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3년 낙태죄 처벌 조항을 도입한 이후 66년 만에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이 인정받았다. 헌법재판소는 11일 낙태를 처벌하는 형법 조항에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공은 국회로 넘어왔다. 판결문에서 헌재는 "입법자는 태아의 생명 보호와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의 실현을 최적화할 수 있는 해법을 마련하기 위해 입법 재량을 가진다"고 밝혔다.
그러나 오는 2020년 12월 31일까지 낙태 관련법 개정 책임을 진 국회의 준비상태는 미흡하다. 낙태죄 헌법 불합치가 예상되는 상황에서도 정치권은 종교계의 압박 등을 이유로 대체입법 준비에 착수하지 못했다.
한 초선 국회의원은 "총선을 1년 앞두고 종교계 등의 역풍이 우려되기 때문에 여론의 추이를 본 뒤 개정안 준비 등을 해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헌재 결정에 발맞춰 법 개정을 준비하고 있는 의원은 정의당 이정미 의원 뿐이다. 이 의원은 낙태죄를 처벌하는 조항 폐지를 담은 형법 개정안을 준비 중이다. 임신한 여성이 낙태한 경우 1년 이하의 징역이나 200만 원 이하의 벌금으로 처벌하고, 의사가 임신한 여성의 동의를 받아 낙태한 경우 2년 이하의 징역으로 처벌토록 규정한 형법 269조와 270조를 삭제토록 했다.
또 5가지 사유의 낙태만을 허용해온 현행 모자보건법을 개정해, 임신 12주 내에는 본인 의지를 인정해 낙태를 허용하고 14주~22주까지는 사회경제적 허용 사유를 확대하기로 했다. 현행 모자보건법 14조는 △본인이나 배우자에 유전학적 정신장애가 있을 때 △전염성 질환이 있는 경우 △근친상간에 의한 임신 △강간 등에 의한 임신 △임신을 지속하면 산모 건강이 위험해지는 경우 등의 사유에 따라 임신 중기 이내에만 낙태가 가능해왔다.
이정미 의원은 이날 상무위원회에 참석해 "이제는 국회가 나서야 할 때"라며 "형법 상 낙태의 죄를 삭제하고 모자보건법 상 인공인심중절의 허용한계를 대폭 넓힌 개정안을 준비했으며, 곧 발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어 "국가의 역할은 더 이상 여성의 몸을 통제하여 인구를 유지하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의당을 제외한 다른 정당들은 낙태죄 개정에 소극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한 민주당 관계자는 "여성단체 입장을 한 차례 청취했고 당 내부 논의 중"이라면서도 "하지만 이른 시일내에 개정안에 대한 입장이 나오진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한 민주평화당 의원도 "헌재 결정 거부하진 않겠지만 당 내에서 낙태죄 논의가 있었던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그는 "기독교와 관련된 의원들은 보수적 입장에서 법 개정을 주장하겠지만, 대부분은 헌재 결정 취지에 맞춰서 개정하는 방향을 논의할 것"이라면서도 "아직 구체적 계획은 없다"고 밝혔다.
국회는 과거에도 보수 기독교 단체를 비롯한 종교계의 눈치를 보느라 낙태죄 관련 법개정에 소극적이었다.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14대 국회부터 18대 국회까지 낙태죄 관련 대안 법안은 10건에 불과했고, 19~20대 국회에 제출된 개정안은 전무했다. 이마저도 법안들은 제대로된 논의 과정도 거치지 못한 채 임기 만료로 폐기됐다.
발의됐던 개정안 중 헌재의 결정과 가장 근접한 법률안은 2010년 4월 18대 국회 당시 홍일표 한나라당 의원이 발의한 '모자보건법 일부개정법률안'이다. 법안은 경제·사회적인 사유에 대해 임신 12주 이내에 한해 낙태 허용을 확대토록 했다. 하지만 보수 기독교 단체들로 구성된 '낙태반대운동연합'의 극렬한 반대로 인해 개정안은 통과되지 못했다.
여성단체연합 등 시민단체는 이날 입장을 내고 "그동안 국가는 모자보건법상 허용 한계를 넘는 경우 여성들의 임신중단 결정을 단죄함으로 여성들의 건강권을 침해하고 사회적 낙인을 강화해왔다"며 "헌재 결정의 정신을 이어받아 낙태죄가 역사 속에서 사라지도록 모자보건법 전면 개정을 해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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