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정상회담 이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톱 다운' 대화 재개에 긍정적 신호를 보내면서 '중재자' 역할을 맡은 문재인 대통령의 향후 행보가 주목된다. (☞관련기사 : 문정인 "5~6월 3차 북미 정상회담 두 번의 기회")
4차 남북 정상회담을 열어 트럼프 대통령의 진의와 중재 복안을 김정은 위원장에게 설명한 뒤, 이를 디딤돌 삼아 3차 북미 정상회담을 성사시키는 것이 청와대의 기본 구상이다.
이를 위해 청와대는 준비가 되는대로 북측에 특사를 보내 남북 정상회담 개최를 협의할 예정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남북 정상회담 시기에 대해 "아무것도 결정된 게 없다"면서 "북측과 협의를 통해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추진할 예정"이라고 했다.
당초 4.27 판문점 선언을 1주년이 유력한 4차 남북 정상회담 계기가 될 것이란 관측이 많았으나, 청와대는 2주밖에 남지 않은 시간적 제약 등의 이유로 5월 이후로 넘겨잡는 분위기다.
남북 정상회담이 성사되더라도 이벤트성 만남보다는 성과가 필요한 만큼, 형식이나 상징성보다 내용에 충실하겠다는 기조다. 이에 따라 의전과 행사 준비에 많은 협의가 필요한 김 위원장의 공식적인 답방보다, 지난해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성사의 밑바탕이 되었던 '원 포인트' 판문점 회담 같은 실무형 정상회담이 거론된다.
남북 정상회담 조율을 위한 대북 특사로는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서훈 국정원장이 유력하게 검토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선 임종석 전 비서실장이나 정부 최고위급 인사인 이낙연 국무총리도 언급되지만, 대북특사 경험이 있고 북미 정세와 협상 상황에 능통한 정 실장이나 서 원장이 발탁될 것이란 관측이 다수다.
정의용 실장이 오는 16일부터 예정된 문 대통령의 중앙아시아 3개국 순방에 동행하지 않기로 한 점도 이런 관측을 뒷받침한다. 청와대 관계자는 16일 "정 실장은 (순방에) 안 간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그렇다고 (정 실장이) 다른데 가는 것도 아니다"라고 확대 해석을 경계했지만, 문 대통령의 중앙아시아 순방 기간 중에도 대북특사가 파견될 가능성을 열어둔 것이다.
하지만 북한이 문 대통령의 중재자 역할에 적극적으로 호응할지는 미지수다. 김 위원장은 12일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3차 북미 정상회담에 대해 "한 번은 더 해볼 용의가 있다"면서도 "전적으로 미국이 어떤 자세에서 어떤 계산법을 가지고 나오는가에 달려있다"고 했다.
미국이 요구하는 일괄타결식 '빅딜' 모델에는 관심이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한 것으로, 영변 핵 폐기와 경제제재 해제를 맞바꾸는 단계적 해법을 수용하라는 압박이다. 이처럼 3차 북미 정상회담을 위한 문턱을 높여놓은 김 위원장이 남북 정상회담에 매력을 느끼겠냐는 회의론이 적지 않다.
다만, 북한이 대북 특사나 남북 정상회담을 거절할 경우 대화의 문을 완전히 닫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질 수 있어 남북 간 접촉은 조만간 이뤄질 것으로 관측된다. 공개되지 않은 트럼프 대통령의 메시지가 있을 수 있고, 문 대통령의 중재 구상을 직접 듣고 정세 판단을 하는 쪽이 북한 입장에서도 합리적이기 때문이다.
북한으로서도 경제 발전을 위해서는 비핵화 협상이 필수적인 데다 김 위원장이 올해까지는 기다려보겠다고 여지를 남긴 만큼, 먼저 판을 뒤엎는 무리수를 두지는 않을 것이란 관측이다.
김 위원장이 "남조선 당국은 오지랖 넓은 중재자, 촉진자 행세를 할 것이 아니라 민족의 이익을 옹호하는 당사자가 되어야 한다"고 불만을 표했으나, 현실적으로 북미 교착 국면에 타협책을 제시할 수 있는 유일한 행위자가 문 대통령이라는 점도 무시할 수 없는 현실이다.
문 대통령은 15일 열리는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 프로세스 추진에 대한 입장을 밝힐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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