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의 고 조비오 신부 명예훼손 혐의는 “5·18 당시 금남로 전일빌딩 헬기 사격이 있었다”는 조 신부의 증언에 “파렴치한 거짓말쟁이”라는 자서전 표현이 자초했다.
헬기 사격 만행의 대상지인 전일빌딩은 광주 금남로 1가 1번지에 있는 건물이다. 전두환 혐의에 시민들이 격렬한 분노를 거둘 수 없는 것은 다름 아닌, 광주시민들은 80년 그날 ‘금남로의 실탄사격’을 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날, 그 거리에서, 자식이 죽고, 부모가 죽고, 형제가 죽고, 친구가 죽고…뜨겁고도, 그리고 신이 아니면 감히 끊을 수 없는 숱한 절대적 인연들이 절명했던 까닭이다.
금남로는 그래서 광주시민들에게 사람답게 사는 일을 새삼 깨닫는 상징으로 존재한다.
‘아아 광주여 영원한 청춘의 도시여’라는 시를 통해 80년 5월 광주의 아픔을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오르는 희생’으로 울부짖은 김준태 시인 또한 금남로를 이렇게 노래했다.
“내가 사람이라는 사실을 처음으로 처음으로 알아낸 거리…금남로의 사람들은 모두 입술이 젖어있었다. 금남로의 사람들은 모두 발바다에 흙이 묻어있었다”
80년 5월 이후 40년의 세월이 다가서지만 금남로는 여전히 민주주의와 올바른 역사, 그리고 사회정의와 공동체의 가치를 부르짖는 시위와 집회의 거점이다.
금남로의 정체성도 사전적으로 객관화됐다.
네이버 지식백과는 “광주광역시 동구에 있는 가로로 길이 2.3㎞, 너비 30~40m 금남로는 광주민주화운동의 정신이 깃든 곳이기도 하다“고 정의한다.
이 때문에 해마다 5월이면 광주항쟁의 기억을 보듬고 전국에서 많은 이들이 무작정 금남로를 찾지만, 안타깝게도 5‧‧18 민주광장이라는 기념비적 언어를 반추해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금남로 그 거리 어디에서도 5월 항쟁의 상징물들을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금남로의 고층 빌딩 들 앞에 수많은 조각상들이 있지만 그곳에 5월의 형상화는 없다.
지난 해 금남로의 5월 부재를 목격한 어느 시인은 “광주의 조각가들은 무뇌아들만 있나?” 라고 개탄했다.
최근 몇 년 동안 광주시는 세계적 건축가들을 초빙, 금남로 인근에 ‘폴리’라는 이름의 조형물을 세웠지만, 그것들에서도 광주의 5월은 찾아볼 수가 없다. 난데없이 광주로 불려온 건축가들이 5‧18을 아프게 추억할 이유도 없을뿐더러 기억할리도 만무하다.
광주시의 문화행정 또한 비난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셈이다.
독일 베를린시의 중심인 브란덴부르크 문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엔 검은 비석들이 거대한 무덤처럼 펼쳐져 있다. 가로와 세로(가 같고 높이가 다른 2711개의 비석들이 1만9073㎡의 부지에 늘어선 채 파도가 일렁이는 듯한 굴곡을 만들어낸다.
독일 국가 차원에서 베를린 시 중심부에 홀로코스트 추모 모뉴먼트를 건립한 것이다. 이 아이디어를 제안한 것은 독일 지식인과 시민들이었으며 홀로코스트에 대한 추모와 반성의 중심에 독일 시민사회가 있다는 점을 여실히 드러낸 사례다.
이 기념 모뉴먼트를 디자인 한 사람은 미국 건축가 피터아이젠만이다.
여기에서 광주 시민들은 ‘충격적인 아이러니’를 목격한다. 피터아이젠만은 광주에 초빙된 폴리 작가 중의 한사람이다. 광주 충장동 파출소 옆에 그의 작품이 설치돼있다. 그러나 피터아이젠만의 ‘충장 폴리’ 그 어느 구석에도 5월 학살의 흔적도, 추모의 이미지도 없다.
베를린 홀로코스트 추모비를 관리하는 아담 케르펠 프로니우스는 “홀로코스트에 대한 반성에는 끝이 있을 수 없다. 세대를 거듭해 지속해야 하는 과정”이라고 말한다.
또한 역사에 대한 성찰과 추모는 박물관이 아닌, 일상의 공간에서 만나는 ‘현장의 기념비’가 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시민들이 일상의 공간에서 만날 수 있는 ‘기억의 형상화’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5‧18 40주년이 눈앞이지만 시민들이 피를 쏟은 그날 항쟁의 거리 금남로엔 여전히 5월이 없다. 5·18 민주광장이라는 호칭만 허허롭게 시민들의 가슴속에 새겨져있다.
너무 늦었지만, 광주의 금남로에 이제라도 ‘5월 광주의 형상화’라는, 세대와 세대를 이어갈 영원한 옷차림을 마련해줘야 할 때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