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후쿠시마 일대 수산물 수입금지 조치를 둘러싼 한일 무역 분쟁에서 한국이 예상을 깨고 세계무역기구(WTO) 최종심에서 승소하자 일본 정부가 당혹해 하고 있다.
2011년 후쿠시마 원전 폭발 사고 이후 일부 어종에 대한 수입금지 조치를 하던 한국 정부는 지난 2013년 후쿠시마 인근 8개 현의 수산물 수입을 전면 금지했다.
일본은 한국 정부의 규제가 부당하다며 2015년 5월 WTO에 제소했고, 지난해 WTO 1심은 "차별에 해당한다"며 일본 측의 손을 들어줬다. 한국 정부는 국민의 먹거리 안전이 중요하다며 상소했지만, 식물.위생과 관련된 협정 분쟁에서 1심 결과가 뒤집힌 적이 한 번도 없었다는 점에서 일본 정부는 패소를 예상하지 못해 더 충격을 받고 있다.
WTO는 최종심에서 한국 정부의 수산물 수입 제한 조치가 자의적 차별에 해당하지 않고, 부당한 무역 제한도 아니라고 판단했다.
"일본산은 안전" 강조해도 소용없는 패소
이번 결정이 중요한 것은 현재 후쿠시마 일대 수산물에 대한 수입규제 국가 수십여 곳 중 가장 강력한 조치가 한국에서 이뤄지고 있어, 한국에 일단 승소해서 나머지 국가들의 규제를 풀게하려는 일본의 전략에 중대한 차질을 안겨줬기 때문이다.
게다가 아베 정권은 오는 2020년 도쿄 올림픽을 앞두고 후쿠시마 일대, 즉 도호쿠(東北) 지역을 살리겠다고 외쳐왔다. 그러나 이번 패소로 상당한 정치적 타격을 입게 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당장 오는 21일 중의원 보궐선거, 7월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 정부는 별다른 대응 방법이 없는 상황이다. WTO의 판정과 상관없이 한국 정부에 수입금지 조치를 철회하라고 계속 요구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앞으로 1심 결정에만 몇 년이나 걸릴 지 모르는 추가 제소를 검토하겠다고 하는 정도에 불과하다.
일본 정부가 뾰족한 대응방안이 없어 당혹해 할 수밖에 없는 배경에 대해 영국의 <로이터> 통신은 "이번 분쟁은 후쿠시마 일대 수산물의 방사능 오염 정도나, 소비자 보호의 적정한 수준에 대한 사실관계를 다루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WTO의 무역 규정에 대한 해석심이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관련 규정에 대해 1심은 일본 측에게 유리한 해석을 했는데, 정작 최종 해석 권한을 가진 상소기구에서는 정반대로 해석을 한 것이다. 최종심은 "1심은 식품위생에 대한 WTO 규정의 해석과 적용에 대해 실수를 했다"고 1심 판단을 뒤집었다.
일본의 대표적인 영자 일간지 <재팬타임스>는 "4년이나 끌었던 분쟁에서 WTO 최종심에 패소해 일본 정부로서는 더 이상 법적 수단이 없어졌다"고 전했다. 기껏해야 요시카와 다카모리 농림수산상 등 일본 관료들은 "일본 식품은 안전하다"는 입장만 되풀이 할 뿐이다.
<재팬타임스>는 "한국 정부는 후쿠시마 일대의 수산물이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점이 공식적으로 증명되지 않는 한 수입금지 조치는 유지될 것이라고 밝혔다"면서 "이런 상황은 2011년 대재앙으로 타격을 받은 지역의 조기 복구를 달성하려는 일본 정부에 악재로 작용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런 분석의 근거로 신문은 "WTO 최종심 결정은 한국을 넘어 다른 국가들에게도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일본 식품에 대해 수입규제를 하는 국가는 한때 53개국에 이르렀으나 그동안 일본의 압박 등으로 23개국으로 줄었다. 이와 관련, 신문은 "중국도 지난해 일본산 식품에 대한 규제를 일부 완화하는 조치를 시작했지만, 추가 완화조치에 더욱 신중해질 것이며, 지난해 국민투표로 수입금지 조치를 유지하라는 정치적 결정이 내려진 대만의 경우, 일본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조치를 유지해나갈 정당성이 더욱 강화됐다고 느낄 것"이라고 진단했다.
일본 정부는 수입금지 조치 철회를 위해 한국 정부와 협의를 계속할 것이라는 입장도 밝혔지만, 신문은 일본 정부가 바라는 결과를 얻어내기도 힘들 것으로 전망했다.
신문은 "한일관계는 '위안부' 문제에 더해, 제2차 세계대전 중 강제징용을 당한 한국인들에게 일본 기업들이 배상하라는 한국 법원 판결들이 잇따라 나오면서 한일관계가 악화된 상태"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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