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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계권 싹쓸이, 당당할 수 없는 '스포츠 방송국'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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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계권 싹쓸이, 당당할 수 없는 '스포츠 방송국' SBS

[프레시안 스포츠] 점화된 올림픽-월드컵 중계권 이전투구

2003년 평창이 동계올림픽 개최지 선정 투표에 처음으로 나섰을 때, 밴쿠버에 왜 졌을까? 국내외적으로 여러 이유가 거론됐지만 가장 재미있는 것은 미국 방송사 NBC의 올림픽 중계권 계약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분석이었다.

밴쿠버 올림픽 유치의 공신 NBC, 고액 계약으로 부메랑 맞아

선정 투표가 열리기 한 달 전 NBC는 20억 달러를 내고 2010년 동계, 2012년 하계 올림픽 중계권을 따냈다. 여기에다 NBC의 모회사였던 제너럴 일렉트릭(GE)은 IOC(국제올림픽위원회)와 2억 달러 규모의 스폰서십 계약까지 체결했다.

NBC의 스포츠부문 사장 딕 에버솔은 중계권 계약이 끝난 뒤, 밴쿠버의 동계 올림픽 개최를 자신있게 예측했다. 올림픽 중계 방송 시간을 고려했을 때 그들에게 평창의 성공은 고액의 광고를 유치하기에 악재였다. 그런 점에서 에버솔의 한 마디는 '예견'이라기 보다는 '압력'에 가까운 말이었다는 게 일반적인 분석이다. 겉으로는 세계평화와 인류공영을 내세우지만 '돈'에는 한 없이 약해질 수밖에 없는 IOC의 생리를 꿰뚫는 포석이었다.

IOC의 내부 정치구도도 밴쿠버의 편이었다. 많은 유럽의 도시가 2012년 하계 올림픽 유치 의사를 밝힌 터라 유럽 지역 IOC 위원들의 표심도 밴쿠버로 향했다. 미리 북미 도시가 하계 올림픽 유치전에 뛰어들지 못하게 하기 위한 노림수였다.

올림픽 중계권으로 대박을 꿈꾸던 NBC는 지금 깊은 수렁에 빠졌다. 충분히 IOC에 낸 중계권료 이상의 이익을 창출할 것으로 보였지만 NBC는 현재 2억 달러 정도의 손해를 예상하고 있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때문이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 원인은 '독점중계권'이라는 말에 중독된 방송사들의 무분별한 경쟁구도에 있다. NBC는 당시 입찰경쟁의 최대 라이벌 폭스 TV를 의식해 IOC가 바라던 액수인 20억 달러를 과감하게 베팅했다. 뒤에 밝혀진 것이지만 폭스 TV는 13억 달러를 써냈다. 결과적으로 IOC에 좋은 일만 한 셈이다. 밴쿠버의 올림픽 개최지 선정에까지 영향을 미쳤던 NBC의 계산착오는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 세계 평화와 인류 공영의 정신을 가진 올림픽 역시 '돈'에는 자유롭지 못하다. ⓒ뉴시스

SBS 신사협정 파기, 중계권료 상승으로 이어져

밴쿠버 동계올림픽은 한국에게 무슨 의미일까? 경기적으로는 김연아가 나서는 피겨 스케이팅과 이규혁 등이 출전하는 스피드 스케이팅 부문에서 금메달을 딸 수 있을지 여부에 국민적 관심이 매우 큰 상황.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의미가 있다. 올림픽 방송 중계권 논쟁의 시작이다.

지상파 방송 3사는 지난 2006년 '코리아 풀(Korea Pool)'이라는 깃발 아래 올림픽, 월드컵 등 방송 중계권 협상 창구를 단일화 하기로 약속했다. 하지만 이미 이 협정이 있기 전에 SBS는 김연아의 에이전트 역할을 하고 있는 스포츠 마케팅 업체 IB스포츠와 손을 잡았고, 그 뒤 올림픽, 월드컵 중계권을 싹쓸이 했다. 월드컵 지역예선, 메이저리그,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등 2000년대 중반부터 중계권 브로커로 화려하게 등장했던 IB스포츠는 SBS를 제외한 제3자에 재판매 할 권리를 갖는다는 소문이 퍼졌다.

문제는 당초 코리아 풀이 제시한 중계권료보다 3450만 달러나 비싼 대가를 치르며 중계권을 확보한 대목. "다른 스포츠 마케팅 업체가 중계권을 가져갔으면 더 큰 돈을 지불해야 했을 것"이라는 게 SBS측의 설명이지만 외화낭비라는 측면에서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

'메이저리그 방송국' MBC에서 '스포츠 방송국' SBS까지

지난 26일 KBS와 MBC는 방송통신위원회에 SBS의 올림픽, 월드컵 독점중계권에 대한 분쟁조정 신청을 냈다. SBS는 보편적 접근권 측면에서 결격사유가 있다는 게 KBS, MBC의 지적이다.

SBS는 지역민방에 중계권을 팔아야 국민전체 가구수의 90% 이상의 시청가능 가구를 확보할 수 있다. 하지만 SBS는 지역민방 등 제3자에 대한 중계권 판매를 놓고 현재 IB스포츠와 소송 중이다. 중계권 계약을 한 주체가 SBS가 아닌 미국 독립법인 SBS 인터내셔널이라 IB스포츠와의 양해각서 수준의 협의 내용을 따를 이유가 없다는 주장이다.

매우 어수선한 분위기지만 SBS는 밴쿠버 동계 올림픽에 '올인'하고 있다. SBS 로고 밑에는 오륜기가 아로새겨져 있고, 동계 올림픽을 위해 200시간 편성계획까지 수립했다. 문자 그대로 SBS는 '스포츠 브로드캐스팅 시스템(Sports Broadcasting System)' 체제로 돌입한 격이다.

이렇게 말하면 SBS 입장에서는 억울하다고 할지 모르겠다. 지금까지 나머지 방송사의 행태도 별반 다르지 않아서다. MBC는 과거에 막대한 중계권료를 지불 하면서 박찬호 독점 중계권을 따내자 '메이저리그 브로드캐스팅 코퍼레이션(Major-league Broadcasting Corporation)'이라는 비아냥 섞인 말까지 들어야 했다. 그 뒤, KBS와 SBS의 동맹으로 국내 프로스포츠 중계에서 배제되는 보복을 당했다. KBS 역시 3사 풀을 깨고 98년 월드컵 최종예선을 방송했으며, 2006년에는 IB스포츠로부터 WBC 독점 중계권 등을 구입했다 문제가 된 전력이 있다.

▲ SBS 홈페이지에는 이미 2010 밴쿠어 올림픽 관련 소식을 전하는 별도 페이지가 만들어져 있다.

'중계권 싹슬이'에 당당할 수 없는 SBS

경쟁은 피할 수 없다. 미디어의 판도가 재편되면 앞으로 경쟁은 더 극심해질 게 뻔하다. 당연히 입찰과정은 혼탁해 지고, 입찰사가 져야 하는 위험요소는 커진다. 국제스포츠 기구는 은근히 이전투구의 경쟁구도를 원한다. 그들에게 중계권료는 가장 중요한 재원이기 때문이다.

중요한 건 독점 중계권에 따라 붙는 책임이다. 우선 올림픽과 월드컵의 경우에는 특히 국민들의 시청권이 반드시 고려돼야 한다. 또한 "독점 중계권을 합리적 방식과 가격으로 구입했는가"라는 물음에 당당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독점 중계권을 행사할 준비를 충분히 했는가"에 대한 요구에 부합하려는 노력이다. 쉽게 말해 중계방송과 그 부속 프로그램의 질에 관한 부분이다. 물론 뚜껑을 열어봐야 알겠지만 마지막 질문에 대해서 SBS는 노력한 흔적이 보이긴 한다. 200시간 이상의 방송시간 확보, 동계 올림픽 전 종목 해설자 파견, 경기소개 및 올림픽 관련 교양 프로그램 등을 준비했다.

하지만 가장 기본적인 첫째와 둘째 질문에 대해 SBS는 캥기는 구석이 있다. 보편적 접근권을 확실히 해결하기 위해서는 IB스포츠와의 분쟁을 풀어야 한다. 또한 SBS는 합리적 방식과 거리가 먼 방법으로 중계권을 샀다. 코리아 풀을 깬 약속파기가 결정적이다. 약속을 깨려면 적어도 미리 신호를 보냈어야 했다. 합리적 가격이란 면에서도 납득하기 어렵다. 합리적 가격이란 중계권을 사기 전, 과거의 사례분석과 함께 향후 수익성을 면밀히 예측한 수치가 입찰가로 반영돼야 한다는 뜻.

과연 SBS는 어땠을까? 혹시 SBS의 위상제고라는 무형의 가치를 위해 이 중계권이 필요했던 것은 아닐까? 그래서 일단 중계권을 따기 전까지는 잠정적으로 중계권 경쟁사가 될 수 있는 IB스포츠와 파트너십이 필요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SBS는 막상 대회가 다가오니 제3자에 대한 재판매권과 방송협찬 판매권에 대한 부분이 절실해졌을 가능성이 있다. 역시 문제는 '돈'이다. 정확하게 계약관계가 어떻게 됐던지, SBS와 IB스포츠가 대회를 목전에 두고 파열음을 냈다는 것은 국가적으로도 중요한 올림픽 중계권 계약 자체가 '즉흥 환상곡'처럼 충동적으로 이뤄진 게 아닐까 하는 의구심까지 자아 낸다.

게임의 규칙없는 '올림픽-월드컵 중계권 전쟁' 막아야

방송통신위원회의 밴쿠버 동계 올림픽 SBS 독점 중계에 대한 분쟁 조정에 관심이 모아진다. 모두가 수긍할 만한 정답은 못 내놓는다 해도 향후 분쟁의 여지를 최소화 할 수 있는 조정안을 기대해 본다.

일본이 2010년, 12년 올림픽 중계권을 따냈을 때와 같이 여러 TV 채널이 중계권료를 공동부담하는 방식이 한국적 여건상 우선 거론돼야 한다. 2008년 일본은 NHK 주도하에 일본민간방송연맹 소속사들과 컨소시엄을 이뤄 중계권 계약을 체결했다. 월드컵의 경우 독일의 방식도 생각해 볼 여지가 있다. 독일은 2010년 남아공 월드컵 중계권을 배분할 때 각 방송사마다 경기 중계 횟수를 서로 조정했다. 각 방송사의 입장을 배려하되, 국제경기 때마다 찾아오는 '전파낭비'를 조금이나마 줄일 수 있는 방법이다.

눈 가리고 아웅하는 임시적 방책보다는 원칙을 세우는 게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경쟁을 하더라도 나름대로 '게임의 규칙'은 있어야 한다. 아직 SBS가 독점적으로 사들인 올림픽과 월드컵이 다 끝나려면 6년이나 남았다. 좀 더 좋은 프로그램을 위해 아이디어를 짜내야 할 귀중한 시점마다 방송사들이 이런 논쟁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번 논쟁은 발전을 위한 하나의 시행착오로 남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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