지정되었다.
2,000년전의 타임캡슐로 언론뿐 아니라 시민들의 각광을 받고 있는 신창동 유적은 런던(영국)에 본부를 둔 국제저습지학회에도 등재되어 세계적인 유적으로서 관심이 증대되고 있다.
이 유적은 장기간의 조사와 연구 집적에도 불구하고, 아직 전시관과 현장체험을 비롯한 시민을 위한 시설이 전무해 국내외 많은 학자를 비롯한 전문가와 시민들은 유적의 실체를 알 수 없는 형편이다.
광주고고문물연구소는 축적된 학문 자료의 대중적 확산뿐만 아니라 시민들의 문화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도록 네트워크를 강화키로 하였다.
나아가 국내외 문화유적에 대한 답사, 그리고 신창동유적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연구를 심화시키는 시민고고학의 방향을 설정하고, 향후 설립될 전시관의 기본적인 방향과 활용 등의 관련 모델도 제시할 예정이다.
조현종 박사는 국립광주박물관장을 지냈으며 신창동유적의 발굴부터 지금까지 한 분야만 전문적으로 연구해 향후 세계적인 고고학연구소의 하나로서 <신창동학연구소>로 발전시켜 나갈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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